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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이형호군 유괴ㆍ살인’ 범인은 오리무중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통과도 미제사건이 계기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드러났다. 사진은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내 최악의 미제사건 중 하나였지만,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의 의지와 비약적으로 발달한 과학수사 덕분에 33년 만에 해결의 전기를 맞았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히던 사건들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남 집 근처 놀이터에서 사라진 뒤 결국 죽은 채로 발견된 ‘이형호군 유괴ㆍ살인사건’과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다. 이 사건들은 아직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은?

노태우 정권 당시인 1991년은 대한민국 수사경찰에도 기록적인 해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더불어 경찰이 끝내 검거에 실패하면서 역대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회자되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및 ‘이형호군 유괴 살해사건’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그 해 1월 29일 이형호(당시 9세)군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집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후 “플라자호텔 커피숍으로 나와달라”는 요구를 시작으로 범인의 협박전화는 44일 동안 64차례나 걸려왔다. 범인은 전화를 통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에 가명으로 계좌를 개설해 총 4,000만원을 입금하라 지시했다가 10여곳의 공중 전화부스로 몸값 인수장소를 수시로 바꿨다. 형호군의 가족들과 경찰은 내내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이 과정에서 유괴범을 코앞에서 세 번이나 놓치면서 형호군을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관련기사)이 쏟아지기도 했다. 형호군은 결국 같은 해 3월 13일 한강공원 인근 배수로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특히 유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질식사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 큰 공분을 샀다. 시신이 발견된 이후로 범인의 전화는 뚝 끊겼다.

이 사건은 2007년 개봉된 영화 ‘그 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형호군 유괴ㆍ살인사건으로 온 나라가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던 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에서는 초등학생 5명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인근 와룡산으로 놀러 갔다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가족들은 가출 동기가 없다며 적극적인 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5명이나 한꺼번에 납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모든 군인과 경찰이 수색작업에 총동원되고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졌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실종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 도토리를 줍기 위해 와룡산에 올랐던 한 시민에 의해 아이 5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들의 사인이 자연사라고 우기던 경찰은 타살이란 법의학적 결론이 나오자 범인 수사에 나섰으나 아직 범인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건 역시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2002년 9월 대구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 산기슭에서 발견된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 발굴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대 검사관들이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구리 소년 유족 대표로 2011년 2월 ‘반인륜범죄 공소시효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 나섰던 철원군의 아버지 우종우씨는 당시 “이제 우리 다섯 부모들은 처벌도 원망도 이유도 묻지 않을 것”이라며 “어린애들을 왜 죽여야만 했는지 그 사실만 알려주면 현상금 5,000만원을 주겠다”고 애끓는 슬픔을 드러내기도 했다.

◇살인죄 공소시효 없앤 ‘태완이 사건’

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장기 미제 사건도 있다.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의 한 골목길에서 학원에 가던 김태완(당시 6세)군은 검은 비닐봉지 한 가득 담긴 황산을 갑작스레 뒤집어썼다. 두 눈은 곧바로 멀었고 몸 반절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던 아이는 49일 만에 숨을 거뒀다. 태완군은 황산이 무엇인지도 몰라 끝내 자신에게 끼얹어진 액체가 ‘뜨거운 물’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현장에서 곧바로 도주한 범인의 행방은 묘연했다. 대낮이었지만 유일한 목격자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제대로 진술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당사자인 태완이의 증언은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한 말은 신빙성이 없다’며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7월 10일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도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7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일명 ‘태완이법’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통과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해 국회는 ‘태완이법’이라고 알려진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모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이지만 정작 태완군은 단 보름 차이로 ‘이미 시효가 끝난 사건’이 돼 소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럼에도 태완군의 어머니는 “제2, 제3의 태완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태완이법으로 범인을 끝까지 쫓을 수 있게 된 주요 미제 살인사건은 2003년 ‘포천 여중생 납치살인사건’ 2004년 ‘경기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포천 여중생 살인 사건은 2003년 11월 실종된 여중생이 3개월 뒤 포천의 한 배수로에서 알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고 손톱과 발톱에는 평소 사용하지 않는 붉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2004년 10월 경기 화성 태안의 와우리공단 정류장에서 행방불명 된 여대생은 실종 46일 만에 정류장에서 5㎞ 떨어진 야산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사체 부패가 심하고 목격자도 없어 경찰 수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지만 법 개정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기회가 열렸다.

◇범인 못 찾은 20만명의 피해자들

검찰과 경찰 통계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즉 아직까지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이 20만 건 이상이다. 일상을 살아가던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사건에 휘말렸고, 가해자에 대한 단죄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살인죄 공소시효는 폐지됐고, 수사 기법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특정도 최근 발전한 유전자(DNA) 분석 기법 덕분이었다.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등 다른 미제 사건 해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가 가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제사건은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일 뿐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이번 화성 사건사례처럼 언제든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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