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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전 “아들에게 메시지 남겨라”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언론인으로 사우디 왕실에 의해 살해된 자말 카슈끄지. A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해오다 지난해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됐던 당시 현장 음성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녹음파일의 존재 자체는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언론을 통해 구체적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녹음 파일에는 사우디 공작원과 카슈끄지가 나눈 대화는 물론 까슈끄지의 시신을 절단할 때 났던 처참한 소리까지 담겨 있었다.

9일(현지시간) 터키 일간 사바흐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현장 책임자인 마헤르 압둘아지즈 무트렙과 법의학자인 무함마드 알투바이지는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도착하기 전 시신 처리 방안을 먼저 논의했다. 무트렙은 “시신은 가방에 넣을 수 있냐”고 물었고, 알투바이지는 “너무 무겁고 크다. 시신을 절단해 비닐봉지에 싼 뒤 가방에 넣어 밖으로 가지고 가라”고 조언했다.

요원들은 이날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 받기 위해 영사관을 방문한 카슈끄지를 강제로 2층 사무실로 끌고 갔다. 무트렙은 카슈끄지에게 “우리는 당신을 리야드(사우디의 수도)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고, 카슈끄지는 “나는 소송당한 것이 없다. 약혼자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저항했다. 무트렙은 그러나 카슈끄지에게 핸드폰이 있느냐고 물으며 아들에게 “나는 이스탄불에 잘 있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라고 했다. 이어 무트렙은 비닐봉지를 카슈끄지 머리에 씌웠으며, 카슈끄지는 “천식이 있다. 질식할 것 같다”고 소리쳤다.

뒤이어 공작원들은 카슈끄지 시신 절단 작업을 벌였고, 이 때 난 것으로 보이는 부검용 톱 소리까지 파일에 생생하게 녹음됐다.

카슈끄지는 생전 미국에 거주하며 워싱턴포스트 등에 사우디 왕실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써왔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카슈끄지 살해 배후에 사우디 왕실이 있을 것으로 의심해왔으나 사우디는 이를 부인해왔다. 터키 정부는 사우디 왕실이 개입돼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녹음 파일의 존재를 공개한 뒤에야 사우디는 터키에 파견한 공작원이 살해를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왕실의 직접 개입은 없었으며 현장 공작원의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이번 녹음파일이 일반에 공개되며 사우디 왕실의 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의 수위는 재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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