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일본 돌고래의 날

입력
2019.09.03 18:00
29면
2014년 1월, 잠수복 입은 어부들이 일본 다이지 코브에서 돌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1월, 잠수복 입은 어부들이 일본 다이지 코브에서 돌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이 시작되자마자 대학살이 또 시작되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젠 그런 짓 좀 그만두는 게 어때”라고 점잖게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우리는 강하게 큰 목소리로 ‘규탄’해야 한다.

지난 9월 1일 일본 서부의 작은 마을 다이지에서 열두 척의 배가 항구를 떠났다. 왜 하필 열두 척이냐? 열두 척의 의미가 뭔지 알고 떠난 것은 아닐 거다. 열두 척의 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서툰 거짓말이다. 다이지 마을의 돌고래 사냥을 감시하는 ‘돌핀 프로젝트’는 다섯 마리의 큰코돌고래가 죽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대학살이 일어날 것이다. 매년 다이지 마을의 어부들은 9월 1일부터 무려 6개월 동안 대규모 포경을 한다. 우리는 ‘포경’이라고 하면 어떤 낭만과 매력을 느낀다. 조각배에 옮겨 타서 거대한 고래에게 작살을 던지는 장면 말이다. 작은 인간이 거대한 바다 짐승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그린다. 아마 ‘모비딕’의 영향일 테다.

현대의 세계 시민은 이런 낭만적이고 목숨을 건 포경마저 금하고 있다. 그런데 다이지 마을의 포경은 이런 게 아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돌고래를 작은 만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날카로운 작살을 숨구멍 바로 아래에 꽂아 넣는다. 여기가 급소다. 그러고는 얼른 그 구멍에 코르크 마개를 막는다. 피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장면이 세계에 퍼져나가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돌고래는 30분 이상 숨막히는 고통을 당하다가 숨진다. 다이지 마을의 어부들이 잡는 고래는 매년 1,700~2,000마리. 때로는 열흘 정도 돌고래들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굶긴다. 그리고 새끼를 사로잡아서 돌고래 쇼용으로 수족관에 판매한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포경을 금지하자 일본은 ‘연구 목적’의 포경을 했다. 매년 수백 마리를 ‘연구’라는 명목으로 잡았다. 최소한의 염치였다. 물론 세계는 다 알았다. 그 연구라는 게 결국 먹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 염치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올해 6월 말 일본은 IWC를 공식 탈퇴했다. 이제 당당하게 고래를 잡아서 먹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수족관은 2003년 이후 야생에서 포획된 고래류는 수입하지 않는다. 와! 유럽연합은 역시 다르구나! 천만에! 수족관에서 태어난 고래만으로 개체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다이지 어민들에게 사로잡힌 돌고래는 어디로 갈까? 열 마리 가운데 여섯 마리는 중국으로 간다. 한때 우리나라는 다이지 돌고래의 제2위 수입국이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44마리를 수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 나라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시민들이 나섰다. 핫핑크돌핀스 같은 동물권 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관심 없는 시민들에게 열심히 홍보했고, 법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설득했다. 무엇보다도 돌고래 수입으로 한몫 챙기던 업체들을 단념시켰다. 시민운동가들은 유명 로펌 변호사들을 논리로 싸워 이겼다. 마침내 법이 만들어졌다.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는 잔인한 방법으로 포획된 동물은 들어오지 못한다. 작살과 덫으로 잡은 동물,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서 잡은 동물, 떼몰이를 해서 잡은 동물은 수입하지 못한다. 세 가지 규정 모두 다이지 마을 돌고래 사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다이지 마을의 돌고래 사냥은 가장 못된 방식 세 가지를 다 사용하고 있다.

수족관에서 인기 있는 돌고래는 흰돌고래 벨루가다. 별난 고래다. 사람이나 기린이나 고래나 목뼈는 모두 일곱 개다. 그런데 고래는 목뼈가 모두 융합되어서 안타깝게도 고개를 돌릴 수 없다. 하지만 흰돌고래는 예외다. 목을 돌릴 수 있다. 마치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에 나오는 흰돌고래처럼 말이다. 흰돌고래는 주로 러시아가 잡아서 바다에 만든 작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키우다가 수출한다. 우리나라 수족관에 있는 벨루가도 대부분 여기서 온 것이다. 벨루가 역시 우리나라 법으로 금지된 세 가지 방식으로 포획된다.

한국의 활동가들은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돌고래 쇼는 계속되고 있다. 수족관에서 돌고래 쇼가 계속되는 한 일본 다이지 마을의 잔혹한 돌고래 사냥은 계속될 것이다. 비극을 끝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돌고래 쇼를 보지 않는 것이다. 돌고래 쇼라고 부르든 돌고래 생태체험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이 돌고래가 있는 아쿠아리움에는 가지 말자. 비극을 끝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매년 9월 1일은 ‘일본 돌고래의 날(Japan Dolphins Day)’다. 이날 우리는 맘껏 일본을 규탄해야 한다. 원래 욕은 나쁜 거다. 하지만 욕해야 할 때는 최대한 세게 해야 한다. 괜히 자신이 다 부끄럽고 미안해질 정도로 일본 정부와 어민을 욕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의 시민이 나선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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