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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日 여행 보이콧 예견 美 기관,
“문 대통령 대일 강공은 총선용” 지적
정국 혼란에 묻힌 경제 상황 직시해야
한일 대립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강경대응의 의미를 정치공학적으로 분석한 스트랫포 보고서 표지. 스트랫포 홈페이지

7월 초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일 갈등이 시작됐을 때 전개 과정을 미리 비교적 정확히 예측한 곳이 있었다. 미국의 정보ㆍ전략컨설팅 업체 스트랫포(Stratfor)였다.

이 기관의 동아시아 전담 분석가 에반 리스(Evan Rees) 연구위원은 7월 18일 내놓은 자료에서 “한국은 맞대응 조치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일본 전체 관광객의 22%를 차지하는 한국인의 관광 보이콧만이 거의 유일한 대안인데, 이를 위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협조가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했다. 한일 모두 맞대결에서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경제력이 열세인 한국의 카드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일본 여행 보이콧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최근 대치 상황은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주목할 만한 건 단기 예측과 함께 나온 장기 예측이다. 리스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마주한 정치적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일본의 도발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기에 이뤄졌다. 그의 지지율은 1년 전 83%에서 최근 45%까지 대폭 하락한 상태다. 지지율 하락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국정운영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29%에 달하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원가상승 등 진보적 경제정책이 경기 악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지부진한 대북 화해정책도 당분간 지지율 상승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어 문 대통령의 선택을 이렇게 예상했다. “문 대통령은 악화하는 경제 문제보다는 ‘반일 민족주의’ 정책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중략) 2020년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경제문제를 손쉽게 덮는 희생양을 얻기 위해 일본에 대한 적대적 대응에 판돈을 더 거는 선택을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근 강경책을 국가 위신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자존심 회복이라는 명분보다 나빠진 경제 상황에서 국민들의 눈을 돌려놓으려는 정치공학의 산물로 분석한 것이다.

‘정자정야’(政者正也ㆍ정치는 바른 것이다)가 좌우명인 문 대통령이 그런 의도를 가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 관심을 경제에서 떼어 놓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한일 갈등으로 대일 수출 물량이 줄어든 걸 걱정하기보다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더 감소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논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 두 달 온 나라가 일본과의 싸움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알리는 지표들은 크게 하락했다. 국제수지 흑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 3년 내 한국 경제의 대외균형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17년과 2018년의 세수 호황도 마감하고 있다. 경기 악화로 내년에는 세수 감소마저 우려되지만 경기진작 효과도 별로 없는 공공부문의 이상한 일자리 사업에 여전히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될 상황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괜찮다지만 ‘D의 공포’, ‘마이너스 금리’ 등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수축단계로 진입할지 모른다는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시장에서 주요 국가 중 가장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은행들의 시가총액은 순자산의 46%에 머물렀는데, 이는 미국(155%), 대만(100%)은 물론이고 중국(82%)에도 미치지 못한다. 10일에는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향후 12개월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에 대한 부정적 조정이 긍정적 조정보다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랫포 관점에서 본다면 상황이 이렇게 나빠도 조국 사태는 죽창 발언이 난무했던 한일 갈등처럼 국민 시선을 경제에서 떼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내년 총선 이후 경제적으로 큰 혼란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한가위 가족 모임에서는 조국도 좋지만 살림살이부터 챙기는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조철환ㆍ뉴스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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