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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오른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16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회의실에서 조재우 논설위원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한호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로 우리 사회가 한 달여 동안 격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국 사태는 여전히 모든 사안을 흡입하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정의와 상식이 충돌하고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추락하고 있다. 특히 입시제도는 기득권자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대 갈등이 첨예화하는 것을 목격했고, 진영 논리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수적으로 우세한 위치에 있으면서 정치와 경제 등 다방면에서 자원을 독점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덕적 상대 우위에 있다고 여겨졌던 86세대 정치인들에 대한 믿음도 깨지고 있다. 정치는 두 갈래로 쪼개져 갈등하고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다. 한반도 주변 상황은 2차대전 이후의 질서가 흔들리는 혼돈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 많지만 해결책은 요원하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조 장관을 임명할 수밖에 없던 정치적 사정은 이해가 된다. 임명해도, 임명 안 해도 독배를 마시는 거였다. 더군다나 검찰이 나선 상황에서 두 개의 독배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촛불로 태어난 정권의 미션이 과연 진영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던가, 이 질문에 ‘예스’라고 답하기가 망설여진다면 판을 이렇게 짜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정의와 상식의 충돌’이라고 지적했는데.

“정의와 공정, 상식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에서 여러 차례 충돌하고 있다. 정의와 공정이 충돌했던 건 젠더 문제였다. 피해자는 정의를 얘기하고 가해자는 공정을 얘기했다. 이번에는 정의와 상식이 부딪혔다. 법무부 장관이니 상식적으로는 사퇴하고 의혹을 해소했어야 한다. 특히 20대 대부분 청년은 조 장관의 딸과 같은 혜택을 누릴 기회가 없었고 피해자, 소수자라고 느낀다. 그런데 조 장관 입장은 불법은 없고 의혹만 있다는 거다. 검찰개혁이라는 역사적 책임을 얘기하지만, 젊은이들은 ‘당신들만이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이냐’는 반발심이 들 거다.”

-불공정과 부정의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았다.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위아래의 문제라는 제자의 말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86세대가 지금 한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민주화 기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노려온 것들이 이제 한국 사회에서 완전한 인사이더가 된 것이다. 그 동안 보수 쪽은 특혜를 많이 누려왔다. 그런 것을 일관되게 비판해 온 진보조차 ‘똑같이 누리고 있었구나’라는 부분에 대해 분노했던 거다.”

-세대갈등이 부각된 것은 우려스럽다.

“86세대가 대체로 정치적 정당성을 독점하고 권력을 나눠 가지다 권력의 주류로 접어든 게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20년이 86세대의 끝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고 보는 것 같다. 반면 젊은 세대에게 86세대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은 까마득하게 먼 옛날 얘기다. 청년 문제라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 문제다. 기성세대가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의 20대는 세금 내고 연금 내서 기성세대에 돈을 줘야 하는 집단이다.”

-진영 논리가 더욱 깊어졌다.

“대통령이 결국 진영 논리를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이번 정부는 처음부터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대선 과정에서부터 아예 한국 정치의 틀을 바꾸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17년 대선의 경우에는 워낙 특별한 선거였기 때문에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승리한다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훨씬 화합적인 혹은 합의정치적인 스탠스를 설정할 수 있었다. 아니면 선거 이후 임기가 시작된 다음에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계속해서 진영 논리가 강화하는 방향으로 왔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아쉬워한다. 문재인 정부가 해 온 인사에 원칙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인적 청산이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개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개혁을 맡아야 한다는 원칙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 이외의 다른 기준이 안 보인다. 신념을 같이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 신념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능력을 가진 사람을 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촛불 정부는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자기네들끼리 한다는 측면에서는 똑같구나’라는, 정치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그게 진영 논리를 강화하는 원인인 것 같다.”

-86세대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86세대가 유난히 나쁜 인간들은 아니다. 1980년대 식으로 쟁취하는 것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만 있고 매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사실 86세대도 거의 없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보 보수, 여당 야당이든 간에 인사이더에 속한 사람, 상층부에 속한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 묻힐 수 밖에 없는 숯 검댕이들을 86, 진보정치인도 똑같이 묻힌 거다. 그들이 하나의 정치 집단으로써 80년대 이후로 의미 있는 진화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판 받아야 할 부분이다.”

-진보나 보수보다 우리 사회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은 없나.

“데이터 상으로 보면 이념보다 더 잘 설명하는 건 탈물질주의다. 한국에서 진보가 되는 사람들이 대체로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에서 출발한다. 언론 자유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환경은 잘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등의 가치다. 별로 정치적이지도 않고 학교에서 배웠던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상식적인 가치관이다. 한국은 워낙 물질주의적인 사회다.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반반 정도 분포하는데 한국은 물질주의자가 85%고 탈물질주의자가 15% 밖에 안 된다. 탈물질주의자들은 매일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물질주의자들에 둘러 쌓여 살아간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이런 상식적 가치관을 계속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쟤 진보야’ 라고 분류하는 거다. 부동산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을 보면 대체로 물질주의자들은 왜 계속적인 성장 추구를 못 하도록 방해하느냐고 반발한다. ‘강남좌파’는 행동은 물질주의인데 말은 탈물질주의로 하지 않았나. 그것의 불일치가 사람들을 화나게 한 거다.”

-조국 사태의 핵심은 계급의 대물림 아닐까 싶다.

“농담 좀 섞자면 최상층은 좋은 직업이나 스펙을 물려주는 데 큰 관심은 없다. 그냥 빌딩을 주면 된다. 그건 아주 극소수 사람들의 얘기다. 일반적으로 교육이 해야 하는 역할이 계층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기능을 상실한 지 꽤 됐다. 지금과 같은 탈산업화 시대, 저성장 시대에는 일자리가 없다. 권력이나 네트워크나 부를 가진 사람들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분노할 수 밖에 없다.”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 추락도 문제다.

“높이 쌓여 있던 신뢰가 우르르 무너진 건 아니고 워낙 신뢰가 낮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냉소를 더 깊게 했다. 가뜩이나 별로 못 믿는 상황에서 그래도 촛불로 태어난 정부라는 특별한 기대 같은 것이 있었는데 ‘똑같네’라고 냉소하게 만든 것이다. 신뢰가 무너졌다기보다 불신이 깊어졌다고 할까.”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갈등과 무한투쟁 상태에서 화합과 공존으로 이행할 방법이 있겠나.

“‘시간 제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변수들이 있는데 이런 식의 시간을 얼마나 더 보낼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하나는 성장률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세직 교수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1년에 0.2%씩 한 정부가 지나면 1% 낮아지는 현상이 25년째 반복되고 있다. 그때 7%대 성장률이었던 것이 지금 2%가 됐다. 1% 성장, 심지어 제로 성장으로 가면 패닉이 올 거다. 성장률이 낮아졌어도 아직은 OECD 전체로 본다면 평균 정도는 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방치해 왔다는 것은 사실 지나간 모든 정치세력과 국민 전체가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 놓은 성장에 대해서 ‘지대(地代) 추구’를 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대간에 정의롭지 않은 거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성취에 대해 지대 추구를 해 왔다는 것은 미래에 넘겨줄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인구구조다. 불과 2~3년 전에 인구학자들이 내놓은 예측보다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또 국제정세가 한반도를 축으로 해 G2 대결이 심화되는 등 근본적으로는 1945년 체제가 흔들린다. 2차대전 이후의 질서가 흔들리고 우리가 각축장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인데 거기에 북한이라고 하는 변수까지 있다. 이게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우리가 갈등하고 투쟁할 여력이 있느냐가 결정된다. 참 어려운 문제다.”

인터뷰=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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