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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오늘, 바오로 2세 교황이 4세 AIDS환자를 포옹했다. 사진은 어린이 AIDS환자 구호단체 '소아AIDS환자연대(PAC)' 로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7년 9월 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의 한 교회에서 AIDS 환자 및 HIV 감염자 62명과 그들의 연인 및 배우자 36명을 초대해 미사를 집전했다. 로마 교황청이 86년 10월 공식 담화를 통해 동성애를 ‘근본적 착란(intrinsical disorder)’이라 규정하고 동성애자 차별에 사실상 동조한 직후였고, 교황이 AIDS 환자와 대면한 첫 공식 행사였다. 최대 이벤트는 교황이 만 4세 AIDS 환자 브렌던 오러크(Brendan O’rourke, 90년 사망)를 품에 안은 거였다. AIDS 감염에 대한 괴담과 미신적 공포가 만연해 있던 때였고, AIDS 환자를 포옹한 게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포옹은 그런 미신적 공포를 다독이는 포옹이기도 했다.

교황은 미국에서 썩 환영받지 못했다. 현안이던 젠더 차별(여성 서품 거부)과 피임ㆍ낙태 반대, 레이건 대통령과 직통 전화를 개설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밀착해 남미와 동유럽 등지에서 보수 진영을 도왔고 특히 남미 민주화운동의 거점이던 해방신학 진영을 대놓고 공격하고 폄하한 이력, 거기에 동성애자 차별 이슈까지 얹혀진 상황이었다. 교황이 미사를 집전한 돌로레스 선교원 교회는 남미와 아일랜드,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가톨릭 교세가 강한 지역 교회이긴 했다. 교회 주변에는 전미여성협회(NOW)와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 활동가 및 시민들이 “수치(Shame)”를 외치며 운집해 있었다.

반면 교회 안 신도들은 “교황 만세(Viva El Papa)”를 연호했다. 교황은 ‘특별한’ 신도들에게 “주님은 아픈 이도, AIDS나 그에 관련된 일로 고통받는 이들도, 그들을 돌보는 친지와 친구들도, 아무런 조건 없이 영원히 사랑하신다”고 말했다.

물론 교황의 말, 무한하고 무차별적이라는 신의 사랑은 너무 커서 공허하고, 기만적이기까지 한 말이었다. 적어도 그 시점과 맥락에서는, 특히 모욕과 고통 속의 동성애자와 AIDS 환자들에게는 그랬다. 훗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되는 라칭거 추기경이 쓰고 교황이 서명한 86년 교황청 논평에는 “동성애자들이 악한 폭력의 대상이 돼 온 점은 안타깝다. (하지만) 세속의 법규가 결코 용인해선 안 될 것을 권리로 인정한다면(…), 비이성적이고 난폭한 반동이 확산되더라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그날 시민이 원한 건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 당장의 사과였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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