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증강현실 이용한 ‘동물 없는 동물원’ 
 WWF와 SK텔레콤의 협업으로 탄생 
 WWF “자연 보전에서 기업은 다그칠 대상이 아닌 협력 대상” 
지난해 9월20일 대전 오월드 입구에 퓨마 뽀롱이를 추모하는 조화와 사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꼭 1년 전이다.

지난해 9월18일 대전 오월드에서 무게 60kg의 2010년생 암컷 퓨마 ‘뽀롱이’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동물원 내 건초보관소 인근에서 사살됐다. 사육사 부주의로 문이 열리자, 본능적으로 우리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된 4시간30분 동안에도 동물원 밖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뽀롱이를 기다린 건 결국 죽음뿐이었다. 그리고 당시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분노했다. 이어 인간의 욕심에 자연이 아닌 동물원에서 평생을 지내다 인간의 실수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는 동물이 더 나와서는 안 된다며 동물원 폐지 요구가 이어졌다.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만 약 60여 개가 접수됐으며, 이중 최대 서명인원은 6만4,000여명이나 됐다.

 기술이 자연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 
지난 23일 서울 연남동 동그람이 사무실에서 ‘점프 AR’앱을 실행하자, 사무실에 동반 출근한 반려견 ‘하루’ 뒤에 웰시코기 품종 강아지 증강현실 이미지가 나타났다. 동그람이 이태무

그리고 1년 뒤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됐다. SK텔레콤과 세계자연기금(WWF)이 함께 ‘동물 없는 동물원’캠페인을 시작한 것.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이용해 직접 손대지 않고도 인간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며 굴지의 통신기업과 세계 최대 자연보전단체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들을 이어준 오작교는 현실 세계에 3차원 가상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ARㆍAugmented Reality)이었다.

지난달 22일부터 한 달간 진행된 ‘동물원 없는 동물원’캠페인은 ‘AR동물원’을 기반으로 한다. AR동물원은 통신사와 기종에 상관없이 스마트폰에서 전용 앱인 ‘점프 AR’을 다운로드 후 실행하면 동물이 화면 속에 나타나는 서비스다. AR 게임 포켓몬고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알파카나 강아지와 같은 미니 동물을 집이나 사무실 등 어디서나 불러들일 수 있다. 높이가 10m 이상인 자이언트 비룡이나 자이언트 캣 등 거대 동물은 별도의 다중이용장소에 마련된 AR동물원에서 불러올 수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 올림픽공원과 여의도공원에서 처음으로 ‘개장한’ AR동물원은 현재 대전 보라매공원, 대구 두류공원 등 전국 10여 곳에서 운영 중이다.

동물 없는 동물원캠페인은 참가자들이 AR 동물원에서 보고 싶은 새로운 동물을 추천하는 동시에 반려동물 등과 보낸 행복한 순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이 증강현실을 통해 평소 볼 수 없던 야생동물을 눈 앞에서 보고, 상상 속 동물도 만나면서 환경ㆍ생태 보전에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 목적이다.

과거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코끼리의 모습(왼쪽 사진)과 최근 독일 론 칼리 서커스단에 진행하는 홀로그램 코끼리쇼 모습.

독일에서도 최근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유명 서커스단인 론 칼리 서커스단이 서커스계의 동물학대에 반대하며 3D 홀로그램을 사용한 동물공연을 한 것이다. 독일은 2002년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헌법에 인간의 동물보호 책임을 명시해 동물권을 헌법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전면적인 동물공연 금지에 관한 규정은 없어, 동물단체와 서커스단체 간 충돌이 잦았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논쟁에서 서커스단이 먼저 손을 내밀자, 페타(PETA) 등 글로벌 동물단체들은 크게 환영했다.

론 칼리 서커스단이 선보인 홀로그램은 어둡고 지정된 장소에서만 해당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것에 비해 5G 기술을 이용한 동물 없는 동물원 캠페인은 한 단계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정미 WWF 한국본부 선임국장은 “동물 없는 동물원 캠페인에서 야생동물을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시켜 비난 받는 동물원의 행태를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

동물원 폐지는 현재 세계적으로 논쟁거리다. 인공시설에 야생동물을 가두는 형태에서 야생동물들이 살던 환경을 재현하고, 종 복원사업을 진행하는 등 동물원들이 점차 자연친화적으로 바뀌고는 있지만, 폐지만이 해결책이라는 입장도 여전하다. 이정미 선임국장은 “단순한 관람시설이 아닌 종 복원시설로의 확실한 변화가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서만 동물원은 존치돼야 할 시설”이라고 말했다.

 기업 친화적 환경단체의 자연보전 활동 
이달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야외광장에 설치된 15m 높이의 자이언트 캣 조형물 주변에 관람객들이 모여 있다. SK텔레콤은 자사의 ‘AR동물원’을 통해 증강현실로 볼 수 있는 자이언트 캣의 실제 모습을 별도로 제작했다. SK텔레콤 제공

WWF 한국본부와 SK텔레콤의 협력에는 WWF 특유의 기업 친화적인 성격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1961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비영리 국제 자연보전단체인 WWF는 세계 100여 개국에서 500만 명 이상 후원자들이 활동하는 세계 최대 자연보전단체이다. 전세계 주요 환경단체들 가운데 가장 기업친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2014년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WWF 한국본부 역시 기업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보전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객이 사용한 페트병(10원)이나 캔(15원)을 가져오면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적립포인트로 물건을 구매하도록 하는 ‘쓰레기 마트’ 역시 한국 코카콜라 등과 진행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플라스틱의 80%가 자연에 버려지거나 바다로 유입되면서, 2050년이면 바다에 해양생물보다 쓰레기가 많아질 것이라는 세계경제포럼의 추정(2016)까지 나오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정미 선임국장은 “자연의 자원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주체가 기업인 만큼 이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보전활동 성과를 얻기 힘들다”며 “기업들은 다그칠 대상이 아니라 협력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이정미(왼쪽) WWF 한국본부 선임국장과 ‘동물 없는 동물원’캠페인을 기획한 선우의성 SK텔레콤 매니저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WWF 한국본부 사무실에서 웃고 있다. 동그람이 이태무

WWF 한국본부가 현재 기업 등 외부 협력을 통해 활동에 집중하는 분야는 해양보전과 기후에너지 프로그램이다. WWF가 지구의 자연자원 보전을 위해 자체적으로 나눈 6개 분야(해양, 물, 숲, 기후에너지, 식량, 야생)중 한국에 가장 시급한 사항은 두 가지다. 해양보전의 경우 어업 등이 지속 가능한 바다로 만들고, 기후에너지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활성화가 주요한 목표다. 한국은 2017년 수산물 소비량이 1인당 78.5㎏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세계 7위권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이정미 선임국장은 “WWF는 설립 직후 야생동물을 지키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한 후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보호하는 활동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6개 분야로 나뉘는데까지 이르렀다”면서 “해양보전과 기후에너지 분야에서도 더 많은 기업협력 프로젝트들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