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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두진이 1916년 오늘 태어났다. 안성시 박두진 문학관 사진.

국가보훈처나 재향군인회가 주관하는 6ㆍ25 행사 때마다 어김없이 불리던 ‘6.25 노래’란 게 있었다. “아, 아 잊으려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해서 3절까지 이어지고, 절마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로 끝나는 후렴이 달려 있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1916.3.10 ~1998.9.16)이 가사를 썼고, 가곡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1913~2009)이 곡을 지었다.

박두진은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1939년 ‘문장’으로 등단, 광복 직후인 46년 조지훈(1920~1968)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하면서 ‘청록파’라 불려온 시인이다. 그는 일제 치하의 문인으로서는 드물게 친일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1941년 ‘문장’이 폐간된 뒤 그는 은거하다시피 하며, 비평가들의 평에 따르면 해와 산 등의 자연과 신적인 생명력에 기대어 개인과 민족의 모진 운명을 견뎠다고 한다. 1980 대학가요제 은상을 탄 ‘마그마’란 그룹의 노래 ‘해’가 49년 그의 첫 개인시집 ‘해’의 표제시이고,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하늘’의 노랫말도 청록집에 수록된 그의 시다. 그 노래는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로 시작된다.

광복 후 조지훈이 광의의 자유를 옹호하며 이승만-박정희 정권과 표나게 거리를 둔 것과 달리, 박두진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 의식을 드러낸 바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그는 60년대 이후 초월적 의지와 영원을 노래하며 한사코 현실과 거리를 두려 했다는 평도 있다. 박정희에게 ‘대통령 찬가’를 바치고, 육영수의 개인 문학교사로 재주를 부린 목월과도 거리를 두고 싶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전시 종군문인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시와 말과 사회사’란 책에서 청록파를 우리 말의 미학적 정수를 구현한 시인들로 평한 평론가 유종호는 최근 산문집 ‘그 이름 안티고네’에서 시인 박두진의 전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피란 보따리에 자기 시집을 넣어 갔다가 검문 군인에게 그 시집을 신분증 대신 보여줬더니 경례를 하며 보내주더라는 것. 그만큼 청록파가 사랑받았고, 가난한 시인에게 시집이 그리 중했으리란 이야기였다. 박두진이 고향 안성에서 대구로 피란살이를 떠났으니, 자신(의 문학)을 알아봐 준 그 군인도 물론 국군이었겠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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