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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관광지 같지 않은 제주, 애월읍 하가리
애월읍 하가리는 이름난 관광시설이 없는 대신 자연스럽게 쌓은 밭담, 돌담이 자원이다. 마을 어디나 멋스러운 현무암 돌담길이다. 공항과 가까워 돌담 위로 비행기가 낮게 떠 가는 모습도 수시로 볼 수 있다. 제주=최흥수 기자

관광을 굴뚝 없는 공장에 비유하지만 제주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쓰레기와 오ㆍ폐수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고, 난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 문제까지 불거지면 관광은 더 이상 청정 산업이 아니다. 섬 전체가 관광지로 변해 버린 지금 역설적으로 제주에서 제주다운 모습을 찾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애월읍 하가리는 그 와중에도 ‘제주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물론 하루 이틀 묵어갈 외지인의 시선이지만, 아직까지 대규모 관광시설이 없어 볼수록 매력 있고, 걸을수록 즐거운 마을이다.

◇전설의 ‘연화지’, 기록의 하가리

제주 시내에서 애월 방향으로 1132번 도로를 달리다 약 15km 지점 자운당교차로에서 왼편으로 ‘하가’ 방면 이정표가 나타난다. 도로 초입에 ‘연꽃마을 하가리(下加里)’라 쓴 대형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어디나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한 제주에서 하가리가 외지인에게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라고는 연꽃 연못 ‘연화지’밖에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하가리 마을 중앙의 연화지. 연꽃이 지고 야자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가리 마을 풍경. 빨간 슈퍼마켓 건물 위 전깃줄에 곧 강남으로 날아갈 제비가 앉아 있다.

하가리는 걸어 다녀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동네다. 연화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다 보면 옛 집과 돌담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의외의 제주를 만나게 된다. 마을의 자랑 ‘연화지’의 연꽃은 이미 끝물이라 화사한 꽃구경도, 그윽한 꽃향기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산책로 가장자리에 야자수가 늘어서 있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뿐이다.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 설화를 비롯해 제주는 설화와 신화의 땅이다. 연화지도 크지 않지만 설화를 담고 있다. 하가리는 마을이 형성되기 전 산림지대였다. 고려 충렬왕 때 도적이 들어와 큰 연못에는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작은 연못에는 초막을 짓고 살면서 약탈을 일삼았다. 어느 날 신임 판관 행차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감지한 마을의 ‘뚝할망’이 관가에 미리 신고해 도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뚝할망에게 관에서 직함을 내리고 제주향교에 제신으로 모셨다는 내용이다. 실제와 가상의 인물이 뒤섞여 다소 혼란스럽다.

연못 한가운데에 정자를 지을 때 불에 타나 남은 목재와 기와가 발견됐는데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중엽 제주목사 한응호가 이곳에서 연 잎에 술을 따라 마시고 시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연꽃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종 때 연못 주변에 돌과 흙을 쌓아 우물을 만들고 연꽃이 자생하자 연화지(蓮花池)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제주는 설화와 더불어 기록의 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연화지 설화는 연못 초입의 비석에도 새겨져 있고, 도로가 안내판에도 만화로 그려져 있다. 2010년 세운 연화지 표지석에는 비를 세운 이유와 당시 이장과 개발위원장 및 위원 명단이 빠짐없이 적혀 있다. 2015년 건립한 복지회관 기념비와 2011년과 2015년 각각 준공한 다가구주택(연화주택) 기념비에도 힘을 모은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담쟁이 넝쿨이 뒤덮은 옛 창고 건물은 현재 ‘더애월’이라는 식당으로 변했다.
제주는 기록의 고장이다. 연화주택 건립기념비의 옆면과 뒷면에도 당시 힘을 모았던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집과 맞붙은 텃밭을 감싸고 있는 담장이 멋스럽다.

새로 짓고 있는 ‘하가리민회관’ 건물 앞에는 설촌(設村) 유래 표지판이 서 있다. 고려시대 화전민촌으로 시작해 조선시대에 상가락과 하가락으로 나뉘게 된 내력이며, 풍수지리와 마을 골목길의 구조까지 동원해 ‘가락’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연유를 시시콜콜하게 모두 적어 놓았다. 그래서 주민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마을의 원래 이름 ‘더럭’이 한자어 ‘가락’으로 변한 과정을 적은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배시시 미소 짓게 된다. ‘더’ 에서 ‘더할 가’, ‘럭’에서 ‘즐거울 락’ 자를 유추해 ‘가락(加樂)’이 됐다는 설명이다. 뜻과 음에서 한 글자씩 따온 셈이니 억지스럽다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즐거움이 더해지는 동네라니 이보다 좋은 지명이 또 있을까.

◇걸을수록 즐거운 곳, 하가리 골목 여행

돌담은 제주 어디에나 흔하지만 관광지의 돌담은 인위적으로 쌓은 게 대부분이다. 하가리에서 여행객의 마음을 끄는 가장 큰 요소는 자연스러운 돌담이다. 제주 돌담의 매력은 생긴 대로 올려 놓은 멋스러움에 있다. 다듬고 잘라서 아귀가 딱 맞게 쌓은 돌담에선 찾기 힘든 삶의 질감이 묻어 난다. 하가리에는 밭을 일구면서 나온 돌로 허술하게 경계를 지은 밭담과 집집마다 울타리가 되어 주는 골목 담장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돌덩이 사이로 무시로 불어대는 바람이 부딪히듯 가볍게 통과하는 구조다. 초록빛 채소가 싱그러운 밭담 사잇길로, 오밀조밀 이어지는 골목길로 슬며시 휘어지는 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것도 아닌데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골목길 나들이, 그러다 낯선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멋쩍게 입꼬리를 올리게 되는 나만의 산책이다.

마을 주민이 낮은 밭담 사이로 난 골목길을 걷고 있다.
현대식 카페인 ‘살롱드라망’의 담장도 자연스런 돌담이다.

하가리에는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초가도 세 채 남아 있다. 문귀인가옥(하가로1길 2-5), 변효정가옥(하가로1길 11-4), 문시행가옥(하가로 141-23)으로 불리는데, 도로에 안내판도 없고 마을 안 길에 숨어 있어 일부러 찾아가야 볼 수 있다. 문시행가옥 부근에는 말의 힘으로 곡식을 빻은 ‘말방아’도 남아 있다. 육지에서는 주로 소의 힘을 이용했던 연자방아의 일종으로 잣동네 삼거리에 있어서 공식 명칭은 ‘잣동리 말방아’다. 마을에는 현무암밖에 없는데, 매끈한 화강암 중에서도 방아를 만들 정도로 큰 받침돌과 윗돌을 어디에서 구해왔는지가 의문이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세 채의 초가에도 안내판이 있지만, 제주의 전통 가옥과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아쉬운 수준이다. 대신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 둥그런 초가지붕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제주국제공항을 오가는 길목이어서 하가리에선 초가뿐만 아니라 돌담 위로, 주택과 나무 위로 낮게 떠가는 비행기를 수시로 볼 수 있다.

제주 전통 초가집, 변효정가옥.
제주 전통의 문귀인가옥.
둥그런 초가지붕 위로 비행기가 낮게 날고 있다.
잣동리 말방아. 안내문을 보면 이렇게 큰 받침돌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마을에서도 의문인 듯하다.

하가리 더럭초등학교는 인생사진 명소로 제법 알려진 곳이다. 더럭초등학교는 1946년 ‘하가국민학교’로 개교해 1949년 불타서 없어졌다. 1954년 ‘더럭국민학교’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1996년 학생 수 감소로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가 됐고 병설유치원도 폐원했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는 2012년 삼성전자의 컬러 프로젝트 사업으로 건물 외관을 무지개색으로 단장하면서 관광 명소로 부활했다. 이후 지역 주민과 학부모ㆍ교직원으로 구성된 ‘더럭분교발전위원회’가 학교 살리기에 나섰고, 지난해에는 학생 수가 100명이 넘어 다시 초등학교로 승격되기에 이르렀다. 학교 측은 관광객의 학교 출입을 막지는 않지만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줄을 쳐서 운동장 테두리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알록달록 색을 입을 더럭초등학교. 관광객은 운동장 테두리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겉보기는 예쁘지만 학부모들은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교육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학교가 되살아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제주교육청이 시골학교 부활 사례로 홍보하는 게 학부모로서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에서 인근 상가리로 이주한 정보배씨는 “더럭초등학교 학생의 90% 이상이 이주민 자녀다. 학생 수가 늘어난 만큼 교사를 증축하고 급식실을 확장하는 게 시급한데, 현재 건물은 낡고 좁아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운영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제주의 다른 학교에 비해 교육 여건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잠깐 여행하는 사람은 겉모습이 예쁘기만 하면 되지만 내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면 생각이 복잡해져요. 모든 게 흉하지도 않지만, 모든 것이 아름답지도 않죠.” 제주 이주민의 솔직한 심경 고백이다.

연화지 인근의 보배책방.
보배책방 진열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 띠지의 문구가 제주의 작은 책방과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서울의 대형 출판사에서 기획을 담당했던 정씨는 하가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보배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제주에 100개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서점 중 하나다. 3평 남짓한 공간에는 700여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 책방을 찾는 손님은 여행객보다 동네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지난 5일 더럭초등학교 인근 도로변에 자리 잡은 책방의 넓은 유리창으로 오후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고, 아빠를 따라온 초등학생 어린이가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느리게 읽기, 함께 읽기’라 쓴 서점 간판의 표어가 썩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진열대 한가운데에 장편소설 ‘섬에 있는 서점’이 놓여 있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띠지의 홍보 문구가 오래 여운으로 남는다.

행복한 순간을 기록한 사진으로 가득한 강연욱 사진관 내부.
강연욱사진관의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 강씨는 되도록 흑백사진의 깊이를 살리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강연욱씨 역시 하가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광고 사진을 하다 내려온 지 4년째인 강씨는 주민과 여행객을 상대로 인물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에 내려 온 후 그는 ‘사진이 밝아졌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효율성만 따지는 고객과 추억을 순간으로 남기고 싶은 고객의 차이는 극명하죠. 의뢰인과 장시간 편하게 대화한 후에 찍으면 그 분위기가 사진에 반영됩니다. 사진 속 인물도 제 표정도 밝아져요.”

마을 전시관인 이야기창고에서 어린이들이 미술수업을 하고 있다.

변효정가옥 인근의 ‘이야기창고’는 일러스트 작가 박지숙씨가 지난해 11월 개관한 일종의 마을 전시관이다. 정식 간판도 달지 않은 허름한 창고 수준이지만, 자신의 작품 외에 이따금씩 전문작가 전시도 열린다. 전시가 없는 평일에는 동네 아이들의 미술교실로 운영된다. 문이 열려 있으면 스스럼없이 들어와도 상관 없다고 말한다.

제주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하가리의 상권은 아직 소박한 편이다. 카페로는 연화지 주변에 ‘프롬더럭’과 ‘시바’, 마을 중간에 ‘살롱드라망’이 있고, ‘바라국수’와 ‘순여네국수’에서는 돼지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제주 특유의 고기국수를 맛볼 수 있다. ‘더애월’은 흑돼지 김치찌개와 두루치기 식당으로 꽤 이름이 나 있고, 중화요리 식당인 ‘연화반점’도 있다.

흑돼지 김치찌개로 꽤 알려진 ‘더애월’ 식당.
‘바라국수’ 식당의 고기국수.
고내봉 중턱에서 본 한라산 방향 풍경.
애월읍 하가리 여행 지도. 강준구 기자

하가리에도 마을 서쪽 고내봉(175m)이라는 작은 오름이 있다. 하지만 정상이 봉긋하고 분화구가 형성된 전형적인 오름과는 거리가 멀다. 산중턱 보광사부터 산책로가 닦여 있어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산꼭대기에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는데 나무와 숲에 가려져 애월의 바다든, 한라산이든 어느 방향을 둘러 보아도 조금씩 아쉽다. 일부 블로그에 전망 좋은 곳이라 써 놓았지만 특별한 사명감이 아니면 굳이 오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헛수고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덧붙이는 정보다.

제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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