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 우려’ 위장약 잔탁 등 269종 판매 중지… “늑장 대응” 비판

입력
2019.09.26 17:05
수정
2019.09.26 20:03
1면

 144만명 복용 라니티딘 藥서 NDMA 검출… 발사르탄 혈압약 검출 동일 성분 

 식약처 조사결과 10일 만에 번복 ‘뒷북’… 재처방 1회 자기부담금 면제 

국내에서 144만명이 복용하는 라니티딘 계열 의약품 269종에 대해 정부가 26일부로 유통중단 조치를 내렸다. 라니티딘은 위궤양이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의 주요 원료의약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라니티딘과 이를 사용한 위장약 ‘잔탁’ 등에서 발암 추정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돼 이 같은 조치를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 유통 중인 잔탁과 그 원료에서 NDMA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던 16일 정부 조사결과를 스스로 뒤집는 것이어서, 의료계에선 부실ㆍ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진열된 '잔탁' 등 '라니티딘' 성분 제산제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25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진열된 '잔탁' 등 '라니티딘' 성분 제산제 모습. 연합뉴스

식약처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국내외 7개 제조소에서 만든 라니티딘 7종을 검사한 결과, 모두에서 NDMA가 잠정관리기준(0.16ppm)을 초과해 검출됐다고 밝히고, 이날 국내에 유통 중인 모든 라니티딘 계열 의약품의 제조ㆍ수입ㆍ판매ㆍ처방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해 국내 위장병 치료제 시장 유통규모는 1조511억원으로, 라니티딘 계열의 비중은 25%(2,664억원) 정도다. 식약처는 해당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면 병ㆍ의원과 약국을 찾아 재처방, 재조제를 받도록 권고했다. 1회에 한 해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또 조치대상 의약품 가운데 처방 없이 구입 가능한 일반의약품은 약국에서 교환ㆍ환불받을 수 있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발암 추정물질로, 지난해 발사르탄 계열 혈압약에서도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던 성분이다. 해당 성분이 어떻게 라니티딘 의약품에서 검출되고 있는지 원인은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라니티딘에 포함되어 있는 ‘아질산염’과 ‘디메틸아민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체적으로 분해ㆍ결합해 NDMA가 생성되거나, 제조과정 중 아질산염이 비의도적으로 혼입돼 생성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다른 의약품에서도 얼마든지 NDMA 혼입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식약처는 라니티딘 계열 의약품을 장기 복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단기 복용한 경우 NDMA가 인체에 해를 끼칠 우려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단지 엄격히 관리돼야 할 의약품에서 발암가능물질이 검출돼서는 안 되므로 엄격한 잠정기준을 세워 선제적으로 유통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과 호주의 보건당국은 “NDMA로 인한 즉각적인 환자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판매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식약처는 임상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라니티딘 인체영향 평가위원회’를 구성, 해외기관과 협력해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선 정부가 발사르탄 사태에 이어 또다시 의약품 안전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식약처가 지난 16일 시중에 판매 중인 잔탁 등에 대해 일부 수거 검사를 한 후 불검출됐다고 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23일 회원들에게 문제의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처방하지 말 것을 권고했고 대한약사회도 25일 판매주의보를 내렸다. 의료계의 대응이 오히려 정부보다 빨랐다는 지적이다. 의협은 26일 성명을 내고 식약처의 판매 중단 조치가 ‘뒷북’이라고 비판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식약처는 허가기관이 아니라 직접 문제를 찾아내는 전문적인 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잔탁 29개 제품과 라니티딘 6개를 수거해 검사한 후 NDMA가 불검출됐다고 발표했던 데 대해 NDMA 성분 특성을 언급하며 해명했다. △NDMA는 실온에서 보관하면 14일 이후부터는 스스로 분해되기 시작하므로 추적이 쉽지 않고 △완제품 의약품에서도 상태가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성분이어서 검출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번 검사에서도 7개 라니티딘 제조소 모두가 생산한 원료의약품에서 NDMA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단위(로트)별로는 검출되지 않은 것도 있고 일부에서는 최대 53.50ppm까지 나타나는 등 검출량의 편차가 컸다고 덧붙였다. 식약처 관계자는 “200여개 제품을 모두 검사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일단 16일 잔탁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조사해 발표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민호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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