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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골목골목 숨은 맛집…서산 해미면
드론으로 찍은 해미읍성 전경. 성 내부는 잔디밭과 솔숲으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바다가 아름다운 고을’ 해미 앞으로 현재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천수만 바다는 이곳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다. 서산=최흥수 기자

예고편치고는 제법 근사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를 지나면 도로 양편 산등성이에 드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평창 대관령목장 못지않게 눈이 시린 풍경이다. 서산시는 ‘한우 약 3,000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장관이 연출되는데,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함께 시골의 순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서산한우목장은 당당히 서산 8경에 이름을 올렸지만 가축 전염병을 우려해 외부인은 갈 수 없는 관광지다.

◇병영성과 순교지 그리고 소풍

실망도 잠시, 해미면으로 접어들면 산세는 점점 낮아져 마침내 수평선과 맞닿은 넓은 들판이 나타난다. 해미의 미덕은 바로 나무망치로 모난 부위를 부드럽게 다져놓은 것 같은 평평한 지형에 있다. 그 단순미의 중심에 해미읍성이 있다.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 부근 성벽. 평지에 쌓은 성이라 위압감이 없고 이웃집 담장처럼 푸근하다.
진남문 앞을 지키는 위병의 또 다른 역할은 관광객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다.
해미읍성은 1973년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해 현재 안팎이 깔끔한 관광지로 변해 있다.

해미읍성은 서산 관광 1번지이자 해미 여행의 시작과 끝이다. 해미IC로 빠져 나와 면소재지로 들어서면 바로 해미읍성이다. 석성이라고 하지만 높지 않아 위압감이 없다. 모서리는 각지지 않고 부드럽게 휘어져 우락부락한 산성에 비하면 이웃집 담장처럼 정겹다. 복원사업이 시작된 1973년 이전까지 성 안에는 실제 민가와 관공서가 남아 있었다.

해미(海美)는 ‘바다가 아름답다’라는 의미다. 조선 태종 18년(1418) 인근 예산군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뒤부터 1651년 청주로 이전할 때까지 서해안 방어를 맡은 군사 요충지였다. 충무공 이순신도 1579년 군관으로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했다. 해미에서 천수만 바다까지는 현재 직선으로 10km가 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간척사업이 진행돼 온 점을 감안하면 당시 해미는 바다와 훨씬 가까웠다.

해미읍성은 태종 17년부터 세종 3년까지 4년에 거쳐 축성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돌로 쌓은 성의 둘레가 3,172척, 높이 15척이며 우물 3곳과 군창(軍倉)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해미읍지(海美邑誌)’에는 성벽의 둘레가 6,630척이라 적혀 있어 규모가 2배 이상 커졌다. 현재 해미읍성은 5m 높이의 성벽이 2km가량 둘러져 있고 동ㆍ서ㆍ남 3개 대문 안에 객사 2동, 동헌 1동, 망루 1개소가 복원돼 있다. 성벽은 바깥에서 보면 석성이고 내부에선 토성이다. 석성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해 보이는데 허물어지기 전에는 총을 쏘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총안)이 380개,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앞을 가려 쌓은 옹성이 2곳 있었다고 한다.

진남문 안으로 들어서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낮은 담장 너머로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해미읍성 원형 감옥 앞 호야나무. 내포 일대 천주교인을 매달아 고문하던 장소다.
옥에 갇힌 포졸?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수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간수 인형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진남문 가로 받침대의 문장.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 4년’이라 적혀 있어 이때 중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문인 진남문 양편 성돌에는 한자로 공주ㆍ청주ㆍ임천 등의 고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역별로 구간을 나누어 쌓았음을 보여 주는 표시로, 요즘으로 치면 ‘시공책임제’였다. 진남문 문루 아래 받침돌에는 ‘황명홍치사년신해조(皇明弘治四年辛亥造)’라는 글자가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홍치’가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것으로 미루어 성종 22년(1491) 진남문을 새로 고친 것으로 추정되는 표식이다.

진남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서면 넓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동헌과 객사, 옥사와 민속가옥 등 옛 모습대로 복원한 집 몇 채를 빼면 시야에 거슬리는 게 거의 없다. 동헌 뒤쪽 언덕을 제외하면 세 방향으로 낮은 성벽을 경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평야에 자리 잡은 읍성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람객은 푸른 잔디밭에 띄엄띄엄 자란 나무 그늘 아래서 한가로이 소풍을 즐긴다. 낮은 성벽이 빚은 곡선과 직선, 그 단조로움이 만들어낸 풍경이 자못 이국적이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이든 여행객이든 동헌과 내아(안채), 객사까지만 둘러보고 발길을 돌리는데, 동헌에서 뒤편 계단을 오르면 해미읍성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좌우로 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조성된 언덕 한가운데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맑은 기운으로 욕심을 비우는 곳’이라는 의미의 청허정(淸虛停)이다. 성종 22년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기숙이 지은 정자로, 훈련을 하던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문객들이 글을 짓는 곳이었다. 솔숲 사이로는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 있다.

해미읍성 북측의 솔숲. 정문의 잔디밭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읍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외에 초가도 복원해 놓았다.

천주교인에게 해미읍성은 문화재로서의 가치 못지않게 순교성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읍성 한가운데에 교인들이 ‘호야나무’로 부르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박해의 증인처럼 서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1790년부터 100여년간 내포 일대의 천주교인을 잡아 가둔 원형 옥사를 복원해 놓았다.

천주교 측에서는 문화재(사적 제116호)인 해미읍성 대신 해미천 인근 여숫골에 대규모 순교 성지를 조성해 놓았다. 병인박해 당시만도 최소 1,000여명의 교인이 처형되거나 생매장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대성당과 무덤 형태의 순교기념관 뒤편에 무명 순교자의 묘와 탑, 노천성당 등을 조성해 놓았다. 신자들을 묶어 물웅덩이에 수장시킨 '진둠벙', 죄인을 자리개질(타작)하듯 처형했다는 ‘자리개돌’ 등이 당시의 참혹함을 묵묵히 증언한다.

해미순교성지 입구에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담은 ‘생명의 나무’ 조형물이 서 있다.
해미순교성지의 조형물.
해미순교성지의 진둠벙.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인들을 생매장한 곳으로 추정된다.
◇맛도 살고 정도 살고, 해미 골목 식당

해미읍성은 입장료가 없고 주차료도 받지 않는다. 이런 인심은 읍성 앞 골목 시장을 살리는 원천이 됐다. 따로 오일장이 서는 것도 아닌데 해미 시장은 골목마다 제법 활기가 넘친다. 면 단위 시골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읍성 바로 앞 도로변에는 카페가 20여곳이나 성업 중이다. 옛날식 다방이 아니라 대부분 개성 넘치는 분위기로 취향을 살린 커피전문점이다. 대도시 어디에나 흔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니라서 더욱 반갑다.

해미읍성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해미 시장. 골목 곳곳에 지역 맛집이 숨어 있다.
작은 창으로 해미읍성 정문이 내다보이는 ‘콩알카페’ 내부.
‘해미 장금이’로 소문난 맛이나 식당. 마침 휴가 기간이라 음식 맛을 보지 못했다.
호떡집에 불 난 듯… ‘해미호떡’ 가게에는 영업을 시작하는 오전 10시부터 손님이 줄을 선다.
‘줌마리카페’의 시식용 꽈배기.
돼지곱창 전골과 구이를 잘하기로 소문난 ‘우시장’.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오후 3시 도착했더니 재료가 동났다고. 어쩔 수 없이 정문에 붙은 사진만 찍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해미 장금이’로 불리는 ‘맛이나식당’, 시식용 꽈배기를 푸짐하게 내놓는 ‘줌마리카페’, 마가린 호떡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해미호떡’, 돼지곱창구이와 전골을 잘하는 ‘우시장’, 더미불고기를 푸짐하게 내는 ‘추억의집밥’ 등 소문난 맛집이 수두룩하다. 지역에서는 익히 알려진 식당이었는데,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소개되면서 더욱 주목받는 곳이다. ‘골목식당’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생선찌개와 조림을 잘하는 ‘보글보글식당’, 역사가 오래된 ‘시장순대’, 추어탕 전문 ‘대동식당’, 보신탕 전문 ‘골목집’도 지역에서는 나름 맛집으로 통한다. 해미읍성 뒤편 ‘읍성뒤뜰가든’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갖가지 나물 반찬으로 품위 있고 푸짐한 정식을 차려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브라질떡볶이’ 가게로 등장한 ‘얄개분식’은 아쉽게도 내부 수리를 거쳐 11월에 다시 문을 연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굳이 맛집 탐방이 아니어도 오래된 것과 새 것이 공존하며 사람 사는 정감이 묻어나는 골목을 걸어보는 것도 해미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읍성뒤뜰가든’의 1인 1만2,000원 시골밥상.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해미향교 들어가는 길.
일락사 낮은 담장 너머로 배롱나무가 붉게 꽃을 피웠다.

시간이 된다면 읍내 외곽으로 발길을 돌려도 좋다. 해미향교는 초입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숲이 장관이고,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의미를 지닌 천년 고찰 일락사는 소박하고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산세가 운치있다. 해미읍성 기준으로 해미향교는 1.3km, 일락사는 5km 떨어져 있다.

서산=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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