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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장관이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눈을 감고 있다. 서재훈기자

그간 많은 취재원들로부터 들은 수 많은 이야기 중에 유독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이 나온 대학이나 그보다 더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4년 교육 담당기자로 옮긴 지 얼마 안 돼 만난, 유명 입시업체 전문가의 말이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고 동의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의 말은 “소위 명문대 입시는 ‘진입 장벽’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물수능’과 ‘불수능’을 한 해에 치러야 했던 수능 1세대이자, 학교별 본고사까지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던 나와 비슷한 세대에게 입시는 ‘학창 시절 노력의 결과물’이었던 터였다. 화도 치밀었다. 내뱉진 못했지만 ‘당신이 내 아이를 알아?’라는 말이 솟구쳤다. 당시 만 5세였던 내 아이는 이미 한글을 ‘줄줄’ 읽고, 구구단을 ‘벌써’ 6~7단까지 외고 있었으며, ‘banana’를 ‘바나나’로 읽을 줄 아는 아이였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인줄도 모르면서 예단하다니. 두고 보라고’를 되뇌며 부글부글 차오르는 괘씸함을 애써 눌러댔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이해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학여행 뱃길에서 꽃다운 고교생들이 대거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희망이자 계층 이동 사다리가 되기를 기대하며 준비한 기획 시리즈(교육 희망 프로젝트)를 취재하는 도중 나는 그 ‘진입 장벽’을 목도했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교육 현장에서 공부와 담을 쌓은 학생들을 보듬지 않는 학교, 부모나 입시 컨설턴트의 도움 없이는 쌓기 힘든 수십개의 스펙과 ‘합ㆍ불합격’ 기준을 가늠하기 어려운 수천개의 입시 전형,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로 쌓아 올린 학벌이라는 공고한 철옹성까지. 부모의 꼼꼼한 관리와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똑똑한 내 아이’가 언제든 ‘(부모가)열심히 하면 잘 할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노력의 결과물’이던 입시는 어느덧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과 네트워크의 결과물’이 돼버렸고, 다양한 인재를 포용하겠다고 쪼개놓은 전형은 되레 가진 사람들의 선택지를 넓히는 도구로 변질됐다. 개천에서 용을 배출할 수 있었던 힘이던 교육은 이제 개천과 하늘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계급을 구분 짓는 수단이자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든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누구는 넘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누구는 그 선 아래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하지만, 허황된 꿈이자 헛된 약속이며 이율배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확인했다. 고교생 신분으로 서울대 의대에서 인턴을 하고 국제 학술회의 연구 포스터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된 아들 문제와 관련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서울대 실험실 사용을 아는 분(의대 교수)에게 부탁한 것이 특혜라고 읽히는 부분이 있다면 유감”이라고 말한 점은 기득권 층이 그 기득권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근 만난 한 고위 공무원은 “조국 장관 딸의 입시 과정을 보면서 대학에 들어간 딸 아이가 ‘아빠 엄마는 뭐 했냐’고 묻더라. 그런 네트워크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줬다”고 씁쓸해했다. 이렇듯 조 장관 검증을 계기로 많은 평범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미안해하는 현실을 보면 애달프다. 뒤늦게 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입시제도가 개선 노력에도 불구, 여전히 공평하지 못하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며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한 점은 높이 산다. 다만 그 입시제도를 손보는 주체가 예전과 같이 기득권층일 테고, 그들이 만든 개선방향이 더욱 교묘히 그들의 입지를 넓히고 공고히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진 않다. ‘사회적 특수계급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 제2항이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지금 많지 않은 것처럼.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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