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링링’이 할퀸 피해지역 가보니… 
9일 신안 흑산도 인근 장도 양식장들이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유실됐다. /2019-09-09(한국일보)

“섬 놈이 웬수지라. 이젠 태풍 소리만 들어도 징글징글 한당께.”

역대 5번째로 강한 바람을 동반한 제13호 태풍 ‘링링’이 전국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이번 태풍은 서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면서 섬들이 몰려 있는 전남 충남지역에 더욱 심한 피해를 입혔다. 추석을 불과 며칠 앞두고 풍어ㆍ풍작을 기대하던 농어촌 주민들의 상심도 더욱 커지고 있다.

9일 오전 본보 기자들이 방문한 태풍 피해지역에서는 망연자실한 주민들의 한숨이 가득했다. 이날 오전 흑산도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가옥은 바람이 날려 뜯기고, 크고 작은 무인섬은 양식장 시설물에다가 쓰레기까지 널려 있었다. 양식장을 운영하는 어민들은 수억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 이틀이 지난 이날까지 양식장에 가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양식장이 설치된 먼 바다는 여전히 파도가 높고 안개까지 겹쳐 뱃길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전복 5만여마리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은 김은섭(67)씨는 “파도가 가두리 양식장을 통째로 들어서 물양장 위로 날려버렸다”며 “남은 가두리도 엿가락처럼 심하게 뒤틀리고 엉켜 복구작업도 힘든 상태”라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2012년 태풍 볼라벤 때 피해를 입었던 박홍담(57)씨 역시 “재기하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서 가두리에 우럭 7만마리를 키웠는데 다 유실됐다”며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신안군은 양식장 시설에다 전복과 우럭 등 생물손실은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정부가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주길 희망하고 있다.

충남 지역 과수재배 농가들도 태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오전 충남 천안시 직산읍에서 배 재배농가 홍세웅(62)씨는 “겨우 피해조사가 끝나 바닥에 떨어진 배를 한 곳에 모으고 있는데 비가 계속 내린다”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추석이 지나면 곧바로 수확에 들어가 미국과 대만 등으로 수출할 예정이었으나 2만㎡의 과수원 바닥에는 제13호 태풍 ‘링링’이 할퀴어 떨어뜨린 하얀 배 봉지로 가득했다. 홍씨는 “이번 태풍으로 40%가량의 배가 떨어졌다”며 “지금 떨어진 배는 아무 쓸모가 없어 퇴비로 사용할 계획”이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9일 오전 태풍피해 농민 일손돕기에 나선 천안시청 공무원들이 과수원 바닥에 떨어진 배를 한 곳에 모으고 있다. /2019-09-09(한국일보)

아산시 둔포면에서 1만6,000㎡ 규모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창예(79)씨는 “농협에서 낙과피해 조사를 해야 하는데 비가 내려 걱정”이라며 “아직 당도가 나오지 않아 낙과를 수거해도 주스용으로 조차 사용할 수 없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유네스코 세계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도 태풍 ‘링링’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부터 경기 포천시 소흘읍 광릉숲 일대에선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교량 등을 복구하는 등 응급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광릉숲에선 소나무와 전나무, 오리나무, 갈참나무 등 87그루가 쓰러지거나 부러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광릉숲을 관통하는 숲길과 국립수목원 내 전시원 일대 산림 피해가 컸다. 높이 20m에 달하는 전나무가 강풍에 꺾이면서 왕복 2차선 광릉숲길을 덮쳐 한때 차량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제13호 태풍 '링링’에 따른 강풍으로 약 20m 크기의 나무가 꺾여 광릉숲 길에 쓰러져 있다. 국립수목원 제공/2019-09-09(한국일보)

수목원 관계자는 “현재 개방구역 피해만 집계된 상황으로, 비 개방구역까지 집계가 이뤄지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풍의 첫 길목에 서있었던 제주에서도 강풍으로 인한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오전 서귀포시 서호동 현우철(79ㆍ가명)씨의 감귤하우스는 폭탄을 맞은 것처럼 처참한 모습이었다. 하우스의 지붕을 감쌌던 비닐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고,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주저앉아 있었다. 하우스 내부에는 구조물에 짓눌린 감귤나무에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수확하려던 노란 감귤들이 처량한 모습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9일 오전 서귀포시 서호동 현우철(79ㆍ가명) 할아버지의 감귤하우스가 태풍 링링의 몰고 온 강풍으로 폭탄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내렸다. 사진은 피해 감귤하우스 내부 모습. 서귀포시 제공.

앞서 지난 6일 밤부터 7일 새벽 사이 현씨의 감귤하우스 10개동이 모두 강풍으로 인해 폭삭 주저앉아 내렸다. 평소 크고 작은 태풍에도 잘 버텨왔던 감귤하우스이었기에 현씨의 충격은 더 컸다. 여기에 매년 가입했던 농작물 재해보험도 공교롭게 올해는 가입하지 못해 보상도 받지 못할 처지가 됐다.

현씨는 “추석 때 출하하려고 수확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쳤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빚만 늘어나게 생겼다”며 “무너진 하우스를 철거한 후 감귤나무들을 뽑아내 다시 새로 심어야 한다. 4년 후쯤이나 수확이 가능한데 그동안 뭘 먹고 살지 걱정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충남=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lbo.com

전남=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경기=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