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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4년전 난데없는 오빠의 폭행 이후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언니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말 못한 상처
아빠 폭행에 주눅든 엄마도 쉬쉬
오빠의 뒤늦은 사과도 안 통해

4년 전 언니와 오빠, 엄마와 저, 넷이서 김장을 하고 있었어요. 언니는 배가 아파 방에 잠시 누워 있었고, 제가 새로 만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엄마와 좀 다퉜어요. 옆에 있던 오빠가 저를 나무라며 화를 냈어요. 저와 싸우다 오빠는 갑자기 방 안에서 쉬고 있던 언니에게 가서 ‘넌 일도 안 하고 뭐하고 있냐’라며 언니를 마구 때렸어요. 너무 황당했습니다. 제가 말리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문제는 그 이후예요. 언니는 그 이후부터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나오질 않습니다. 다른 쪽문으로 다니면서 마치 원룸에 따로 사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오빠의 폭력이 난데없긴 했지만 언니의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아무리 뭐라 해도 언니는 아무 말도 없다가 2년 전쯤 제게 언니가 어릴 때 세 살 위인 오빠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렸을 때 저희 가족들은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고, 바람도 자주 피웠습니다. 엄마는 저희 셋을 낳고 25년을 참고 사셨어요. 언니가 오빠로부터 그런 일을 당했던 때가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어요. 그때 가족들이 한 방에서 다같이 잤는데, 부모님이 성관계를 하는 것을 오빠가 은연 중에 알게 됐습니다. 어린 오빠도 따라 하려고 했고, 언니는 뭣도 모르고 당했던 것 같습니다. 언니는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엄마한테 말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언니에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너랑 나만 알고 있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까웠던 저에게도 오랜 세월 말하지 못했던 언니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버지와는 연을 끊은 지 오래입니다. 오빠는 대학 가면서 집을 나갔고, 저와 언니, 엄마도 제가 대학을 가면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어요.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니가 제게 사실을 털어놓은 지 얼마 안돼 지방에서 일하던 오빠가 주말에 집에 왔습니다. 언니와 저는 김밥을 먹고 있었어요. 제가 오빠에게 김밥을 건네자 갑자기 언니는 오빠에게 욕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행동에 화가 난 오빠는 방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더 큰 싸움으로 번질까 두려워 제가 먼저 오빠에게 어릴 때 오빠가 저질렀던 일을 말했어요. 오빠는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내 잘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그때가 언젠데 지금 와서 그래”라고 하길래 제가 울컥해서 “아무리 어려도 오빠가 친동생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소리치자, 그제서야 잠긴 언니 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사과했습니다. 언니는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 이후 오빠는 집에 잘 오지 않습니다. 언니는 여전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오히려 오빠가 제게 전화하면 전화 받지 말라고 하고, 문자 내용도 보여달라고 합니다. 엄마에게도 자주 화를 내고 아주 자잘한 걸로 싸워도 한 달 동안 말을 안 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오빠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새 언니한테 다 말할 거다. 절대 못 오게 해라. 얼굴도 보기 싫다”라며 화를 내고 난리가 납니다. 저희 가족이 평범하게 다른 가족처럼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언니의 상처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안 보고 살 수도 없는데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할 지 너무 막막합니다.

박은희(가명ㆍ35ㆍ회사원)

가족이 곧 공격자라는 공포감에
언니는 세상 누구도 믿기 어려워져
가족간의 유대만 따지는 건 가혹해
언니가 괜찮을 때 속 얘기 나누고
결혼한 오빠와 가족 행사는 따로

은희씨, 가족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가족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이 무엇일까요. 가족들이 서로 편안하게 생활하고, 그 안에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거예요. 가족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서로 사랑하고 보호해 주는 거예요. 은희씨의 가족은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이 잘 이뤄지지 못했어요. 운동화 끈에 비유한다면 팽팽하게 죄어져 있지 않은, 느슨하게 다 풀려져 있는, 그래서 운동화를 신을 수는 있는데 달리면 곧 벗겨질 것 같은 운동화 같아요.

은희씨의 부모는 자식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어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형편없었지요. 가족의 기능이 아버지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됐어요. 엄마는 너무 약했어요. 배우자로부터 25년간 가정폭력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었어요. 아버지한테 맞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자식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엄마는 언니가 당했던 일을 얘기했을 때 언니를 정서적으로 보호하지 못했어요. 과거 부모들이 자녀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쉬쉬했던 것처럼, 엄마도 성폭력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가해자가 친아들인 사건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거예요. 게다가 폭력적인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돼 자녀들을 학대할까 무서웠을 거예요. 마치 맹수 같은 아버지 앞에 엄마와 자식들은 토끼처럼 벌벌 떨었겠지요.

그런 아버지로부터는 벗어났지만 남은 가족 개개인은 모두 불안정하고, 정서적으로도 취약해 졌어요. 작은 자극에도 삶이 뒤흔들릴 정도죠. 언니가 4년 전에 오빠한테 느닷없이 폭행을 갑자기 당했을 때가 그래요. 그 사건으로 언니는 그 동안 자신을 보호해왔던, 맹수 같은 아버지와 같이 살아가야 하기에 서로 끌어안고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 무너질까 찢어지지 않게, 싸고 또 쌌던 얇은 막이 찢어져 버린 거예요. 한 번 찢어지고 나니 더 이상 막을 수가 없고, 버틸 여력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방 안에 자기 스스로 들어가 버렸어요. 오빠가 갑자기 때렸을 때 언니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아주 안전한 최소한의 공간에 피신한 거예요.

“언니는 아주 안전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피한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4년 전 사건으로 얇은 막이 찢어지면서 그 이면에 참고 참아온 언니의 고통이 나타났어요. 언니가 틀어박히고, 화를 내고, 예민해진 그 행동의 이면의 감정은 두려움인데 그 근원은 폭력적인 아버지에서부터 시작됐을 거예요. 아버지에 이어 오빠마저 폭력적으로 그를 대하면서 그는 화를 내는 남성이 엄청난 위협이자 공격으로 받아들여져요. 그런데 더욱 두려운 것은 그들이 가족이라는 거지요.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과 공격자가 같다는 거예요.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방 바깥으로 한 발짝도 편하게 나갈 수 없어요. 방 바깥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가족이 나를 공격했다는 느낌이 들면 세상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겠어요.

오빠 역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피해자이지요. 아버지가 너무나 무서웠을 겁니다. 그런 가정에서 오빠는 화를 잘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지나치게 표현을 못하거나, 만만하거나 가까운 이에게 과하게 화를 내지요. 4년 전에 느닷없이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른 이유도 화를 잘 다루지 못해서예요. 오빠는 평소에는 아마 꽤 괜찮은 사람일 수 있어요. 하지만 25년간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랐다면 아무리 괜찮아지려고 노력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물론 그런 환경 때문에 언니를 성폭행해도 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아버지를 제외한 은희씨의 가족들은 어떻게 보면 개개인이 모두 피해자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의 상황을 깨닫고 알아차려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언니에게는 전문가의 치료가 절실해요. 본인은 잘못한 게 하나 없는데도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컸어요. 억울하지만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치료를 받아들여야 해요. 왜냐하면 남은 인생이 너무나 가치 있기 때문이에요. 언니에게 지금 가족의 화합이 중요할까요? 가족들이 언니의 마음을 십분 헤아려야 해요. 오빠를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해서 가족 간의 최소한의 유대관계를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언니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만약 오빠가 아니라 옆집 남자가 그랬다면 만나라고 하겠습니까. 언니에게 오빠는 오빠가 아니라 옆집 남자로도 취급할 수 없는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유발시키는 대상이에요.

그런 언니에게 4년 전 오빠의 폭행은 충격 그 자체였지요. 언니는 ‘오빠 때문에 오랫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 별것도 아닌 일로 또 나를 때리다니. 이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라는 마음일 거예요. 그리고 방 안에 틀어박힌 것은 용서를 못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고,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는 거예요. 오빠가 눈앞에 안 보여야 본인이 안전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다고 느낄 거예요. 은희씨가 언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언니가 힘들어 하면 언니의 마음을 그냥 들어주는 게 제일 좋아요. 계속 설득하려 들지 마세요. 가족은 설득하려 하고, 설득하면 이해가 돼서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풀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언니 역시 가족의 관계를 모르지 않을 거예요. 가족들이 사실을 알면 잘 지내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4년 전까지도, 오랜 시간 찢어질 듯 얇은 막으로나마 버티고 있었던 거예요. 4년 전 일이 터지고 언니는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가 외롭지 않게 가족으로서 있어주는 게 좋아요. 그가 말하고자 할 때 들어주고, 그가 손을 내밀면 잡아줘야 합니다.

언니가 불편해하고, 힘들다면 오빠는 집에 오지 않는 게 좋습니다. 오빠를 집에 못 오게 하는 것은 엄마가 암묵적으로 언니의 편에 섰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것만으로도 언니는 위안이 됐을 거예요. 오빠는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뤘으니, 자기 가정에 몰두하면서 본인이 취약한 점을 고쳐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은희씨가 언니의 눈치를 살펴 오빠와 연락을 끊거나, 일부러 모질게 대할 필요는 없어요. 은희씨는 오빠의 폭행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매로서의 끈이 남아 있지요. 오빠가 잘한 것은 절대 아니고, 오빠 편을 드는 것도 아니지만, 언니가 아주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졌을 때 은희씨와 오빠의 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언니가 오빠를 보기 힘들다는 걸 100% 인정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오빠와 연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때로 연락하고, 가족행사에는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언니에게 그런 걸 강요하거나, 그런 사실을 일부러 알리지는 않겠다”고 담담하게 얘기해 보세요. 은희씨가 자신의 상처를 모르는 체한다고 언니가 섣불리 오해하지 않도록요.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맹수 같은 아버지의 피해자들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과 연을 끊을 수 없지요. 엄마는 25년간 가정 폭력을 참고 살았고, 그것을 본인은 희생과 인고라고 생각하겠지요. 엄마의 인생도 몹시 처절하고 가여워요. 하지만 희생을 자녀에게 강요해선 안돼요. 가족이라는 굴레를 씌워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엄마의 선에서 끝낼 일이지, 언니에게 이를 요구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딸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고, 거기서 시작해야 딸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을 거예요.

맹수 같은 아버지를 피해 네 식구가 얼마나 똘똘 뭉쳐서 삶을 버텨왔을지 생각하면 가족들이 너무나 가여워요. 하지만 가족이라는 끈이 때로 마음을 괴롭히는 굴레이기도 하고, 일부가 썩어 버린 끈일 수도 있어요. 이 끈은 언제든 풀어져 버릴 듯 불안하고, 약하지요. 그러니 각자가 이 끈에 집착할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각자의 삶이 가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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