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분쟁지역] 국제화된 예멘 내전,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으로 돌아오다

입력
2019.10.04 19:00
수정
2019.10.04 22:47
19면
지난달 14일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2곳 중 한 곳인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에서 화재로 인한 두텁고 새카만 연기가 치솟는 모습이 미국 민간 위성업체인 플래닛랩스의 위성 사진에 포착됐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2곳 중 한 곳인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에서 화재로 인한 두텁고 새카만 연기가 치솟는 모습이 미국 민간 위성업체인 플래닛랩스의 위성 사진에 포착됐다. AFP 연합뉴스

지난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 시설이자 단일 석유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아브카이크 탈황 석유 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이 예멘 후티(후시) 반군 또는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하루 57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생산이 잠시 중단됐다. 570만 배럴은 사우디 하루 생산의 절반, 세계 석유 생산의 5%에 달하는 양이다.

초기 지도자 ‘후세인 바르레딘 알후티’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온 후티 반군은 자신들이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공격했다며 배후를 자처했으나, 미국은 이란이 순항미사일 10여 발과 드론 20대로 직접 공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공격 주체가 누구든 사우디 주요 석유 시설에 대한 이번 공격은 예멘 내전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동시에 ‘웹 3.0’ 시대의 테러와 전쟁 형태를 보여준다.

후티 반군(자칭 안사룰라ㆍAnsar Allah)과 국제적 공인을 받은 예멘 정부 간 분쟁은 후티 반군이 2014년 9월 수도 사나 등 예멘 북부 지방을 점령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인 2015년 사우디 주도의 아랍 연합군이 후티 반군 점령 지역에 공습을 단행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역내ㆍ외 세력이 개입하면서 내전은 국제화됐다.

예멘 내전의 주요 행위자는 △시아파 이란의 후원을 받는 후티 반군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압두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정부 △아랍에미리트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세력 남부과도위원회(STC), 그리고 수니파 무장단체들인 △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와 △이슬람국가(IS) 등이다. 이 각각의 행위자들이 예멘의 일정 정도의 영토를 통제하고 있고, 각각의 내부에 여러 분파들과 부족들, 지도자들이 포함돼있다.

예멘 내전 4주기를 앞둔 지난 3월 24일, 수도 사나의 한 묘지에서 한 남성이 아이의 손을 잡은 채로 숨진 후티 반군과 시민들의 초상화가 세워진 무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후티 반군이 사나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내전은 201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아랍 연합군의 개입 이후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변하며 장기화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예멘 내전 4주기를 앞둔 지난 3월 24일, 수도 사나의 한 묘지에서 한 남성이 아이의 손을 잡은 채로 숨진 후티 반군과 시민들의 초상화가 세워진 무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후티 반군이 사나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내전은 201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아랍 연합군의 개입 이후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변하며 장기화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유엔 및 여타 자료에 따르면, 예멘 내전으로 2015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5,2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포함해 8,670~13,600명이 숨졌다. 콜레라 등 감염병과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또 예멘 내전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예멘 데이터 프로젝트’에 따르면 미국의 지원 아래 실행된 사우디의 공습으로 올해 3월까지 1만7,7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많은 예멘인은 난민이 되었고, 난민 생활로 인한 질병과 기아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2018년 1월부터 6월 말까지 예멘인 561명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들어진 무비자 제도를 이용해 제주도에 입도한 후 난민 지위를 신청함으로써 예멘 내전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멘의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사나’ 중심의 북쪽 지역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오스만 제국이 떠난 자리를 이슬람 시아파 내 ‘5이맘파’인 자이디(Zaydi) 분파의 이맘 아흐마디가 통치하다가, 1962년 쿠데타 성공으로 군부 중심의 ‘예멘아랍공화국’이 수립된다. ‘아덴’ 중심의 남쪽 지역은 1839년부터 영국의 식민통치 하에 놓였으나 1967년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남예멘인민공화국’이 수립된다. 1970년 급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호를 ‘예멘인민민주공화국’으로 바꾸고 친소(親蘇) 노선을 취했다.

이후 1990년 5월 22일 남북 예멘이 평화적으로 통일돼 ‘예멘공화국’이 수립된다.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가 초대 대통령, 남예멘의 알베이드(Ali Salim al-Bayth)가 부통령으로 선출됐고, ‘예멘아랍공화국’(북예멘)의 수도였던 사나를 통일 예멘의 수도로 정한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도 권력 배분 방식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진다. 급기야 남예멘의 알베이드 세력이 1994년 5월 21일 아덴을 수도로 하는 남예멘 독립국 수립을 선언하자,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우월한 군사력을 앞세워 7월 7일 아덴을 점령하면서 예멘 내전(1994년)은 종식된 듯했다.

지난 2011년 11월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한 달 이내로 모든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정부 민주화 시위를 벌여온 수도 사나의 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다. 1990년 통일 전 예멘아랍공화국(북예멘) 시절까지 합해 34년간 나라를 철권 통치해 온 살레가 축출된 이후, 권력이양 과정에서 발생한 부족·종파 간 갈등으로 예멘 내전이 발발했다. 사나=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1년 11월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한 달 이내로 모든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정부 민주화 시위를 벌여온 수도 사나의 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다. 1990년 통일 전 예멘아랍공화국(북예멘) 시절까지 합해 34년간 나라를 철권 통치해 온 살레가 축출된 이후, 권력이양 과정에서 발생한 부족·종파 간 갈등으로 예멘 내전이 발발했다. 사나=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이른바 ‘자스민 혁명’으로 불린 중동ㆍ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의 여파가 예멘 정세에도 불어 닥친다.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34년간 철권통치를 하던 살레 대통령은 2012년 2월 축출됐고, 하디 부대통령은 과도정부의 수반이 된다. 지금의 예멘 내전은 이때의 권력 이양 과정에서 촉발된 것이다.

지금도 예멘의 여러 부족과 이슬람 종파, 다양한 이념은 ‘국가 내 국가’ 현상을 초래하고 있고, ‘정체성 위기’ 즉 분쟁의 심화와 장기화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예멘 내 다양한 정파들은 이란, 사우디, 미국 등 외부 세력의 이해와 연계되며 ‘내전의 국제화’를 초래했다.

지난 2015년 사우디가 후티 반군 지역을 공격한 이유는 당연히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역내 확대와 패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란-사우디 동부지역-쿠웨이트-이라크-시리아-헤즈볼라(레바논 남부지역)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는 사우디의 북동 국경을 포위한다. 후티 반군이 예멘을 통치하게 되면 사우디의 남쪽 국경까지 시아파로 둘러싸이게 된다.

사우디는 사우드 가문(부족)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수니파의 4대 법학파 중 근본주의 학파로 알려진 한발리학파를 추종하는 ‘와하비즘’을 국가 이념으로 하여 1932년에 건국됐다. 사우디는 와하비즘을 현재 후티 반군 지역인 예멘 지역으로 확산시키려 했고, 알후티 중심의 자이디 분파 무슬림들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후티 반군이다.

후세인 알바드르 앗딘 알후티의 부친인 셰이크 바드르 앗딘 알후티가 하끄당(Hizb al-Haqq)을 설립하여 예멘에 침투해 들어오는 와하비즘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아들인 알후티가 이끄는 ‘젊은 신앙인’ 그룹이 형성됐고, 이들에 의해 반(反)와하브(반사우디), 반정부, 반미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대변인인 투르키 알 말리키 대령이 지난달 18일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우디 정유 시설을 공격한 미사일과 드론 잔해들을 공개하고 있다. 말리키 대변인은 이날 자체 분석 결과, 이들 무기는 후티 반군이 있는 남쪽 예멘 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발진됐고, 의심의 여지없이 이란의 후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국방부의 기자회견 30분 뒤 후티 반군은 자신들의 소행이 맞다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리야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대변인인 투르키 알 말리키 대령이 지난달 18일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우디 정유 시설을 공격한 미사일과 드론 잔해들을 공개하고 있다. 말리키 대변인은 이날 자체 분석 결과, 이들 무기는 후티 반군이 있는 남쪽 예멘 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발진됐고, 의심의 여지없이 이란의 후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국방부의 기자회견 30분 뒤 후티 반군은 자신들의 소행이 맞다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리야드

이들의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이라는 구호는 마치 반미, 반이스라엘, 반사우디의 주도 국가인 이란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치는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 ‘미국은 거대 악마’라는 주장과 흡사하게 들린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주장처럼 이번 사우디 공격의 주체가 이란이라면, 이는 중동 국제정세를 매우 면밀하게 분석한 공격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중동 정책과 중동 개입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사우디 내 분열과 이란의 내부 결속을 기하는 등 여러 목적을 염두에 둔 공격인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된 드론 공격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웹 3.0 시대의 테러와 전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IS 3.0’ 형태의 테러 시대, 9ㆍ11테러보다 훨씬 발전된 테러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분쟁은 ‘세력 전이(轉移)’ 과정에서 빈발했다. 이번 예멘 내전과 사우디 유전 공격 사건도 걸프 지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력 전이 시도와 과정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지난달 2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에서 인부들이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했던 설비를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발생한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을 두고 예멘 후티 반군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으나, 사우디와 이란은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고 있다. 아브카이크=AFP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아브카이크 석유시설에서 인부들이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화재가 발생했던 설비를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발생한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을 두고 예멘 후티 반군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으나, 사우디와 이란은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고 있다. 아브카이크=AFP 연합뉴스

/정상률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ㆍ2020년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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