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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치료했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생을 마감했던 서울 삼성강북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고 임세원 교수. 의사자 지정이 불발되면서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도망쳤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다른 의료진을 대피시키느라 목숨을 잃었다’는 유족들의 주장과 ‘적극적인 구조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정부 측 입장의 대립은 법정 공방을 거친 후에야 결론이 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의사상자심의위원회가 지난 6월 25일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5일 공개했다. 관련 법규에 따르면 의사자 및 의사상자란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생명과 신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행위를 하다 사망 또는 부상을 입은 사람을 말한다. 임 교수는 지난해 12월 31일 병원에서 자신이 진료했던 조현병 환자 박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명을 달리했다. 당시 상황이 녹화된 폐쇄회로(CC)TV에는 임 교수가 박씨로부터 피신하다가 두 차례 가량 멈춰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도 임 교수가 근처에 있던 간호사에게 대피하라고 외쳤던 상황이 확인돼 의사자 지정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그러나 심의위원회 판단은 달랐다. 복지부 관계자는 “CCTV 녹화 영상은 물론 경찰 조사 내용도 유심히 살펴 봤지만 당시 임 교수의 행동이 의사자 지정 기준인 ‘적극적ㆍ직접적 행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위원회가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화재 발생 현장에서 ‘불이야’ 하고 외쳤던 것만을 가지고 구체적인 구조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덧붙였다. 임 교수가 박씨를 자신 쪽으로 유인했다고 보기 어렵고 도망치라고 외친 것도 적극적 구조 행위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심의위원회는 임 교수 사건이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의사자 지정 판정을 한 차례 보류하고 추가 검토 작업까지 거쳤지만 위원 15명 모두 ‘의사자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동의했다고 한다.

심의위원회 판정에 유족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유족 측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원의 김민후 변호사는 “사건 당시 임 교수가 본인의 안위만을 위해 탈출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서 타깃이 된 것”이라며 “전후 구체적 사실 관계에 대한 분석 없이 마치 칼을 든 환자 앞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아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심의위원회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오는 11월쯤 임 교수의 의사자 지정과 관련한 추가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와는 별개로 심의위원회 결정에 대한 행정 소송도 이미 제기한 상태다. 임 교수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용식 PD yskit@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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