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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시내 한 개고기 식당의 점심시간 풍경. 당국의 개고기 소비 자제령이 내려지 뒤었지만 시민들이 찾고 있다.

부패, 마약, 알코올 중독 등 급속한 경제성장 이면의 수많은 사회적 병폐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이 이번에는 ‘개고기 식용 문화’를 향해 칼을 빼 들었다. 높아지는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 늘어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문명국가’ 이미지 강화를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양대도시 ‘개고기 근절’ 선언 

지난 15일 남부 경제수도 호찌민시는 ‘개고기 식용 문화 근절’을 시민들에게 권고했다. 인류와 오랜 기간 함께해온 개가 반려동물로, 나아가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되는 시대적 분위기 그리고 광견병 등 질병 확산 우려가 그 배경으로 제시됐다. 호찌민시는 “개와 고양이를 도살, 거래하고 먹는 행위가 관광객과 거주 외국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라며 “광견병 등 관련 질병 확산 위험도 높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수도 하노이시 당국도 개와 고양이 식용을 자제해달라는 권고를 내면서 베트남 내 개고기 식용 문화 근절 신호탄을 쏘아 올린 바 있다. 하노이시도 당시 수도로서의 이미지 훼손 방지를 가장 큰 목적으로 들었다. 언론에도 관련 캠페인에 나설 것을 촉구한 하노이시는 ‘2021년 개고기 완전 추방’ 목표도 밝혔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창설 52주년을 맞아 지난달 8일 오전 베트남 외교부에서 아세안기 게양식이 열렸다. 베트남 주재 아세안 회원국 대사들과 기구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세안 기가 올라가고 있다. 베트남은 내년 아세안 의장국과 함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국제 무대를 누비게 된다.

이런 움직임은 베트남이 경제성장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하노이 외교가 관계자는 “베트남이 내년 자국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외교력을 국제무대에서 행사하게 된다”며 “그에 걸맞은 국가 이미지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내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비상임)을 맡는다. 특히 아세안 의장국만 따져도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굵직한 회의들, 또 그를 위한 사전 외교장관 회의, 고위관리회의(SOM) 등 200회 이상의 국제회의를 개최하게 된다. 외국인 관광객 수도 지난해 전년 대비 20% 늘어난 1,550만명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비슷한 추세를 이어 가는 만큼 국제행사가 몰리는 내년 관광객 증가세는 이를 추월할 것으로 기대된다.

 ◇뿌리 깊은 문화, ‘근절은 글쎄’ 

이 같은 당국의 움직임에 발맞춰 개 관련 언론 매체들의 기사가 부쩍 증가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공안(경찰)이 불시 단속을 벌여 업주에 과태료를 부과했다든가, 도살 직전의 개 수십 마리를 구출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관련 동영상들은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개고기 애호가, 판매상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매체 기자 A씨는 18일 “당국 움직임이 있으니 기사가 나오는 것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고 알아도 어쩌지 못하는 뿌리 깊은 문화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캠페인으로 개고기 식용 문화가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찌민 시내 한 개고기 식당 풍경.

세계개협회에 따르면 베트남 국민의 80%가 개고기 섭취를 경험했다. 이에 대해 A기자는 “중국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은 북쪽 지역에서 개고기 소비가 더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남부 호찌민의 개고기(Cay) 식당은 하이퐁, 남딘 등 북부 도시 이름을 딴 경우가 많다. 인구 1억의 베트남에서 매일 1만마리 이상이 도살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그보다 더 많은 연간 500만 마리가 소비되는 것으로 본다.

베트남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중국, 한국과 비슷하다. 주로 집안에 귀한 손님이 왔을 경우 키우던 개를 잡아 대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개고기를 먹으면 액운을 쫓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월말에 개고기 소비가 붐을 이룬다. 특히 설 연휴(구정ㆍ베트남어로 뗏) 때 다른 식당들은 오래 문을 닫아도 개고기 식당들은 그렇지 않다. 호찌민 시내 한 개고깃집 주인은 “그때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소비에 개 도둑 기승 

하노이 시내에서 20㎞가량 떨어진 마을(옌쯔엉)에서는 마을 전체가 뗏 연휴 기간 개고기를 먹으며 잔치를 벌인다. 7,000여 주민들이 음력 1월 4일 하루에만 4톤의 개고기를 소비한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 투(82)씨는 “정부가 금지하면 따르긴 하겠지만, 지키기는 아주 힘들 것”이라고 현지 한 매체에 말했다. 그는 또 “개고기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 단백질을 섭취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개고기 식용 문화에 대한 외부 시선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하노이시의 개고기 식용 자제 촉구에도 불구하고 개고기 소비는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지 매체 탄닌은 해당 분야 전문가를 인용해 “소비가 줄었다는 징후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식용 개들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것인데, 상당 부분 개 도둑들이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 시내 한 개고기 식당의 점심 시간 풍경. 직장인들이 자동차를 이용해 단체로 먹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달리는 상황에서 개 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당연한 일. 베트남에서는 키우던 개가 사라졌다, 도둑맞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돈다. 뛰노는 개를 안고 내달리거나, 길거리 개는 물론 주인과 산책 중인 개까지 오토바이를 탄 채 날치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개 때문에 살인 사건도 일어난다. 지난 5월 하노이 인민법원은 개 도둑을 죽인 혐의로 개 주인에게 7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또 2012년에도 한 마을에 빈번하게 출몰하는 개 도둑을 마을 주민들이 추적해 결국 2명의 도둑을 잡아 때려 죽이기도 했는데 당시 개 도둑을 폭행, 사망에 이르게 한 10명의 주민이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현지 매체 응오이 라오동은 “여러 이유로 개고기 식용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면서 “이것은 인민의 안전을 지키고, 동시에 사회의 안정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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