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오토칼럼] 한국형 레몬법은 당신을 도와주지 않는다

입력
2019.09.05 06:52
한국형 레몬법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상황이다.
한국형 레몬법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상황이다.

하자 있는 자동차의 교환·환불을 내용으로 하는 개정 자동차관리법, 일명 한국형 레몬법(이하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된 지도 반 년 이상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한국형 레몬법에 대해 소비자들은 ‘드디어 문제가 있는 자동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환영하는 동시에, 한국형 레몬법을 수락하지 않은 자동차제작자에 대해서는 지탄을 보내는 등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형 레몬법은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자동차의 하자에 관한 분쟁에 있어서 자동차 제조사와 수입사를 공식적인 분쟁해결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자동차 제조사와 수입사를 공식적인 분쟁해결의 장으로 이끌었다고 하여 무조건 하자가 있는 자동차에 대해 교환 또는 환불을 명하거나, 국가기관이 나서서 자동차의 하자 여부를 자발적으로 조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유의하여야 한다.

한국형 레몬법 전담기관인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 사무국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상당수의 소비자는 교환·환불 중재를 신청하면서 단지 신청서만 제출하거나 일방적인 주장에 기초한 자료만을 제출할 뿐 자동차에 하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청서만 위원회에 제출하면 위원회가 알아서 자동차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여 확인한 후 교환 또는 환불 판정을 내려줄 것이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중재”라는 용어가 갖는 통상적인 의미와 법률상 의미가 갖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중재”라고 하면 “양측 당사자를 제3자가 적절히 조율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에, 법률상 “중재”는 “당사자 간의 합의로 재산권상의 분쟁 및 당사자가 화해에 의하여 해결할 수 있는 비재산권상의 분쟁을 법원의 재판에 의하지 아니하고 중재인(仲裁人)의 판정에 의하여 해결하는 절차”를 뜻한다(중재법 제3조 제1호).

즉, 중재는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대신 중재인의 중재판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로, 중재절차는 중재규정 및 중재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진행된다. 따라서 중재절차에서는 신청인과 피신청인 상호간에 신청서와 답변서, 준비서면 등의 서면으로 각자의 주장과 그에 관한 증거방법을 중재판정부에 제출하여야 하고, 중재판정부는 제출된 서면과 증거에 기초하여 중재판정을 내리게 된다.

물론 한국형 레몬법에서는 인도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인도일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하자가 인도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되었다는 점이 증명되었을 때에 그 하자가 인도일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므로, 이에 근거하여 자동차를 교환 또는 환불 받으려면 소비자는 “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및 그 하자가 “인도일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되었다”는 사실, 하자가 반복되어 교환·환불 요건을 충족하였다는 사실 등을 주장하고 증거로써 이를 증명하여야 한다.

한편, 중재판정이 내려지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부여되므로, 중재판정에 대한 불복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중재는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주장 및 입증의 부담도 엄격하게 주어지므로, 한국형 레몬법에 따라 자동차를 교환 또는 환불받으려면 증거자료를 철저히 준비한 후 중재를 신청하여야 한다. 특히 ‘자동차 점검·정비명세서’와 같은 반복된 정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와 현재 하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어느 한쪽 당사자가 위원회에 제출하는 서류 및 자료는 지체없이 상대방 당사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므로(중재법 제25조 제3항), 위원회에 제출하는 서류 및 자료는 반드시 부본(원본과 동일한 사본) 1부를 함께 첨부하여야 한다.

중재는 중재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전제로 하는데, 당사자가 제출한 서류를 위원회가 복사 또는 복제하여 상대방에게 제공할 경우 위·변조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전달될 서류도 당사자가 직접 준비하여 제출하여야 하는 것이다.

한국형 레몬법은 중재라는 장을 만들어서 자동차 제조사 및 수입사와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6개월 하자 추정이나 성능시험대행자에 대한 사실조사 등을 통해 일정 부분 소비자의 증명 부담을 완화하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 한국형 레몬법이 소비자 편에 서서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거나 신청서만 제출하면 나머지는 위원회나 중재판정부가 모두 알아서 해 주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은 유의하여야 한다.

글: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

강상구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관련 다수의 기업자문 및 소송과 자동차부품 관련 다국적기업 및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근무 등을 통해 축적한 자동차 산업 관련 폭넓은 법률실무 경험과,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얻게 된 자동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강변오토칼럼], [강변오토시승기] 등을 통해 자동차에 관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자동차에 대한 다양한 정보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정리: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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