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이 안돼서”…분당 한 고교, 교무실 출입시 신고 논란

입력
2019.09.14 12:46
수정
2019.09.1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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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명이라 내놓은 ‘밥상머리 교육 안돼’, 가정교육 비하 

 인성교육 차원이라면서 학교 전체 아닌 1개 학과만 실시 

 해당 학과, 수업시간 휴대폰도 강제 수거…학교 “문제없다” 

경기 성남의 한 고교 학과사무실(교무실) 출입문에 부착된 출입시 행동요령 안내문(가운데 빨간원). 학생이 몰래 찍다 보니 내용이 잘 보이지 않지만 'O반 OOO입니다. OOO 용무 있어 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제보자 제공
경기 성남의 한 고교 학과사무실(교무실) 출입문에 부착된 출입시 행동요령 안내문(가운데 빨간원). 학생이 몰래 찍다 보니 내용이 잘 보이지 않지만 'O반 OOO입니다. OOO 용무 있어 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제보자 제공

경기 성남시 한 특성화고교에서 학생들이 학과사무실(교무실)에 들어갈 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어떤 용무로 왔는지 신고하도록 해 논란이다. 학교 측은 “밥상머리 예절이 부족해 이를 가르치는 차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작 학교 전체 4개 학과 중 1개 학과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A고교와 학생 등에 따르면 이 학교 B학과 사무실(교무실) 출입문에는 A4용지에 ‘학생 출입 시 행동요령’이 담긴 안내장이 부착돼 있다.

안내장에는 ‘잠깐, 학생 입실시 실내화는 OK, 운동화 및 실외화는 벗고, 안녕하세요 OOO과 O학년 OOO입니다. OOO용무 때문에 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목소리가 작거나 말이 꼬여 내용 전달이 안 되는 등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게 학생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원한 한 학생은 “몸이 아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무조건 큰 목소리로 신고해야 한다”며 “내가 도둑놈도 아니고 개인적인 일로 조용히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내가 왔다는 사실을 왜 교무실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께 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더욱이 B학과는 학생들이 등교시 휴대폰을 일제히 수거했다가 수업종료 후 나눠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경기도교육이 마련한 ‘학생인권조례’와 배치되는 내용이다. 경기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조례(제12조 4항)에 따르면 학교는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학교는 수업시간 등 정당한 사유와 제18조의 절차(학생의견 수렴 절차 등)에 따라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 및 소지를 규제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 같은 규정과 관련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교무실 출입 신고제와 휴대폰 강제 수거 방침이 이 학교 전체 4개 학과 중 유일하게 B학과에서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 게티이미지뱅크
인권. 게티이미지뱅크

이에 대해 학교측 관계자는 “(교무실 신고제는) 무작정 들어오면 교사들이 ‘왜 왔니?’, ‘뭐 때문?’ 이라고 되물어야 하지만 신고를 하면 그렇지 않아도 되는 등 교사들이 편리해서 수 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휴대폰 강제 수거는) 수업 집중 및 학생지도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두 가지 모두 해당 학과에서만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와 올 초 일부 학생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교장과 교감이 문제가 없다고 용인해 계속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당 학과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현장으로 나가는 만큼 예절과 인성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밥상머리 교육부터 잘돼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그렇지 못해 (해당 과에서 교무실 신고제를 도입한 것은) 교육적으로 크게 나쁘지 않고, 예절과 인성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판단해 제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좋은 제도라면서 왜 학교 전체로 확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적으로 시행은 못하고 있지만 한 과에서 지도하는 게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고 엉뚱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교무실 출입 신고제는 학생인권 문제를 떠나 행동과 말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명절 연휴가 끝나는 대로 진위여부를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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