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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탈레반과 평화협정 초안 합의
2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유엔 등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그린 빌리지를 겨냥한 대규모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6명이 숨지고, 1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탈레반은 배후를 자처했다. 사진은 이튿날인 3일 테러 공격이 빈발하는 것에 분노한 카불 시민들의 방화로 그린 빌리지 주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카불=AP 연합뉴스

18년째 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에서 2일(현지시간) 미국과 아프간 무장반군 탈레반이 전쟁을 몰아낼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프간에서는 최근 들어 도리어 각종 테러가 잦아지는 모습이다.

서부 지역 경찰서 인근에서 벌어진 탈레반 자폭 테러로 사상자 160여명 발생(8월 7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두바이 시티(시아파 소수민족 거주 지역) 결혼식장에서 수니파 극단주의조직 이슬람국가(IS)의 폭탄 테러로 63명 사망ㆍ182명 부상(8월 17일), 아프간 독립 100주년에 동부 잘랄라바드의 시장ㆍ광장ㆍ식당 등 10곳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로 66명 부상(8월 19일), 탈레반의 아프간 북부 쿤드즈 공격(8월 31일), 카불 그린 빌리지 폭탄 테러로 16명 사망ㆍ119명 부상(9월 2일) 등 탈레반과 IS 소행의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알 카에다의 테러 소식은 아직 없어 보인다.

미국은 이달 내로 탈레반과 18년간 이어온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을 세운 데다, 아프간은 오는 28일 대선을 치른다. 역사적 변곡점을 앞둔 시점에서 각 정파가 자기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테러를 벌이는 형국인 것이다. 특히 2일 그린 빌리지 테러는 잘메이 할릴자드 미국 아프간 평화특사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에게 미국과 탈레반 간 평화협정 초안이 타결돼, 미군 5,400명이 철수하게 됐다고 설명한 지 몇 시간 만에 벌어진 것이었다. 이후 탈레반은 테러 배후를 자처했다.

지난달 18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두바이 시티' 지역의 한 웨딩홀 내부가 전날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처참하게 부서져 있다. 이날 테러는 수니파 극단주의조직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것으로, 두바이 시티는 시아파 소수민족 거주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한편 이미 알 카에다를 제치고 아프간에 새로운 둥지를 틀기 시작한 또 다른 세력 ‘IS’와 관련해서는 IS가 ‘전통적인 테러 단체’로 복귀했다는 주장과 ‘IS 2.0’으로 발전해 되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담긴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그룹’은 1999년 요르단(현재의 팔레스타인 서안 지역) 출신의 알 자르카위가 창설했으며, 지난 2004년 우리나라 김선일 씨를 피랍 참수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지도자와 명칭을 갈아치웠고, 2014년 6월 29일 당시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ISIS/ISIL에서 IS로 조직 명칭을 바꾼 이후 극단적 폭력단체로 변신했다. 다만 서구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 IS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 또는 ‘이라크-샴 이슬람국가’를 뜻하는 ISIS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살라피스트-지하디즘 이념을 국가 이념으로 하는 칼리파제 체제, 현대적 용어로 풀이하면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 건설을 목표로 한 IS는 피랍과 참수, 화형, 높은 건물에서 떨어뜨리거나 물에 집어넣어 죽이는 형, 집단 총살, 여성 인신매매 및 성 노예화, 시아파 성지 파괴 등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공포정치를 자행했고, 그리스도교 및 서구의 상징인 로마 교황청을 점령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2일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인 탈레반의 소행으로 아프간 수도 카불의 그린 빌리지를 겨냥한 대규모 폭탄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이튿날인 3일 오전 현장 조사를 위해 사고지를 찾은 한 아프간 경찰이 전소한 차량 옆을 지나나가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칼리파제의 원형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의 메디나에 처음 건설한 종교공동체 ‘움마’였다. 움마는 타우히드(일원적 유일신관), 신 주권(신법)의 신정체제로 단일 또는 소수 지도자(집단지도체제)가 정치ㆍ종교ㆍ군사 모두를 통제하는 일종의 권위주의ㆍ전체주의 체제다. 이슬람 사상가들과 정치이슬람 그룹의 지도자들은 이슬람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무함마드(571~632년)와 그의 사후에 뒤따른 4명의 초기 칼리파(이슬람교 최고 권위자)들이 다스린 정통칼리파(632~661년) 시기의 이슬람을 ‘순수 이슬람’이라고 주장하는 데, 그것은 일종의 ‘극단적 유토피아’이다.

IS는 세계를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집)과 ‘다르 알 하르브’(전쟁의 집)로 분리하고 온 세상에 ‘다르 알 이슬람’을 구축하겠다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빛과 어두움’, ‘우리 대 그들’, ‘내 편 아니면 적’과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IS에게 그리스도교도와 그리스도교 문명인 서유럽 문명, 시아파 무슬림, 배교자(背敎者)는 곧 어두움ㆍ그들ㆍ적의 세력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기고 극단적 폭력을 통해서라도 없애려고 했다.

세계의 분쟁지역. 지난달 4일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의 모처에서 작전 지원 중인 미군 제1기갑사단 소속의 병사 한 명이 착륙 준비 중인 UH-60 블랙호크 헬기를 바라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18년째 이어진 아프간 전쟁을 종식할 것을 천명했고, 9차례 협상 끝에 지난 2일 미국과 무장반군 탈레반은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수 시간 만에 탈레반 소행의 대형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IS 수립 선언 직후인 2014년 7월 초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IS의 홍보 간행물 ‘다비끄’(Dabiq)에 따르면, IS는 칼리파제 건설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마오주의자 사상(Maoist ideas)의 3단계 게릴라전 구조, 즉 ‘손상 → 만행 → 합병’을 본 따 로드맵을 만들었다. 그 로드맵은 히즈라(Hizrahㆍ이주) → 자마아(Jama’ahㆍ공동체 형성) → 타구트(taghutㆍ우상) 파괴 → 탐킨(tamkinㆍ영토 합병) → 킬라파(Khilafahㆍ칼리파제) 건설이었다. 이 같은 로드맵 아래 IS는 시아파ㆍ그리스도교도를 이교도로, 일부 수니파 무슬림을 배교자로 낙인찍고 나서 ‘우상 파괴’를 명분 삼아 이들에게 극단적 폭력을 자행했다. IS는 2015년 초부터 사흐와(sahwah), 즉 ‘십자군에 동조하는 부역 세력’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80여 개국을 지명해 테러를 선동하기도 했다.

IS는 유전지대 통제, 은행 강탈, 외국인 피랍과 이들의 석방 조건으로 벌어들인 자금 등 풍부한 통치자금을 바탕으로 이슬람 전사 무자히딘을 충원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시리아와 이라크의 넓은 지역을 점령ㆍ통제할 수 있었다. 또한 극단적 폭력을 사용하면서 통제 지역을 크게 확장하였고, 아프간에 본거지를 두고 테러활동을 해왔던 알 카에다(지도자는 오사마 빈 라덴ㆍ알 자와히리)와 경쟁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2015년부터 아프간에도 본격 진출해, 탈레반과 경쟁적으로 테러를 벌이는 현재 상황에 이른 것이다.

세계의 분쟁지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백악관을 나서며 기자회견을 하던 중 취재진을 향해 이슬람국가(IS)의 시리아 점령 현황을 표시한 지도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이것(위 지도)은 (2016년 대선) 선거일의 IS고, 저것(아래 지도)은 현재의 IS”라며 “IS는 오늘 밤까지 처리될 것이다. 오늘부로 IS는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이후 2017년 7월 IS의 경제 수도인 모술(이라크)이, 같은 해 10월에는 정치 수도인 락까(시리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동맹군에 의해 탈환됐다. 당시 한 전문가는 “IS가 시리아 캠프에서 ‘칼리프 국가 2.0’을 건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이라크 전쟁(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집권한 시아파 정권은 후세인 정권 시기의 정치 엘리트와 수니파 군 지도자들을 탄압하고 소외시켰고, 이들이 대거 IS에 가입하면서 IS는 급성장했다. 2017년에도 이와 유사하게 IS가 통제하던 지역을 되찾은 이라크ㆍ시리아의 시아파 정부가 IS 대원이나 그 가족, 수니파 무슬림을 탄압한다면 결국 그것이 IS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란 주장이었다.

필자는 IS가 2014년 이후 이미 ‘IS 2.0’을 구축했고, ‘IS 3.0’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최근 아프간에서의 IS 테러는 전통적 테러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칼리파제 국가 재건을 꿈꾸는 이슬람 사상가와 이를 행동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이슬람 그룹은 오랜 역사 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고, 현대 이슬람 사회에도 폭넓게 퍼져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IS를 99% 물리쳤다”(2018년 12월)거나 “시리아의 칼리프 국가가 차지했던 영토의 100%를 탈환했다”(2019년 2ㆍ3월)고 공언했다. 그러나 IS가 완전히 소탕됐다고 해도 ‘칼리파제 국가’를 건설하려는 또 다른 IS류 정치이슬람 그룹이 언제든지 웹3.0의 형태를 갖추고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쟁과 정치경제적 혼란(청년 실업, 식량 부족, 부의 편중, 장기독재정권 등), 특정 종교와 종파, 특정 부족과 지역에 대한 소외와 탄압은 ‘IS 3.0’ 유형의 새로운 테러단체 탄생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2020년 한국중동학회 회장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ㆍ2020년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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