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아이가 속한 농구팀이 지난 주말 한 지역 대회에 출전했다. 초등부와 중등부 출전 팀을 모두 합쳐도 20팀이 안 되는 소규모였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나름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대회였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총 3팀이 참가를 신청했다. 아이 말에 따르면 경기를 앞둔 1, 2주일 전부터 각 팀 선수들은 점심시간에 숟가락을 놓자마자 운동장 농구 골대 앞에 모였다. 슈팅 연습을 하면서 어린 선수들은 서로의 실력을 탐색하며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대회는 예상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아이들은 무척 진지했고 나무랄 데 없는 팀워크를 보여줬다. 각자 연습량이 다르고 운동신경도 차이가 크다 보니 깜짝 놀랄 만한 드리블 실력을 보여준 선수가 있는가 하면 바로 앞으로 패스해준 공을 받는 것조차 서툰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친구의 서툰 동작과 실책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하이파이브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서로를 응원했다.

경기가 이어지면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골을 넣은 아이들, 이긴 팀의 아이들 얼굴에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확연했다. 지거나 비긴 팀들은 다른 팀의 전적을 확인하며 골득실을 따지기 바빠졌다. 큰 점수 차이의 패배가 속상해 울음을 터뜨리는 선수도 나왔고, 여러 차례 시도한 슛이 번번이 림을 비켜가 아쉬움이 컸는지 쉽게 코트를 떠나지 못하는 선수도 보였다. 결국 승리 트로피는 단 세 팀에게만 돌아갔다. 울었던 친구도, 코트에 서 있던 친구도 트로피를 받은 선수들에게 아낌 없이 박수를 보냈다.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어도 아이들은 결과를 받아들였다.

경쟁심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경쟁에 노출돼왔다. 원시시대의 경쟁이 자연인과 자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명확하고 단순한 구도였다면 현대 경쟁은 어떤 경우엔 경쟁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할 만큼 모호하고 복잡하고 거대해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경쟁심이나 승부욕을 갖게 된 이유를 원시시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생존’의 의미가 확대됐을 뿐 현대사회에도 진화심리학의 이 설명은 들어맞는다.

심리학은 경쟁이 개인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도 설명한다. 실패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뛰어넘고 싶은 경쟁심이 생기면 설사 실패할 지 모르더라도 승부를 걸어보게 된다는 얘기다. 경제학에선 이를 확대해 경쟁을 사회와 시장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경쟁의 긍정적인 기능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경쟁의 결과를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시간이나 노력, 비용 등을 얼마만큼 투자하면 경쟁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서게 될지 대략 예상할 수 있다. 공정한 경쟁으로 뭔가를 이뤄낸 사람은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또 다른 경쟁에 나서고 싶어한다. 이런 과정이 개인과 사회를 끊임 없이 변화시킨다.

대회는 아이들이 긍정적인 경쟁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스포츠나 과학, 예술, 글쓰기 등 다양한 대회에 참가하며 아이들은 실력을 가늠하고 자신감을 얻고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승부의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는 자세도 배운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어져온 학생 대회들이 최근 들어 줄줄이 폐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아이가 속한 초등학교 축구부가 매년 출전해온 학교 대항 지역 축구대회는 개최 횟수가 절반이 됐다. 과학 꿈나무들의 잔치로 유명한 청소년 과학탐구대회는 번번이 종목이 조정되고 줄더니 급기야 초등부 대회는 폐지까지 논의된다는 소식이다. 학생 선발에 교직원 부담이 크다거나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선 경쟁이란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짙어졌다. 긍정적인 영향은 뒷전으로 밀린 채 경쟁이 단순한 ‘줄 세우기’로만 치부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경쟁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필수 전제인 공정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퍼진 불공정 경쟁들이 학생 대회를 바라보는 시선에마저 불신을 심었다.

우리 농구팀은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아이는 더 잘한 친구를 보고 “뭘 더 연습해야 하는지 알겠다”고 했다. 1등에만 집착하는 건 어른들이지 아이들이 아니다. 경쟁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공정한 대회는 꿈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