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평가’ 때문에… 속도 위해 안전 외면한 철도공사

입력
2019.09.10 18:18
수정
2019.09.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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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차선 단전으로 인해 오송역에서 KTX 열차가 4시간 30분 동안 멈춰 서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전차선 단전으로 인해 오송역에서 KTX 열차가 4시간 30분 동안 멈춰 서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승객 708명을 태우고 서울을 향하던 KTX 열차가 오송역 인근에서 갑자기 멈춰 서는 사고가 일어났다. 전차선 단전이 원인으로 밝혀졌고, 이로 인해 4시간 30분간 열차는 선로 위에 서 있었다. 같은 달 강릉을 출발한 KTX 열차가 탈선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일어난 철도 사고가 8건에 이른다. 이들 사례를 중심으로 감사원이 철도 안전 관리 및 사고 대응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적정하지 않은 관제 지시를 비롯해 안전불감증이 잇단 사고 배경에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10일 공개한 ‘철도 안전 관리 실태’를 보면 총 38건의 위법ㆍ부당 사항이 확인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는 열차 속도를 줄여야 하는 이례적 상황에서도 철도를 그대로 운행하도록 했다. 도착 시간이 지연되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예컨대 올해 1월 광명에서 오송까지 구간을 시속 230㎞로 운행하던 고속열차에 상하 진동이 발생했을 때도 철도공사는 시속 170㎞ 이하로 감속 운행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르지 않았다.

철도공사가 안전보다 도착 시간을 중시한 이유는 경영평가 때문이었다. 경영평가에 반영되는 ‘정시율’은 열차가 차량 고장 등으로 16분 이상 지연되면 감점되는 요인이다. 철도공사는 이러한 이유로 열차가 10분 이상 지연되면 국토교통부에 보고해야 하지만, 경영 평가를 고려해 지연 시간과 사유를 임의로 변경하도록 관제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철도안전법에 따라 관제 업무에 필수인 ‘철도교통관제사 자격증명’이 없는 경우에도 2주 이상 신호 교육 이수 등 일정 요건만 갖추면 ‘로컬 관제원’으로 지정해 열차 관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했다는 점도 감사원은 지적했다. 로컬 관제원은 열차 통행이 많은 서울역 등 370개 역에서 열차 출발과 도착, 진로 설정 등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다. 감사원이 10개 역의 지난해 관제 업무 실태를 확인한 결과 7개 역에서 로컬 관제원의 부실 관제 사례가 40건이나 적발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KTX와 굴삭기 간 접촉 사고도 이런 부실 관제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한국철도공사 사장에게 철도교통 관제에 대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구했고, 국토부 장관에게는 한국철도공사의 관제 업무를 철저히 관리 감독할 것을 통보했다.

국토부는 “철도안전감독관을 통해 관제운영의 독립성ㆍ공정성에 대해 특별 실태점검을 실시하고, 관제사의 책임과 역할이 강화되도록 법령 개정 등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철도공사는 “차량정비시스템 개선, 부품 성능향상, 정비 작업조 추가 운영과 계약 방법 개선 등 철도차량 정비 품질 향상하고 사고 등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응 체계를 세분화하겠다”고 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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