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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 통역 자격증 교사 6% 불과… “입말 익혀라” 대부분 말로 수업 
 이해 못하는 학생 학업에 차질… 학부모들 수어 수업 추진 단체 결성도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 서울농학교에서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수어(手語) 교육’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재학생들이 학부모들과 함께 적극 행동에 나섰다. 졸업이 머지 않았지만, 뒤이은 후배들은 수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음성 언어를 강요받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모두 이 학교 3학년인 박준빈(왼쪽부터), 조소연, 박세현, 윤진효, 강영모 학생이 “나는 수어로 배우고 싶다”는 뜻을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지난달 청각장애 특수교육기관에 1억원을 기부했다.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 농인(聾人ㆍ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즐겼으면 한다’는 것이 RM의 취지라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리더의 선의와 다르게, 농인 사회가 너나 할 것 없이 안타까움의 말을 더하고 있다. 음악교육은커녕 전반적인 교육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수어(手語) 부재 교실’의 현실 때문이다.

청각장애인 부모 아래서 자란 이길보라 다큐멘터리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부 소식을 공유하며 “의미 있는 선행이지만 특수학교와 농학교의 음악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각한다면, 무섭고 끔찍한 기부가 될 수도 있다”는 글을 남겼다. 농인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김주희 대표교사는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순서를 외워 피리를 불어야 하고, 말하지 못하는데 억지로 발성을 내야 하는 게 농학교 음악 교육의 현실”이라고 했다. 대체 농학교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현재 한국의 농인 교육은 아비규환이나 다름 없습니다. 수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청각장애 아이들을 향해 입말로 수업 설명을 해요. 아이들은 질문을 하거나 교사들과 대화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로 출석만 겨우겨우 하고 있어요.”

국립 서울농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딸을 둔 아버지 박임규(66)씨가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이다. 한국일보는 최근 서울 중구 본사에서 농학교에 재학 중인 청각장애 청소년 9명과 학부모, 졸업생 등 20여명과 수어와 음성언어를 더해 4시간 가까이 긴 이야기를 나눴다. 농인 당사자거나 그 가족인 이들은 6월부터 ‘정체성을 상실한 농교육ㆍ농학교 바로 세우기 운동(이하 바로 세우기)’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학부모 중에는 서울농학교 학생회장 박준빈(19)군의 어머니 박금선(46)씨도 있었다. 아이가 알아서 학교를 잘 다니고, 전교회장까지 맡으니 으레 공부도 잘하고 있겠거니 싶어 학교에 가보지도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우연히 아이가 “학교 선생님들이 엄마보다 수어를 못 한다”고 했을 때다. 아이는 “선생님들에게 ‘왜 수어를 배우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사회에 나가 청인(聽人ㆍ청력 손실이 없는 사람)과 어울려야 하니 언어 치료를 받는 셈 치고 입말에 익숙해지라더라”고 덧붙였다.

학생ㆍ학부모의 주장과 달리 교육부는 농학교 교사 90% 이상이 ‘수어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국 15개 청각장애 특수교육기관의 수어 가능 교원은 391명 중 385명(98.5%)이다. 100%에 가까운 교사들이 “수어를 할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수어로 의사전달이 원활한 수준인지 의문이다. 실제로 응답자 중 ‘수화(수어) 통역 자격 소지자’는 24명(6.1%)에 불과했다. 가장 최근의 수화 통역 자격 현황 자료를 교육부에 요청했지만, 교육부는 “농학교 측이 공개를 거부했다”고 답했다.

허일 한국복지대 한국수어교원과 교수는 “농학교 교사들은 한국어에 맞는 수어 단어를 간헐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데, 이는 문법에 맞지 않을뿐더러 농인이 사용하는 수어와 의미 자체가 다르다”며 “이를 두고 ‘수어를 할 수 있다’고 표현하는 건 교육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통역 자격이 비교적 객관적인 실력 지표”라고 했다.

한국 농인 교육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지난달 16일, ‘정체성을 상실한 농교육ㆍ농학교 바로 세우기 운동’ 구성원 20여명이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 모였다. 한 학부모는 “전문적인 농학교에 보낸 게 아이를 위한 길인 줄 알았는데, 농인 교육의 실상을 알고 나서 국가에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고 싶은 심경”이라고 호소했다. 고영권 기자
 ◇ 농인의 제1언어 ‘수어’ 없는 농학교 풍경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은 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고유 언어’임을 규정하고 있다. 농학교에서 수어로 교육을 받는 건 학교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응당 누려야 할 권리다. 그와 함께 법은 ‘농인’을 청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수어를 사용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청력 상실이라는 병리학적 증세를 강조한다면, 농인은 수어라는 언어 수단을 갖고 모든 것을 표현해낼 수 있는 능동적 정체성을 포함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농인들의 학교 ‘농학교’에 수어가 보이지 않는다. 청각장애 학생들 앞에서 수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연단에 서서 음성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정규 교육 과정 내 수어 과목조차 없다. 서울농학교 2학년 학부모 최윤형(54)씨는 “부모들이 지속적으로 수어 과목을 요청해 올해부터 1주일에 1시간 수어를 배우게 됐다”며 “하지만 다른 과목 수업 시간을 할애해 배우는 터라 시간표상 수어 과목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수업 현장을 보기 위해 서울농학교 측에 취재 협조 요청을 보냈으나 거절의사가 돌아왔다. 간접적으로나마 수업 환경을 듣기 위해 전국 각지 농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10여명에게 학교 생활을 물었다.

“저는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있지만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뒤돌아 필기를 하면 전달이 전혀 안 돼요. 수업시간에 전 그냥 포기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수어를 구사하는 선생님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모르는 게 생기면 질문은 어떻게 하나요?) 대화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질문할 생각을 못했어요.” (서울농학교 2학년 A양)

학생들이 입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고, 수업 진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충주성심학교와 서울농학교를 다닌 졸업생 원서연(30)씨는 “9년 동안 농학교를 다녔지만, 교과서가 단 한 번도 더러워진 적이 없었다”며 “진도를 나갈 수 없으니 터무니없이 적은 양으로 중간ㆍ기말고사를 치러야만 했다”고 말했다. 수어를 쓸 때면 교사가 손등을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농학교 2학년 B(18)양은 “일반학교 친구들이 책 한 권을 끝내는 동안, 같은 기간 우리 학교는 반 권 분량도 채 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입을 앞둔 박준빈군은 학교에서 진학상담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서울시 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진로 컨설팅을 받고 수시 전형에 응시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농인들의 농학교 기피 현상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교육부의 ‘2019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전체의 22%(전체 3,225명 중 709명) 수준이다. 이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맹학교와 같은 특수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63%(전체 1,937명 중 1,221명)에 달하는 것에 비해 현격하게 낮다. 국립인 서울농학교마저 전교 학생수는 91명에 불과하고, 그중 다수는 직업 교육을 받는 성인 학생이다. 농인 사회에 특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없으니 농학교는 교육 수요자에게서도 외면을 받고 있다.

교사들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임용 과정에선 수어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교육 현장에서 당장 소통 장벽에 맞닥뜨리는 터다. 대학 특수교육과의 기본 이수과목에는 수어 교육이 거의 없고, ‘청각장애학생교육 중 수화 기초’가 유일한 과정이다. 기본적인 일상생활 대화 수준이라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발달장애 등 장애 유형별로 필요로 하는 전공 지식이 천차만별인데,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현장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장애 유형별로 세분화할 경우 특수교사들의 선택권이 줄어들어 일자리를 찾지 못할 수 있어 통합 교육, 선발하고 있다”며 “하지만 청각장애 전문성이 있는 교사를 농학교에 배치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으며, 발령 이후 수어 능력 향상을 위한 연수 과정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농인의, 농인을 위한, 농인에 의한 교육은 가능하다’ 

“사춘기를 겪고 우울해하는 후배의 손목에서 자해한 흔적을 본적이 있어요. 선생님에게 상담해보라고 했지만 후배들은 ‘선생님이 수어도 못하는데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답했어요.” (서울농학교 3학년 C군)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인간 사유를 지배하는 언어는 한 개인이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이자, 자아가 머무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수어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통 수단의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신의 언어’인 수어를 충분히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설계하고 구축하고, 주관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누군가는 ‘수어’의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일보와 가진 모임에서 바로 세우기 추진위원장인 정종규(51) ‘치유하는 농인교회’ 목사가 수어로 풍성하고 유창하게 온갖 학술적 내용까지 표현하는 반면, 농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기본적인 생각도 수어 문장으로 완성해 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길게 풀어 설명해야 할 때엔 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답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1회 서울농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정 위원장은 “학교를 다녔던 1986년, 학우들을 모아 ‘수어 못하는 교사 물러가라’고 수업 거부 시위를 벌일 정도로, 당시에도 농학교 교육은 황폐했다”며 “30년이 지났는데도 개선된 점이 조금도 없어 지금 후배들을 볼 때마다 처참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수어로 말했다. 농인으로서 미국 유학까지 마친 그는 1년 전부터 방과후에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

농인의 학습권은 당사자와 그 가족이 쟁취해 얻어내야만 하는 권리나 도전이 아니지만,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국가는 이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올 초 이들은 사비를 들여 미국 농학교를 차례로 탐방했다. 이들이 전하는 선진국 농인 교육은 우리의 실상과 너무 대비된다.

미국에서는 1817년부터 현재까지 64개 농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그 중 24명은 농인 교장이고, 전체 교사ㆍ교직원의 50%가 농인이다. 보스턴대에는 농인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농교육학과가 있고, 최초의 농인 대학교 갈로뎃대의 역사는 200년이 넘었다. 질적으로 다른 농인 교육의 중심에는, 농인을 가장 잘 아는 농인 교육자가 있다.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농학교에는 농교육학 박사 학위의 농인 교장이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농인 교사ㆍ교직원이 전체의 70%나 된다. 학교에서부터 교장ㆍ교감 선생님 등 선배 농인을 롤모델 삼아 성장한 이들이 또 다른 농인 후배를 이끄는 선순환은 미국 농인 교육을 끌어온 힘이다. 반면 바로 세우기가 직접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농학교 내 농인 교사ㆍ교직원 비율은 1~3% 남짓이다.

100년 농인 교육 역사를 가진 한국 사회가 여태껏 단 한 명의 농인 법조인을 배출해 내지 못한 반면 미국에는 250명이 넘는 농인 변호사가 ‘청각장애 및 난청 변호사협회(DHHBAㆍDeaf and Hard of Hearing Bar Association)’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중앙정보국(CIA)과 백악관에서도 활약하는 농인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교육의 힘이다. 정 추진위원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한국어’라는 언어에서 발현되듯, 농인 역시 ‘수어’라는 토대가 있어야 정체성을 갖고 오롯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농학교에서 필요한 교육은 훗날 청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법이 아닙니다. 수어라는 수단을 가지고 얼마든지 배우고 표현할 수 있는데, 여전히 학교에서는 음성 언어에 익숙해져 ‘수어 없이’ 청인들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청각장애를 극복해야 할 병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농인은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 주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한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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