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장전 완료”… 이란에 군사보복 시사 ‘강공카드’

입력
2019.09.16 18:00
수정
2019.09.16 22:5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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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대상 직접 거명 안 했지만 미국 당국자들은 이란 정조준

실제 보복 감행 여부는 미지수… 대북 정책처럼 극적 반전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볼티모어에서 열린 공화당 소속 연방하원의원 만찬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볼티모어에서 열린 공화당 소속 연방하원의원 만찬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피격 사건의 배후 세력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상으로 이란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미 정부 당국자들은 일제히 공격 주체로 이란을 지목하고 나서 미국과 이란간 무력 충돌 우려가 다시 고조되는 모습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접근법이 대화와 군사옵션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갔던 점에 비춰 극적인 반전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전날 벌어진 사우디 석유 시설 공격과 관련해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라며 “우리는 검증 결과에 따라 장전 완료된(locked and loaded) 상태"라고 강조했다. ‘locked and loaded’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8월 북한의 괌 기지 타격 엄포 때 사용했던 표현으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와 함께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던 대표적 수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누가 이 공격을 일으켰다고 사우디가 생각하는지, 우리가 어떤 조건 하에서 진행할지에 대해 사우디로부터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며 단서를 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범인’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으나 미국 당국자들은 이날 위성사진 등을 토대로 이란을 정조준했다고 뉴욕타임스, CNN 등이 전했다. 후티 반군의 능력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타격의 흔적들이 사건 발발 후 속속 미디어들에 공개된 위성사진들에 드러나면서 이러한 미국 당국의 추정은 힘을 얻고 있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요일(15일) 오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만났다”고 보도하며 워싱턴 내부에서 드론 공격의 배후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식을 놓고 치열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군사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미국이 실제 이란에 대해 보복 공격을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WP는 미 관리들이 군사적 대응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국방부 일부 인사들은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6월 이란이 미국의 정찰용 무인기를 격추했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 공격을 승인했다가 10분 전에 취소시키기도 했다. 이란이 전면적인 반격에 나서면 중동 지역의 석유 공급 전체가 휘청거려 국제 유가에 초비상이 걸리게 되는 것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북한에 대해 군사 대응을 위협하다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했던 것처럼 극적인 반전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 의회 매체인 힐은 슈퍼 매파인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정책이 바뀔 수 있다고 내다보면서 대북 정책의 변화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달 하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간 정상회담을 주선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서 이란과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항상 여러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란이 석유시설 공격에 나선 의도도 자국 제재에 대한 보복과 함께 국제 유가 시장을 흔들어 유가에 민감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는 벼랑 끝 협상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이 공도동망(共倒同亡ㆍlose-lose dynamic)식 무력 시위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국제 유가를 치솟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협상 지렛대를 돋보이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 석유 시설 공격 배후를 자처하는 예멘 후티 반군은 16일 “사우디 아람코의 석유시설에 있는 외국인과 외국회사는 바로 떠나야 한다. 그들(석유시설)은 여전히 우리의 표적이고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며 추가 공격 가능성을 예고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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