“시위대 마스크 못 쓴다”… ‘복면금지법’ 시행에 전운 감도는 홍콩

입력
2019.10.04 18:04
수정
2019.10.04 22:0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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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홍콩 코즈웨이 베이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고교생을 향해 실탄을 쏜 경찰의 강경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2일 홍콩 코즈웨이 베이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고교생을 향해 실탄을 쏜 경찰의 강경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일 시위 도중 경찰이 고교생을 향해 실탄을 쏴 중태에 빠지게 하면서 홍콩 반정부 시위가 새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당국이 긴급법을 발동, 시위대의 마스크(복면) 착용을 전면 금지(복면금지법 시행)키로 했다. 이에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집회를 벌이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어, 법안 발효를 기점으로 시위대와 경찰 간 유혈충돌이 한층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특별행정회의 직후 긴급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5일 0시부터 복면금지법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지난 넉 달간 400여 차례의 시위가 있었고, 1,000여명이 다쳤다”라며 “폭력이 고조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어 관련 법규를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복면금지법 시행이 곧 홍콩의 비상사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는 사실상의 계엄령 선포로 해석되고 있다. 복면금지법의 근거로 1967년 노동자 파업사태 이후 사문화됐던 긴급법이 52년만에 발동됐기 때문이다. 홍콩이 영국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 제정된 이 법에 따르면 행정장관은 비상상황이나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의회의 승인 없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고 처벌 수위까지 정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체포ㆍ구금ㆍ추방ㆍ재산 압류ㆍ교통 통제 등 막강한 권한이 부여돼 향후 당국이 추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에 제정된 복면금지법에 따르면 시민들은 합법적 시위를 포함한 모든 공공집회에서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고, 이를 어길 시 최고 징역 1년이나 2만5,000 홍콩달러(약 381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에게 마스크를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불응한 경우 체포돼 최고 6개월 징역형에 처해진다. 다만 질병이나 종교 등 이유로 착용한 시민은 단속에서 제외된다.

복면금지법 시행 소식이 전해지자 4일 오후 홍콩 시민들은 되려 마스크를 챙겨 쓰고 시내 곳곳으로 쏟아져 나와 항의했다. 이날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 모인 시민 수천명은 도로를 점거하고 “홍콩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우자” “복면금지법에 반대한다” “폭도는 없다. 폭정만이 있을 뿐”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코즈웨이 베이와 쿤통 지역에서도 수백 명의 시민이 모여 정부를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경찰은 마스크를 쓰고 식별번호를 가린 채 진압하는데 왜 우리만 벗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물러서지 않고 시위 수위를 높이겠다고 예고했다.

법률 전문가와 일선 경찰들도 복면금지법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간 진압에 투입돼 온 한 경찰은 SCMP에 “지금까지는 체포된 시위대만 마스크를 벗어야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쓴 시위대는 모두 경찰을 자극하는 것으로 여겨져 불필요한 갈등만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이먼 영 홍콩대학 교수는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면 시민들이 경찰의 최루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게 된다”라며 “홍콩 기본법 28조와 인권법 5조가 보장하는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당국은 환영 입장을 냈다. 중국 국무원 홍콩ㆍ마카오 사무판공실 양광(楊光) 대변인은 이날 담화를 통해 “이 법은 매우 필요하며, 폭력 범죄를 억제하고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고 중국중앙(CC)TV가 전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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