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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한 이후 글로벌 콘텐츠 시장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방영예정인 '킹덤2'. 넷플릭스 제공

지금 우리네 영상 콘텐츠업계는 한 마디로 개화기의 혼돈에 직면해 있다. 지금껏 우물 안에서 ‘시렁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부서진 벽돌 가장자리에서 쉬기도 하며 발로 진흙을 차면 발등까지 흙에 묻히는’ 즐거움을 누리던 개구리는 거북을 만나 바다라는 넓은 세상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안타까운 건 바다처럼 넓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우리도 모르게 밀려오고 있었지만 코끝까지 물이 차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는 거대한 바다가 우리네 우물을 뒤덮어버리려 하자 우리도 부랴부랴 이에 대응하는 OTT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지상파 방송 3사(KBS, MBC, SBS)와 통신사 SK텔레콤이 합작해 OTT 웨이브를 출범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대응하듯 CJ ENM과 JTBC가 합작 OTT를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그간 치열한 경쟁을 해오던 방송사들이 이렇게 합작까지 선언하게 된 건 그만큼 다가오는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야기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했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과연 월정액을 내며 우리네 소비자들이 넷플릭스를 볼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비롯해, 김은희 작가의 ‘킹덤’ 같은 일련의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스케일은 훨씬 커진 작품들을 내놓으면서 조금씩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여기에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같은 작품에 넷플릭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이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백 억 규모의 드라마들이 선을 보였다. 그 행보는 마치 국내 드라마에 투자하는 넷플릭스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가입자 수를 늘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넷플릭스가 국내 영상 콘텐츠업계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글로벌 콘텐츠’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경험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제작비 600억을 투자한 ‘옥자’, 회당 제작비 12억에서 15억을 쓴 ‘킹덤’ 같은 작품들로 눈이 높아졌다. 게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워킹데드’나 ‘브레이킹 배드’, ‘나르코스’, ‘기묘한 이야기’ 같은 영화와 구분이 가지 않는 높은 완성도의 해외 콘텐츠들을 경험했다.

물론 일찍이 스튜디오 드래곤 같은 자회사로 설립해 ‘미스터 션샤인’ 같은 대작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온 CJ ENM 같은 콘텐츠회사는 이런 국내 소비자들의 변화기류를 일찍이 감지했지만, 과거 플랫폼 시대의 기득권을 갖고 있었던 지상파는 비대해진 덩치만큼 대처도 미완적이었다. 한해 적자 규모가 1,000억 원대에 이른 MBC와 KBS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지만 그 대처방식을 보면 과연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비용절감’이라는 대목이 그렇다. 제작편수를 줄이고 신입사원 채용을 백지화하거나 줄이는 방안을 내놨지만 업계반응은 냉랭하다. 문제는 비대해진 정규인력, 그 중에서도 억대 연봉을 받아가는 간부들에게 있는데, 애꿎은 비정규직(방송작가 같은)과 신입사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 KBS의 정규직원은 무려 4,500여 명에 달한다. JTBC의 정규직원이 올 3월 기준으로 232명에 불과한 것과 비교해보면 어째서 KBS가 1,00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는가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면서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를 허용해주면 지금의 비상체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바닷물은 이제 본격적으로 우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서비스를 시작할 디즈니플러스 같은 새로운 OTT들의 면면을 보면 넷플릭스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위기론까지 만든 디즈니플러스 OTT는 디즈니캐릭터, 마블 슈퍼히어로, 스타워즈, 픽사 캐릭터들까지 라인업으로 갖추면서 그간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그 콘텐츠들을 지워낼 예정이다. 그나마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라고 해도 자체 제작하기보다는 현지 제작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해왔지만, 과연 모든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디즈니플러스가 그런 현지 제작사와 상생하는 투자방식을 시도할 지는 의문이다. 막강한 자체 콘텐츠와 캐릭터를 갖춘 OTT의 등장은 그래서 우리가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3년 간 겪은 콘텐츠 개화기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예감하게 한다.

방송사들은 기존의 플랫폼 시대의 향수를 버리고 변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몸집을 줄이며 본래의 목적이랄 수 있는 공영성을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만들어낼까를 고민해야 하고, 상업방송들은 플랫폼에 집착하기보다는 글로벌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로의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정부는 국내와 해외를 경계로 삼기보다는 보다 유연하게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우물 안에서의 남은 마지막 즐거움에 미련을 둘 것이 아니라.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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