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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62개 마을 교환… 68년 만에 국경 정리했지만 생계 문제는 나몰라라
인도와 방글라데시 국경 인근 월경지 분포. 초록색이 인도 영토, 오렌지색은 방글라데시 영토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5년 8월 1일 0시. 인도와 방글라데시가 국경 인근 마을 162개를 교환했다. 약 두 달 전 양국 총리가 서명한 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써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국경이 만들어낸 ‘내륙의 섬’, 월경지 문제가 68년 만에 해결됐다. 월경지(越境地ㆍexclave)란 본토와 분리되어 다른 나라에 둘러싸인 지역을 말하는데, 이곳 국경은 아주 복잡해 이중 또는 삼중 월경지가 존재할 정도였다. 방글라데시 영토 내 인도 영토, 그 내부의 방글라데시 영토 내 인도 영토 같은 식이다.

복잡한 국경의 탄생 배경은 분명치 않다. 수 세기 전 이곳을 지배하던 인도 토후국의 두 왕이 땅덩어리를 걸고 체스 게임을 벌인 결과라거나, 술에 취한 채 지도를 그리던 영국 관리가 잉크 방울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문헌학자들은 17세기 무굴제국의 영토 확장과정에서 이 같은 국경이 비롯했다고 본다. 무굴제국 병사들이 인도 동부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땅을 강제 점거했는데, 이곳 토후국 쿠치 베하르의 지방 영주들이 땅을 양보하지 않아 양국 경계가 복잡하게 뒤얽혔다는 것이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양국 주민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문제는 인도와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이 1947년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면서 벌어졌다. 이때 굳어진 국경선은 1971년 방글라데시가 인도의 지원에 힘입어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모두 상대국이 자기네 영토에 둘러싸인 월경지를 관리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월경지 내 주민들은 어떤 국가에서도 교육, 의료, 사법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사실상 무국적자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이들이 외국으로 가려면 여권이나 비자가 필요한데, 이를 발급받을 수 있는 본토로 가려면 외국 땅을 밟아야만 하니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복잡한 국경을 정리하려는 첫 시도는 방글라데시 독립 3년 뒤인 1974년에 있었다. 양국 정부는 합의를 이뤘지만 당시 정권이 불안정하던 인도 의회에서는 방글라데시와의 합의를 비준하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대화는 2015년에야 인도 의회가 비준에 동의, 한 달 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비준서를 교환하면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방글라데시 영토에 있던 인도령 마을 111곳이 방글라데시로, 인도 영토에 있던 방글라데시령 마을 51곳은 인도로 편입되었다.

양국은 마을을 교환하면서 주민들에게 국적을 선택하게 했다. 명목상 자신이 속했던 국적에 따라 거주지를 옮기거나, 원래 거주지에 따라 새 국적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5만여명에 이르던 사실상의 무국적자들은 국적을 얻게 됐다. 그러나 고향에 남느냐 원래 국적을 유지하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운명이 엇갈린 이들도 있었다. 최근 현지 언론은 인도 본토에 남거나 이곳으로 거주지를 옮긴 이들이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정부가 2015년 자국의 영토가 된 땅을 전혀 개발하지 않은 탓에 이들이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가 ‘베를린 장벽 붕괴’에 비유한 2015년 8월 1일의 ‘마을 교환’은 국경을 정리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미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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