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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동명 원작 드라마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이어 갈 뿐 아니라 주연배우 김상중과 마동석도 그대로 출연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안방 시청자들이 환호했던 마동석의 무쇠 주먹과 김상중의 독기 어린 눈빛이 스크린에서 부활했다. OCN 인기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을 토대로 만든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 11일부터 관객을 만난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악당들이 더 나쁜 사회악을 소탕한다는 기본 설정부터 서사의 세계관과 캐릭터까지 드라마를 그대로 이어받아 새로운 에피소드를 펼친다. 원작 드라마를 쓴 한정훈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도 썼다. 미국에선 ‘섹스 앤드 더 시티’(2008)처럼 드라마를 영화로 제작하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한국에선 흔치 않은 일이라 방송계와 영화계 양쪽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방영된 OCN ‘손 더 게스트’도 영화로 만들어진다. 악령 빙의와 퇴마 의식 등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스릴러 드라마로, 살벌하게 무섭다고 소문났던 작품이다. 현재 기획ㆍ개발 단계를 밟고 있다. 윤인호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콘텐츠의 생명력을 확장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반대 경우는 더 많다. 영화에 뿌리를 둔 드라마들이 이미 안방극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tvN 드라마 ‘왕이 된 남자’(2019)로,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는 JTBC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2018)로,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2013)는 OCN 드라마 ‘구해줘2’(2019)로 각각 리메이크됐다. ‘왕이 된 남자’를 담당한 홍보사 틱톡의 권영주 대표는 “영화 원작은 탄탄한 서사와 높은 인지도, 극적 재미가 보장되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기에 여러 장점이 있다”며 “원작이 익숙하더라도 콘텐츠가 좋으면 시청자들은 선입견 없이 선택하고 반복 관람을 즐긴다”고 말했다.

동명 웹툰을 옮긴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영화 못지않은 완성도로 극찬받고 있다. OCN 제공

영화와 드라마가 서로 영역을 넘나드는 일이 잦아지면서 스크린과 TV를 나누는 경계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야기의 성격과 장르에 따라 영화와 드라마 중 알맞은 형식을 선택할 뿐, 엄격한 구분은 이제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영화와 드라마의 중간 형태인 OCN ‘드라마틱 시네마’ 프로젝트도 그런 사례다. 올 초 방영된 ‘트랩’과 현재 방영 중인 ‘타인은 지옥이다’의 경우, 형식은 드라마이지만 소재와 문법은 영화에 가깝다. 영화 시놉시스 중에서 호흡이 긴 작품을 찾아서 드라마화했기 때문이다. 연출도 영화감독에게 맡겼다. ‘트랩’은 ‘백야행’(2009)의 박신우 감독이,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라진 밤’(2018)의 이창희 감독이 진두지휘했다. ‘드라마틱 시네마’ 세 번째 작품 ‘번외수사’도 ‘내 안의 그놈’(2019)의 강효진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다.

창작 인력의 교류는 영역 파괴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구해줘2’의 원작자이기도 한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은 내년에 방영되는 tvN 드라마 ‘방법’에 각본가로 이름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촬영, 미술, 시각효과 등 영화계 베테랑 스태프들도 이미 드라마로 넘어가 맹활약 중이다. 영화계에선 스태프를 구하지 못해 촬영 일정을 조율하는 등 구인난으로 아우성이다.

조선판 좀비물 ‘킹덤’은 시즌2를 제작 중이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는 이런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창작자들을 영입하면서 콘텐츠 산업의 지형도가 재편되는 분위기다. ‘터널’(2016)의 김성훈 감독과 tvN ‘시그널’(2016)의 김은희 작가가 합작한 조선판 좀비물 ‘킹덤’(2019)은 ‘특별시민’(2017)의 박인제 감독이 이어받아 시즌2를 제작하고 있고, ‘미쓰 홍당무’(2008)의 이경미 감독은 소설 원작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선보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미 OTT에선 영화와 드라마가 혼재된 형태로 소비되고 있고 관객ㆍ시청자의 눈은 한층 까다로워졌다”며 “영화와 드라마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려는 시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상한 그녀’(2014)와 ‘남한산성’(2017)을 만든 황동혁 감독도 크로스오버 물결에 합류했다. 직접 쓴 각본으로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다. ‘오징어 게임’이란 독특한 제목으로 눈길 끄는 이 드라마는 ‘남한산성’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가 제작을 맡는다. 창작자뿐 아니라 영화 제작사도 시대 흐름에 변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지연 싸이런픽쳐스 대표는 “마블 영화 같은 블록버스터가 스크린을 독식하면서 서사 중심 영화는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영화 제작 여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드라마로 관심을 넓히는 제작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징어 게임’도 황 감독이 10년 전 영화 시나리오로 썼던 작품이지만 영화화되지 못하다가 넷플릭스를 만나 기회를 잡았다.

영화와 드라마의 영역 파괴는 산업적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한정된 국내 시장을 넘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면 콘텐츠의 완성도가 담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냐 드라마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OTT로 인해 한국은 지금 콘텐츠 개화기를 맞고 있다”며 “다양한 플랫폼을 콘텐츠에 적합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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