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업! K리그] ’오빠부대’ 옛말… K리그 여성팬 77% “선수 투지ㆍ승리에 희열”

입력
2019.09.05 0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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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그녀들은 왜 K리그에 빠졌나 

 ※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기업 및 지자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암흑기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 연중기획 ‘붐 업! K리그’에서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합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대구 달서구에 사는 정재경(14)양은 지난 5월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대구FC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를 처음 찾았다가 축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그룹 ‘에이프릴’ 초청공연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처음 찾았는데,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에 한 번, 승리 후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에 또 한 번 반했단다. 지난달 24일 대구에서 만난 그는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는 없었지만,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뒤 쓰러질 정도로 승리를 향해 뛰는 모습에 반해 6~8월 열린 홈경기에 ‘개근’했다”고 말했다.

K리그를 ‘직관(직접관람)’하는 여성 축구팬들의 대다수가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정환(43) 이동국(40) 고종수(41) 등 특정선수 소속팀 위주로 여성 팬들이 몰리며 ‘오빠부대’의 덕을 봤던 약 20년 전 흥행 요인과 달리, 여성 팬들도 이젠 선수보다는 팀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보이며 축구경기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경기의 품질’을 꼼꼼히 평가해가며 경기장을 찾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박주영이 지난 5월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수원과 경기 후 팬들과 악수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서울 박주영이 지난 5월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수원과 경기 후 팬들과 악수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본보가 지난달 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6개 K리그 구장(춘천ㆍ제주ㆍ서울ㆍ전주ㆍ대구ㆍ광주)에서 만난 317명의 여성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결과 ‘K리그 경기장에서 가장 즐기고자 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약 77%의 응답자가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39.4%ㆍ125명)’와 ‘응원하는 팀의 승리(37.2%ㆍ118명)’를 꼽았다. 경기 후 선수들과의 만남(19.2%ㆍ61명)과 먹거리 등 색다른 경험(3.2%ㆍ10명) 등 경기 외적인 요인을 크게 앞선 수치다.

경기내용이나 팀의 발전,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뛰는 선수들의 노력이 여성 팬들의 발길을 붙잡는 주요 요인이란 분석이다. 실제 선수들에게 원하는 팬 서비스를 묻는 질문에도 여성 팬들의 46.7%(148명)가 ‘경기력’을 우선으로 꼽아 사인 또는 사진촬영(42.9%ㆍ136명)을 앞질렀고, 구단이 보완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에도 ‘경기력 향상에 힘을 쏟아달라(33.4%ㆍ106명)’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경기장을 찾는 여성 팬들은 대체로 열성 팬으로 분류되는 서포터즈(0.9%ㆍ3명) 또는 남자친구(10.1%ㆍ32명)보다 친구(44.5%ㆍ141명) 또는 가족(41%ㆍ130명)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축구관람을 데이트 코스 등 특별한 이벤트로 여기기보다 오랜 기간 유대관계를 가져 온 이들과의 여가생활로 여기는 모습이다. 전북 익산시에 사는 전혜윤(36)씨는 “아들이 축구를 좋아해 지난해부터 전북 홈경기를 오기 시작했는데, K리그 관람이 온 가족의 여가생활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종종 응원단의 욕설이 심하거나, 선수들간 다툼이 있을 땐 어린이 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걱정된다”며 아쉬움도 전했다.

K리그 여성관중들은 경기장 내 식음료 또는 구단 머천다이징(MD) 상품 구매에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경기장 1회 방문 시 입장료를 제외한 평균지출 금액을 묻는 질문엔 1만~2만원(37.2%ㆍ118명)이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는데, 3만원 이상 쓰고 간다는 응답자도 약 20%(65명)에 달했다. 춘천에서 만난 40대 남성 팬 권모씨는 “경기장에서 지출 여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아내”라며 “아이가 유니폼 한 장을 사고 싶어 하더라도, (유니폼 디자인이)엄마 마음에 들어야 구매가 가능하다”고 했다. 여성이 홈 경기 수익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큰 손’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K리그 여성팬들이 지난달 24일 DBG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대구와 강원의 경기에 앞서 본보 설문에 응하고 있다. 대구=김형준 기자
K리그 여성팬들이 지난달 24일 DBG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대구와 강원의 경기에 앞서 본보 설문에 응하고 있다. 대구=김형준 기자

K리그에 여성 팬들의 유입이 늘면서 구단마다 여성 배려 시설 도입 등도 차근히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안심하고 경기장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응답자들은 구단에 원하는 여성배려 정책을 묻는 질문에 무려 54.3%(172명) ‘몰카(몰래카메라) 예방 및 점검’을 꼽았다. 여성화장실을 늘려 하프타임ㆍ경기 후 겪는 ’화장실 대란’을 완화해달라는 요구(28.4%ㆍ90명)도 많았다. 30,40대 주부 팬들은 모유수유 시설 확충(10.7%ㆍ34명)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주소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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