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조안 리버스의 개 ‘스파이크’(9.4)

입력
2019.09.04 04:40
30면
구독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의 개척자 조안 리버스.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의 개척자 조안 리버스.

조안 리버스(Joan Rivers, 1933.6.8~2014.9.4)는 1950년대 남성 독무대였던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의 젠더 장벽을 허문 개척자적인 여성 코미디언이다. 50년대 뉴욕 나이트클럽의 무명 코미디언으로 시작해 65년 무렵부터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 고정 게스트로 활약했고, 86년 갓 출범한 폭스사와 연봉 1,000만달러 계약을 맺고 ‘투나잇 쇼’ 대항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그게 그의 전성기였다. 자니 카슨의 팬이기도 했던 리버스의 팬 다수는 그 선택을 배신이라 여겼다. 그의 쇼는 1년도 안 돼 부진 끝에 문을 닫았다. 65년 이래 그의 연기자로서의 삶을 함께한 매니저 겸 남편(Edgar Rosenberg)이 우울증 끝에 자살한 것도 87년 그해였다. 리버스는 긴 슬럼프를 겪었다.

리버스는 신랄함과 통렬함이 생명이라 할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 안에서도 거칠고 앞뒤 좌우 안 가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때로는 품위와 윤리의 선을 넘나들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드레스를 두고 “헬렌 켈러(맹인)의 작품 같다”고 한 적도 있었다.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의 풍성한 헤어스타일을 두고 “빗질을 하면 그 안에서 지미 호파(실종된 노동운동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훗날 이야기지만 남편의 비극적인 죽음도 그에겐 코미디 소재였다. 남편이 숨진 뒤 딸 멜리사와 한 식당에 갔다가 메뉴판을 보곤 이렇게 말했다는 거였다. “만일 네 아버지가 여기서 이 밥값을 봤다면 또 한 번 자살했을지 모르겠다.” 누가 그에게 그의 유머가 부적절하다거나 거슬린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리버스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아직 덜 컸네(Oh grow-up!)”라고 대꾸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그의 부고에 썼다.

슬럼프 기간 동안 그는 심한 우울증과 식이장애를 앓았다. 훗날 그는 반려견 ‘스파이크(Spike)’ 덕에 자신이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던 어느 날 텅 빈 집에서 혼자 총을 무릎 위에 두고 앉았는데 요크셔테리어 믹스견인 스파이크가 총 위에 냉큼 올라와 앉더라는 것이다. 내가 가면 누가 얘를 돌볼까’ 생각하게 됐고, 그 생각이 자기를 구했다는 거였다. 그는 유산의 일부를 맹인 안내견 재단에 기부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