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본다, SF]전쟁은 시작하면 영원한 전쟁이 된다

입력
2019.10.04 04:40
수정
2019.10.04 15:08
22면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7>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1972년 6월 8일 베트남전 당시 9세 소녀 킴 푹(가운데)이 네이팜 탄이 떨어지면서 불길이 옮겨 붙은 옷을 모두 벗은 채 울부짖으며 거리를 내달리고 있다. AP통신의 후잉 콩 우트 기자가 촬영한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가장 사실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을 인정 받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AP=연합뉴스
1972년 6월 8일 베트남전 당시 9세 소녀 킴 푹(가운데)이 네이팜 탄이 떨어지면서 불길이 옮겨 붙은 옷을 모두 벗은 채 울부짖으며 거리를 내달리고 있다. AP통신의 후잉 콩 우트 기자가 촬영한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가장 사실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을 인정 받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AP=연합뉴스

모든 전쟁은 ‘영원한 전쟁’이다. 특별히 SF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폴 버호벤 감독이 영화로 만든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1959년)의 존재는 알 테다. 이 불편한 소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벌레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또 그 전쟁 자체에 중독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며 여러 SF 작가에게 모티프를 제공했다.

하인라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는 한국계 작가 이윤하의 ‘나인폭스 갬빗’(동아시아)이 있다. 독자로서는 종잡을 수 없는 공격과 방어 사이에서 피 곤죽이 되어서 나부라지는 군인들. 이 소설이 생생하게 보여주듯이, 하이테크 시대의 전쟁터도 피와 살이 튀기는 끔찍한 살상의 현장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스타십 트루퍼스’와 ‘나인폭스 갬빗’ 사이에 놓인 전쟁 SF의 걸작이 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소개하려는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Forever War)’(황금가지)이다. 홀드먼은 대학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하다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어 2년간 공병으로 참전했다가 온몸에 폭탄 파편을 맞고서 제대한다. 그 더러운 전쟁의 경험은 그를 평범한 과학자로 살 수 없게 만들었다.

홀드먼은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갈무리해서 ‘영원한 전쟁’을 펴낸다. “내가 읽어 본 어떤 전쟁 이야기보다 훌륭하고 치명적일 정도로 진실하다”(작가 윌리엄 깁슨) 같은 극찬을 받은 데다, 까마득한 후배 존 스칼지(‘노인의 전쟁’의 작가)가 서문으로 포장한 헌사를 쓰며 경의를 표할 정도로 고전 반열에 오른 책이다.

짐작하다시피, 이 소설은 작가가 경험한 베트남 전쟁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외계 생명체와의 우주 전쟁으로 변주한다. 주인공(만델라)을 비롯한 군인은 좀 더 쉽게 적군(외계 생명체)을 학살하고자 마음을 조작 당한다. 이제 전쟁터에서 “두려움에 떨며 폭주하는” 적군을 “희희낙락하게 다지고 저미는” 군인은 상관의 ‘명령’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무의식’을 따른다.

전쟁터만 끔찍한 게 아니다. 홀드먼은 전쟁을 뒷받침하느라 전쟁터만큼이나 끔찍하게 망가진 지구를 그리는 데에도 공을 들인다. 먹거리를 확보하는 갈등이 심하고, 돈이 있어도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지구의 끔찍한 상황을 보고서 제대를 앞둔 군인이 다시 군대를 택할 정도다. 군대에서는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인류는 왜 외계 생명체와 영원한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홀드만은 그 비밀을 밝히며 ‘전쟁’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정치의 본질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뜻밖의 결말은 ‘독립적’ 자아와 ‘합리적’ 이성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는 계몽주의 비전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인 전망이 짙게 깔려 있다.

‘영원한 전쟁’은 1974년에 나오고 나서 지금까지도 그 ‘현재성’을 인정받는 작품이다. 굳이 존 스칼지나 이윤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주 전쟁을 다룬 수많은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이 ‘영원한 전쟁’에 빚지고 있다. 이 소설이 1978년에 번역된 일본의 대중문화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1979년 시작해 전 세계의 팬덤을 거느린 애니메이션 ‘건담’ 시리즈도 이 소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개인적으로 ‘영원한 전쟁’과 함께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민음사)를 함께 읽기를 권한다.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나서 사이공(호찌민)을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전쟁터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들은 결코 전쟁을 극복할 수 없다. 일단 전쟁이 시작하면, 그것은 영원한 전쟁이 된다. 그러고 보니, 한국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영원한 전쟁

조 홀드먼 지음ㆍ김상훈 옮김

황금가지 발행ㆍ424쪽ㆍ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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