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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보이콧’ 朴 포스코 건 항소 안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무죄 판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이 선고된 지난해 4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의 피고인석이 비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 '재판 보이콧' 선언 이후 모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방송화면 캡처

피고인이 항소하지 않은 부분까지 법원이 재판을 다시 해 유무죄 판단을 바꿔도 될까.

지난달 29일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직권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뒤 등장한 법원 내 화두 가운데 하나다. 보통 형사 재판은 유무죄를 치열하게 다투기 때문에 검찰은 유죄를, 피고인은 무죄를 계속 주장한다.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피고인의 무죄 주장이 있는 부분만 살펴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판 전면 보이콧’을 선언한 박 전 대통령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피고인이 아무 대응을 안 하니, 법원이라도 세세하게 살펴본 게 아니냐는 얘기다.

3일 법원 등에 따르면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 가운데 포스코그룹 부분이 화제다.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해 포스코그룹에게 펜싱팀 창단을 합의하게 한 대목이다. 1심은 직권남용으로 기소된 이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최씨와 안 전 수석에 대한 재판에서 이 부분은 “창단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는 논리로 무죄가 선고됐다. 박 전 대통령은 무죄 주장을 할 수 있었지만 재판 보이콧 전략에 따라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측의 항소나 무죄 주장이 없었음에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소사실을 직권으로 심판해 파기할 수 있다”며 “1심을 직권으로 파기한 2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검찰의 항소만 받아 심리한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무죄로 바꾸고,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 자체가 이례적이란 평가다. “항소이유서에 포함되지 않은 사유도 직권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규정이 형사소송법에 있지만, 피고인 측이 항소이유서나 항소장 자체를 내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다.

상급심의 직권 심리 범위를 놓고 벌어진 논란은 예전에도 있었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7년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은 뒤 실수로 항소이유서를 특별검사법상 기한(7일) 내에 제출하지 않았다. 당시 특검팀은 “항소심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2심 재판부는 “직권조사 사유 범위 내에서 본안을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재판을 진행했다.

늦었더라도 법원에 항소장이라도 냈던 김 전 실장에 비하자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은 더 예외적인 사례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형사법정에서 검사만 항소한 경우는 18.4%, 검사만 상고한 경우는 7.8%에 불과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이 시작되면 재판의 적정성을 위해 항소하지 않은 피고인을 위해서도 직권으로 심리할 수는 있다”면서도 “이 부분을 두고 따로 다뤄진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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