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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뜬 이들을 추억합니다. 동시대를 살아 든든했고 또 내내 고마울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가만한’은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뜻입니다. ‘가만한 당신’은 격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안드레아 카밀레리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쓴 이탈리아 작가다. 그에게 범죄 추리소설은 세상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을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장르였다. 92년 환갑을 훌쩍 넘겨 데뷔한 이래 약 27년간 그는 100권이 훨씬 넘는 책을 썼고, 그 중 '몬탈바노 시리즈'만 37권이었다. 그만큼 욕을 퍼부어줄 무리가 많았고, 역한 행태들이 다채로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 가히 세계의 독자들이 열광했다. 출판인 마르코 탐바라 사진. 위키피디아.

안드레아 카밀레리(Andrea Camilleri, 1925~2019)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추리소설 작가다. 세발과 발뢰, 헤닝 만켈 등과 함께 가디언이 뽑은‘현대 유럽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10인’중 한 명으로, 옵저버 기자는 저 기사에서 “아직 읽기 전이라면 당신은 대단한 즐거움을 아껴둔 셈”이라고 썼다. 시리즈 첫 권인 ‘물의 형태’와 4번째 ‘바이올린 소리’ 가 2009년 한국어로도 번역됐지만 이내 절판됐다.

카밀레리는, 북해에 헤닝 만켈(1948~2015)이 있다면 지중해에 그가 있다고 할 만한 작가다. 둘 다 연극ㆍ드라마 전문가였다. 물론 만켈의 주인공 ‘발란데르’와 카밀레리의 형사 ‘몬탈바노’는 지리 환경적 차이만큼이나 성격도 스타일도 다르다. 발란데르가 기질적으로 우울한 중후한 신사인 반면, 몬탈바노는 신사 근처에도 못 가는 성질머리지만 놀랍게도 사랑스럽고 때론 귀엽기까지 한 남자다. 둘 다 드라마 시리즈 주인공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 덕에 발란데르의 스웨덴 이스타드(Ystad)처럼, 몬탈바노의 시칠리아 바닷가 마을들은 관광지로 각광받았고, 주무대인 작가의 고향 포르토 엠페도클레(Porto Empedocle)는 2003년 마을 공식 이름에 작가가 지어 붙인 ‘비가타 Vigata’란 이름을 갖다 쓸 정도였다. 카밀레리는 “주민 수 1만 8,00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엠페도클레)이 금주법시대의 미국 시카고보다 더 살벌해질 것 같아서” 가짜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비가타’의 명성은 ‘악명’인 셈이어서, 뒤늦게 그런 말들이 오갔는지 2009년 마을은 원래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카밀레리는 만켈보다 23년 먼저 났지만 추리 작가 데뷔는 오히려 3년 늦었다. 만켈이 1991~99년 사이 9권의 발란데르 시리즈를 내고 10년 뒤인 2009년 마지막 10번째 작품(장편은 총 9권)을 발표한 반면, 카밀레리는 94년부터 지난 5월까지 무려 36권의 몬탈바노 시리즈(단편집 9권 포함)를 썼다. ‘만일’을 대비해 일찌감치 탈고해둔 시리즈 마지막 작품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서는 썩 주목을 못 받았지만, 몬탈바노 시리즈는 중국어 일본어 이란어를 포함 세계 32개 주요 언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최소 약 3,000만 부가 팔렸다. 영국과 미국 등 영어권 독자들이 특히 열광했다. 하버드대 로만스어과 교수(Francesco Erspamer)는 “(고전을 제외하면) 이탈리아 작가 중 근년에 카밀레리보다 많이 번역된 작가는 내가 아는 한 없다”고 했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의 드라마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는 지금까지 65개국에서 방영됐다.

만켈처럼 카밀레리도 사회 정의, 특히 권력ㆍ조직 범죄와 지능형 범죄에 가차없었고 약자 인권에 예민했다. 사실 그 점에선 자타공인 ‘빨갱이’인 카밀레리가, 소설 안팎에서 더 격렬하고 직설적이었다. 그건 기후나 기질 탓도 크겠지만, 여러모로 모범적인 스웨덴과 달리 마피아와 정치 부패, 오래된 종교권력이 중첩된 이탈리아, 거기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하고 역사ㆍ문화적으로 소외된 시칠리아란 공간 배경 영향도 있을 것이다.

201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압승했다. 난민 추방과 반(反)이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북부동맹’ 당수 마테오 살비니(Matteo Salvini)는 연립내각 부총리겸 내무장관이 됐다. 선거 직후 인터뷰에서 카밀레리는 ‘무솔리니 시대의 재현’이라며 격렬한 어조로 선거 결과에 개탄했다. 그가 7월 17일 심장 질환으로 별세하자 RAI는 정규방송을 멈추고 그의 부고를 전했다. 향년 93세.

카밀레리는 소설과 드라마로, 이탈리아의 부패 정치와 종교권력, 만연한 조직범죄를 집요하게 꼬집고 조롱했다. 그는 실제로도 난민과 연대하며 극우화한 정치를 비판했다. 아래 사진은 드라마 '몬탈바노 시리즈'의 주연 배우 루카 진가레티. UNHCR 트위터, RAI 드라마 스틸 사진

카밀레리는 1925년 9월 6일 시칠리아 포르토 엠페도클레 항구 경비대원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0대 10년을 파시즘과 전쟁 속에 보냈다. 유년시절 병치레가 심해 침대에 누워 지내다시피 하며 할머니가 읽어주던 동화를 들었고, 7살 무렵부터 조르주 심농과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읽었다고 한다. 가톨릭 교구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어쩌다 심사가 뒤틀렸는지 십자가에 계란을 던졌다가 퇴학 당해 공립학교로 쫓겨났고, 5km 남짓 떨어진 도시 아그리젠토(Agrigento)로 통학하던 고교시절엔 통학버스를 함께 이용하던 8~18세 마을 아이들을 선동하고 통학버스 기사까지 설득해(?) 학교 대신 인근 병아리콩 농장을 습격, 농부들의 공포탄 위협 속에 도망치는 장난을 즐기곤 했다고 한다. 그는 팔레르모대학(현대문학 전공)을 1년 만에 중퇴했고, 20살 무렵부터 시와 단편소설을 지역 문예지에 발표해 고만고만한 상을 타기도 했다.(andreacamilleri.net) 로마의 ‘실비오 다미코 국립연극예술아카데미’(1949~52)를 나온 뒤 사무엘 베케트와 루이지 피란델로 등의 작품 100여 편을 조연출하거나 연출했고, 57년 신설 RAI TV국에 드라마PD로 취업해 보수적인 당시 이탈리아에서 여탐정 시리즈 ‘로라 스톰의 모험’을 연출해 히트시켰다. 그의 방송 연출 대표작은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시리즈’였다. 물론 대본을 각색한 드라마작가가 따로 있었지만 그도 꽤나 거들었다고 한다. 그는 연극을 통해 인간 심리와 행동, 특히 대화(대사)의 기법을 익혔고, TV드라마를 통해 구성과 추리 문법을 익혔다고 훗날 말했다. “메그레 시리즈의 방송작가(Diego Fabbri)는 매회 심농의 책을 3~4권 사와선 낱낱이 찢어 이리저리 재배치하며 이야기 흐름을 새롭게 만들곤 했다.” 비평가들은 그의 소설에서, 그가 ‘몬탈바노’라는 주인공 이름을 따올 만큼 좋아한 스페인 추리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1939~2003)과 시칠리아 출신 작가 레오나르도 샤샤(1921~1989)의 흔적을 찾곤 했지만, 카밀레리는 대실 해밋과 심농 등에게서도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77년 아카데미로 복귀해 약 20년 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첫 장편 역사소설을 출간한 건 학교로 옮긴 직후인 78년이지만 그 원고는 60년대 말에 써둔 거였다고 한다.

그는 만 66세이던 92년 역사소설(‘The Hunting Season’)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 2년 뒤 ‘물의 형태’를 출간했다. 2012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94년 ‘프레스톤의 양조업자’란 제목의 역사소설을 쓰던 중 “그걸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나는 할 말을 순서대로 풀어가는 스타일인데 역사소설에선 그게 1장이 아니라 4장이나 5장이 돼야 하는 거더라”고, “내겐 완벽한 논리적 질서를 좇는 스릴러의 틀(cage)이 필요하단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건 샤샤에게서 배운 거였다. 샤샤는 “작가가 작품 속에 들어 안기에 미스터리 소설만큼 기본적으로 훌륭한 형식은 없다. 기만할 수 없는 룰이 있고, 거스를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어쨌건 그렇게 쓴 게 ‘물의 형태’였다. 그 무렵은 ‘마니풀리테’ 즉 밀라노 검찰이 이탈리아 부패 정치인과 마피아에 대해 대규모 전쟁을 벌여 보수 기민당과 진보 사회당 등 주요 정당의 기반을 허물다시피 한 직후였다. 카밀레리의 소설은, 저 개혁의 실제보다 훨씬 신랄하고 통렬하고 극적이었다. 다만 그는 너무 깊게 넓게 퍼져 어쩌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범죄적 풍토를 서사의 바닥에 음침하게 깔아 둠으로써 ‘지중해 느와르’특유의 밝은 어둠, 그 모순과 매혹을 펼쳐 보이곤 했다.

형사 살보 몬탈바노는, 왼쪽 눈 아래 검은 사마귀가 있는 것까지 빼 닮은 작가의 분신이자 대변자이고, 카밀레리의 말처럼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시칠리아의 평균적인 남자다. 그는 이탈리아 경찰로선 드물게 “맘만 먹으면 어떤 사건이든 끝까지 파헤쳐내고야 마는” 비가타 경찰서 형사반장(경위)이다. 먹는 걸 무척 즐기고 음식의 가치도 잘 아는 미식가여서, 최적의 파스타 면발을 위해 울어대는 전화 코드를 뽑아버릴 줄 안다. 시치미 뗄 일이 있으면 서장이나 판사 앞에서라도 배우 뺨치게 연기를 해내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도 말을 더듬고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피한다. 사건이 터지면 제노바에 사는 여자친구도 나 몰라라 할 만큼 몰두하지만, 사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철저한 빈둥거림이다. 그는 찌그러지다’란 동사도 좋아한다. 그에게 찌그러짐은 “한번 된통 당하고는 인간 사회를 멀리하다”라는 의미다. 몬탈바노는 찌그러지는 데도 능하다.

수사가 안 풀려 생각이 어지러우면 교외 한 숲 속에 있는 기괴한 형상의 사라센 올리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게, 시리즈 초기부터 이어진 몬탈바노의 습관이다. 2012년 작품 ‘밤의 향기(Una voce di notte)’에서 몬탈바노는 저녁 반주로 꽤 센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잔뜩 취한 채 한밤중에 그 숲을 찾아간다. 그런데 나무도 숲도 사라졌다. 어떤 건축업자가 숲을 뜯고 고급 빌라를 신축한 거였다. 몬탈바노는 현장서 주운 망치로 빌라 유리창을 모조리 깨고, 마당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시멘트 조각상까지 부숴버린다. 그는 스프레이로 빌라 사방 벽에다 ‘Asshole’이란 낙서까지 한 뒤에야 분을 풀고, 말짱해진 정신으로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온다. 저런 짓을 하고도 시치미를 떼는 게 그다.

시리즈 첫 서너 권을 낸 무렵, 아내(Rosetta Dello Siesto)가 몬탈바노를 읽더니 “천상 당신 아버지네”라고 하더라고, “듣고 보니 그렇더라”고 카밀레리는 2007년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인 1938년, 친한 친구가 유대인인 탓에 학교를 못 다니게 됐다는 애기를 아버지에게 했더니, 당시 꽤 열성적인 파시스트 당원이던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며 “(무솔리니) 개새끼(That Bastard!)(…) 유대인이 우리랑 다를 게 뭐야”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저 인터뷰에서 소개했다. 몬탈바노에겐 툭하면 ‘국가에 봉사’따위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로마의 정치인들이나, ‘성스러운’바티칸 성직자들이나, 거의 매일 부딪치는 비가타 경찰서장과 치안판사들이 모두 대체로 “That Bastard”였다.

2009년 번역 출간된 카밀레리의 몬탈바노 시리즈 1권과 4권. 둘 다 절판돼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고, 나머지 시리즈 35권도 어쩌면 한국어로는 읽을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카밀레리는 이탈리아 사람들끼리도 이해하기 힘들 만큼 이질적이라는 시칠리아 방언을 작품 속에 듬뿍 쓰곤 했다. 70년대 말 병석의 아버지에게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책을 써보라고 권하더라는 거다. 카밀레리가 “이탈리어어(표준어)로는 글을 못 쓰겠다”고, “6쪽이 넘어가면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집중이 안 된다”고 말했더니, 아버지가 “왜 꼭 이탈리아어로 써야 하는데?”라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카밀레리는 시칠리아 분리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본토 중심 북부 중심의 지역 패권주의에는 넌더리를 내던 사람이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그 모국어(시칠리아어)의 힘으로 그는, 92년 이래 27년 동안 소설과 자전 에세이 시사 비평 등 100권이 훌쩍 넘는 책을 냈다.

마피아 본고장을 무대로 그 많은 책을 쓰면서도 마피아를 서사의 중심에 둔 적이 없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그는 영화 ‘대부’를 예로 들며 “마피아 얘기를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부는 영웅처럼 미화하게 되는데, 나는 그게 싫어서 아예 안 쓴다”고 말했고, “TV 뉴스에 하도 자주 등장하니까 소설에 쓰는 건 재미도 없다”고도 말했다. 그가 딱 한 번, 2006년 기소된 마피아 두목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의 논픽션(‘you don’t know’, 2007)을 낸 적이 있다. 팔레르모 검찰이 제공한 수사 자료를 토대로 쓴 그 책의 인세 전액을 그는 ‘코사 노스트라(시칠리아 마피아)’에 희생된 경찰관 자녀 후원재단에 기부했다.

지난 2월 방영된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몬탈바노(배우 Luca Zingaretti)가 바다에 떠밀려온 난민 시신을 건져내며 “ISIS 테러리스트들이 난민 보트를 타고 몰려온다는 얘기는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절규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북부동맹과 오성운동에 표를 준 유권자들로선 그런 장면이 못마땅했을 테고, 거센 항의도 일었다고 한다. 카밀레리는 직후 RAI 인터뷰에서 “나는 이민자들의 필사적인 절박감에 대해 썼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살아남으려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지금 이탈리아는 아주 빠르게, 마치 새우가 도망치듯 퇴행하고 있다. 살비니를 싸고도는 민심을 보며 나는 무솔리니 시절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부총리 살비니는 그 직후 트위터에 “나는 몬탈바노를 좋아한다”고 썼다.

그의 데뷔가 워낙 늦은 탓에 몬탈바노 시리즈가 너무 일찍 끝나버릴까 봐 불안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이, 2002년 인터뷰에서부터 등장한다. 카밀레리는 “사람들은 몬탈바노 시리즈가 언제 끝나냐고 묻지만 그건 내가 얼마나 살 거냐고 묻는 거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는 “언젠가 더 쓰기 지겨워지거나 쓰고 싶어도 못쓰게 될지 몰라서” 시리즈 최종편을 2006년 탈고, 자기가 숨진 뒤 출간하는 조건으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빈둥거리기 좋아한 몬탈바노와 달리, 카밀레리는 녹내장으로 앞을 못 보게 된 뒤로도, 비서 겸 조수에게 구술하는 방식으로 매일 아침 3시간씩 글을 썼다. 자칭 “온건한 무신론자(non-militant atheist)”인 그는 로마의 한 프로테스탄트 교회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곧 공개될 몬탈바노의 마지막 이야기를 기다리며, 그의 임종을 미루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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