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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업자 김재관씨
김재관 건축가가 집수리에 쓰인 삽을 들고 있다. 손수 고친 명륜동 자택은 수년에 걸쳐 다세대주택을 김씨 부부와 아들내외, 작업실로 바꿨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1997년 외환위기 때 건축설계사무소를 내고도 10개 남짓 개신교회를 설계했다. ‘교회 전문가’로 명성을 쌓으며 굵직한 건축상도 여럿 받았다. 2008년 한 문화행사에 초대돼 ‘일일 설계사무소’를 열었다가 그 길로 집수리업자가 돼 11년째 헌 집만 고친다. 중견 건축가 김재관(57)씨 얘기다. 최근 헌 집을 고치며 만난 사람들을 담은 에세이 ‘수리수리 집수리’(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글 좀 쓰는 건축가’로 알려진 그의 첫 저서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만난 김재관 건축가는 “신축 설계에서는 그 단서가 땅이고 집수리 설계에서는 집”이라고 말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은 원곡을 그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가수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재량을 주잖아요. 집수리가 이 프로그램 편곡과 비슷하죠.”

김씨가 2008년부터 ‘편곡’을 전문으로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2008년 연 ‘일일 설계사무소’에 찾아온 상담자가 김 건축가가 나온 신문을 얼굴 옆에 대고 “제대로 찾았다”며 자기 집에 관해 빽빽하게 적어놓은 공책을 내놨다. “집을 잘 고쳐 애들 아빠 선물로 주려고요.” 건축주의 말을 들은 그는 바로 집을 보러 갔고 설계안을 그렸다. 한데 공사비가 문제였다. 세 군데 시공사에서 부자재를 달리 한 세 가지 도면으로 견적을 냈는데 희한하게 똑같은 비용을 청구했다. ‘면적당 단가’라는 주먹구구식 셈법이 업계에 공공연히 통용되고 있던 셈이다. 직접 시공해보자는 오기가 생겼고, 그렇게 11년간 15채를 수리했다.

건축가에서 집수리 전문가가 된 김재관씨.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김 건축가는 “현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집을 지으면서도 설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통 건축가가 설계하면 시공사가 설계대로 짓는다. 한데 (건축가가 시공을 하면) 더 좋은 생각이 나면 설계를 바꿀 수 있다. 저한테 현장은 설계 행위”라고 덧붙였다. 직접 시공을 해보니 건축가의 핵심 업무인 설계와 감리는 집 짓기의 시작과 끝에 불과했다. 목수와 전기 배선업자 등 각종 기술자를 불러 모으고 그들을 어르고 달래 정해진 예산과 기한에 맞춰 집을 고치는데 들이는 품과 시간이 훨씬 많았다.

건축가, 시공자 입장에서 좋은 건축주의 예를 들어달라는 질문에 그는 “요구와 문제를 정확하게 말하라”고 답했다. “창피해서 예산을 감추거나 부풀리는 사람이 있어요. 이게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켜요. 자기 기호를 부정직, 부정확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아하게 말해야 될 것 같아서. 가령 ‘모던하게’ 고쳐달라고 하면 건축 장르상의 모던인지 본인이 생각하는 모던인지 구분이 안 가잖아요. 차라리 생활패턴을 말해주는 게 좋아요. ‘방은 좁아도 좋아요, 거실은 러닝셔츠 입고 굴러다녀도 좋을 만큼 편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정서적인 측면을 말해주는 게 좋습니다.”

명륜동 자택은 김씨가 열 번째로 수리한 집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방 9개의 다가구 주택을 수년에 걸쳐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집으로 바꿨다. 이 집을 사고 수리하는 사연도 물론 책에 담겨있다.

‘외관만 봐서는 신축 같다’는 말에 “집의 뼈대가 남아있다. 바닥도 지붕도 그대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김 건축가가 수리한 집 10여 채는 모두 이렇게 다시 지은 집 같다. “가구 사이즈, 신체 사이즈, 삶의 방식이 30,40년 전과 비교해 많이 바뀌었죠. 연탄광은 필요 없고, 예전 단독주택 옆을 지나는 보행자는 동네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자동차고, 그러니까 소음 막기 위해 가벽도 필요하죠. 달라진 생활방식을 집수리 하면서 반영하는 거죠.”

산 바로 아래 낮게 웅크린 일명 '두꺼집'의 수리하기 전(왼쪽)과 후의 모습. 토굴처럼 어두운 집 지붕에 유리를 끼워 넣어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김재관씨 제공

집수리를 하는 10여년 간 건축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축가와 많이 멀어졌다”고 할 정도다. 좋은 집에 대한 개념도 달라졌다. “건축의 아름다움, 균형을 중시했는데 이제 리얼리티가 중요하죠. ‘설계대로 시공할 수 있는가’,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예전에 중시했던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무기 디자인할 때 쓸 데 없는 것 다 제거하고 필요한 것만 남는 것처럼. 그런데도 좋은 집이 나왔고 상도 탔죠. 건축의 아름다움은 추구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다 나온 결론이에요. 극단적 기능주의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거죠.”

김씨의 남은 목표는 ‘더 좋은 건축가’가 되는 거란다. 그는 “의사들이 의술을 잘 익히려고 사람 몸을 해부하듯, 이 길(집수리)에 들어서 비로소 집을 잘 아는 사람이 됐다”고 전했다. “한국의 옛날식 집을 저만큼 아는 사람이 드물 거예요. 10년간 그 많은 집을 부수고 다시 짓다 보니, 헌 집 보면 뼈대가 어떤지를 알아요. 이제 전통적 개념의 건축가로 돌아갈 겁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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