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스토리] 폭행, 성범죄로 징계받아도 80%가 훈계, 주의 그쳐

입력
2019.10.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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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대한전공의협의회 주최로 열린 '전국 전공의 집담회'에 참가한 전공의들이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지난해 6월 대한전공의협의회 주최로 열린 '전국 전공의 집담회'에 참가한 전공의들이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올해 7월 전주지방법원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1년차였던 김모씨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한 선배 레지던트 C씨와 동료 레지던트 D씨에게는 각각 벌금 300만원을, 임상교수인 E씨에게는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C씨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벌금 300만원 형이 확정됐고, D씨와 E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씨가 2017년 7월에 전주지방검찰청에 이들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지 2년이 지나 2심 선고까지 내려졌지만 C씨는 사건이 알려진 2017년 당시 병원에서 1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뒤 병원에 복귀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다. 벌금 300만원으로 모든 법적인 처벌이 끝난 것이다.

전북대병원 측은 D씨와 E씨가 1, 2심 선고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는 등 형이 확정되지 않아 병원에서 처벌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전북대병원의 ‘전공의에 대한 징계양정표’에 따르면 소속 전공의나 교수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고 동시에 위반 정도가 중하거나 고의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병원장은 징계의결을 요구해 교육위원회에서 징계를 심의ㆍ의결할 수 있다. 김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허진용 변호사는 “규정이 있는데도 병원 측에서 고의적으로 이들의 징계를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들이 폭행과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와 전공의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교육부의 ‘국립대학병원 겸직교직원(교수) 및 전공의 징계현황(2017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성범죄와 폭행 등으로 징계를 받은 겸직교직원과 전공의가 313명에 달했지만 이들 중 81.1%(254건)가 훈계, 주의, 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 공무원법상으로는 징계에 해당되지 않아 기록에도 안 남는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료계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명진 서울시의사회 윤리위원회 위원은 “현재 시범사업으로 운영 중인 전문가평가제에 병원 내 폭언 및 폭행, 환자나 동료 의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도덕적 행위까지 평가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며 “평가처리도 견책 수준, 경고, 윤리교육 이수, 벌금, 활동 제약 등으로 구체화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평가제는 각 시도의사회에 설치된 지역 전문가평가단이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을 점검ㆍ평가해 시도의사회 윤리위원회와 의협 중앙윤리위원회를 거쳐 필요한 경우, 보건복지부에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요청하는 제도다.

손호준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과장은 “전공의 법 시행령을 올 7월 개정해 전공의에 대한 폭행 및 폭언 등을 예방하도록 법을 강화했지만 내부고발자 보호 등 미흡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폭행혐의가 드러난 가해자의 수련ㆍ진료 정지 등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해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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