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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수면 ‘남북’ 짝수면 ‘동서’
고속도로 노선명은 기점ㆍ종점 조합
정식 명칭과 통용되는 이름 달라 혼선도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안내 표지판에 눈에 잘 띄는 색깔과 도안으로 노선번호가 표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선번호를 부여하는 원칙을 알면 현재 주행 중인 도로가 남북으로 뻗은 길인지 동서인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고 국토에서 도로가 지나는 위치 또한 가늠할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와 호남고속의지선이 갈리는 지점. 네이버지도
도로에 게시된 방향 안내 표지. 한국도로공사 제공

꽉 막힌 귀성행렬 속에서 우회로를 찾기 위해 ‘전국도로안내’ 책자를 뒤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길잡이 정보는 노선번호였다. 책자에 나온 노선번호와 도로 표지판에 표시된 노선번호를 끊임없이 대조해 가며 고향집으로 달리곤 했으니까.

노선번호를 몰라도 목적지만 입력하면 가장 빠른 길부터 통행료 없는 길까지 내비게이션이 척척 안내하는 요즘의 귀성길, 차창으로 스치는 도로 표지판을 보다 보면 몇 가지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노선번호는 무슨 기준으로 정해지고, 또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아는 만큼 보이는 노선번호

전국 도로망이 갈수록 거미줄처럼 복잡해지고 있지만 노선번호를 부여하는 규칙은 간단하다. 가장 기본은 남북으로 뻗은 길은 홀수, 동서로 이어진 길은 짝수라는 원칙. 숫자의 크기는 도로의 위치를 기준으로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갈수록 커진다. 몇 가지 예외적 사례가 있긴 하나 이 같은 원칙은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 등에 일률 적용된다.

‘국내 최초’라는 상징성에 따라 ‘1번’이 부여된 경부고속도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고속도로 노선번호는 두 자릿수가 기본이다. 남북으로 축을 이룬 간선 노선에는 끝자리에 ‘5’를, 동서축 노선에는 ‘0’을 부여한다. 그에 따라 서해안 고속도로가 15번, 그보다 동쪽에 위치한 호남고속도로가 25번이며 최남단 남해고속도로는 10번, 영동고속도로는 50번이다.

고속도로 노선번호 부여 규칙.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 캡처

간선을 보조하는 노선의 경우 1, 3, 7, 9 또는 2, 4, 6, 8번이 끝자리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전남 순천과 전북 완주를 남북으로 잇는 순천완주고속도로는 27번이고, 소백산맥을 가로질러 광주대구를 동서로 연결한 광주대구고속도로는 12번이다.

간선 고속도로의 지선과 순환 노선의 노선번호는 세 자릿수다. 지선의 경우 앞 두 자리는 간선 번호, 끝자리엔 동서와 남북에 따른 원칙에 따라 번호가 부여되는데, 충남 논산과 회덕분기점을 잇는 ‘호남고속도로의지선’은 25(호남선)+1(남북), 즉 251번이다. 순환 노선은 해당 지역의 우편번호 첫 자리에 ‘00’을 붙인다. 우편번호가 ‘1’로 시작하는 서울 지역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는 100번, 우편번호가 ‘3’으로 시작하는 대전의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는 300번이다.

#부르는 이름 따로, 정식 명칭 따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표지판에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와 같은 노선명이 표시된 경우도 있다. 이 노선명 역시 규칙에 따라 정해지지만 간혹 정식 명칭과 통용되는 명칭이 달라 혼란을 주기도 한다. 고속도로의 노선명은 기점과 종점을 이어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이때 기점은 남쪽 또는 서쪽이며 종점은 북쪽이나 동쪽이다. 다시 말해 남쪽이나 서쪽의 기점을 먼저, 북쪽 또는 동쪽의 종점을 나중에 부르는 식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경기 용인을 잇는 고속도로의 기점은 용인, 종점은 서울이므로 정식 노선명은 ‘용인서울선’이고, 서울과 양양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서울양양선’이 된다. 2000년대 이후 개통된 고속도로는 대부분 이 같은 기점 종점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경부고속도로나 호남, 서해안고속도로처럼 오래 전부터 정해져 굳어지거나 지역적 특성이 예외적으로 반영된 경우도 있다.

전국 고속도로 현황. 한국도로공사 제공

문제는 정식 명칭과 통용 명칭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논산천안선을 ‘천안논산고속도로’로, 통영대전선은 ‘대전통영고속도로’로 부르는 것은 기점과 종점이 뒤바뀐 경우다. 고속도로의 순차적 개통 과정에서 편의에 따라 부르던 이름이 굳어진 경우도 적지 많다. ‘서울춘천고속도로’는 서울양양고속도로로 부르는 게 맞고 ‘제2영동고속도로’의 정식 명칭은 ‘광주원주고속도로’, ‘제2서해안고속도로’는 ‘평택시흥고속도로’가 맞다. 고속도로 방향표지에는 정식 노선명만 표시되므로 평소 사용하는 잘못된 노선명보다 노선 번호를 위주로 도로를 구분한다면 혼동을 피할 수 있다.

#고속도로 노선명 개명하기도

소백산맥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영ㆍ호남 화합을 상징하던 ‘88올림픽고속도로’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로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기점ㆍ종점 원칙에 따라 2015년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노선명이 바뀐 것이다. 1981년 착공 당시 ‘동서고속도로’로 불리다 88서울올림픽 유치를 기념하기 위해 ‘88올림픽고속도로’로 개칭된 이후 세 번째 이름을 갖게 된 셈이다. 노선 번호 또한 원래 고속국도 9호선이던 것이 2002년 노선체계 개편에 의해 12번으로 변경됐다.

‘88올림픽고속도로’는 2015년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명칭이 바뀌었다. 2015년 이전과 이후 도로 표지판의 노선명 표기가 다르다. 네이버지도
서울 강일IC 부근의 도로표지판. 올림픽대로의 노선번호가 ‘88’번임을 알 수 있다.
제주 5.16도로 표지판. 네이버지도

올림픽과 관련된 도로로 서울특별시도에 속하는 올림픽대로를 빼놓을 수 없다. 1986년 개통한 올림픽대로는 김포공항과 잠실운동장을 연결하며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당시 외국인 참가자와 관광객을 수송하는 역할을 했다. 올림픽대로의 노선번호는 노선명에 걸맞게 ‘서울특별시도 88호선’이다.

교통망의 발달이 현대사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만큼 지역의 특성과 역사가 노선명에 투영된 경우도 적지 않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5ㆍ16도로’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수단으로 건설된 임도를 5ㆍ16 군사쿠데타 이후 정비, 확장한 도로다. ‘5ㆍ16도로’로 개칭됐다. 제주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척추와 같은 주요 도로가 군사독재를 미화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행정절차상 진행이 쉽지 않다. 현행 도로명주소법에 따르면 도로명 변경을 위해서는 해당 도로명을 사용하는 건축주나 사업주, 세대주 5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과반수의 동의로 변경이 가능하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 역시 경기도와 서울시에 의해 ‘수도권순환고속도로’로 변경이 추진되고 있다. 총 길이 128㎞ 중 90% 이상이 경기와 인천 지역을 통과하는 데도 ‘서울 외곽’이라는 명칭으로 서울의 변두리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이유다. 이 밖에도 지역 홍보 등을 위해 고속도로의 명칭 변경을 추진하거나 논의 중인 지자체가 적지 않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윤소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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