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중산층의 복지 이기주의

입력
2019.09.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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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경사노위 연금개특위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회의 종료에 앞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뉴시스
장지연 경사노위 연금개특위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회의 종료에 앞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뉴시스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 방안을 논의해 온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연금특위가 지난달 30일 복수의 국민연금개편안을 내놓고 10개월간의 활동을 끝냈다. 연금특위는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돼 있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고, 9%인 보험료율을 12%로 인상하는 안(가안), 현행 유지안(나안), 소득대체율은 유지하면서 보험료율만 10%로 인상하는 안(다안)을 제시했다. 연금특위는 세 가지 방안이 병렬적으로 제안됐다고 설명했지만 노후소득강화에 방점을 찍은 가안이 다수안이었다는 점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연금특위의 개편안은 경사노위 본회의 의결 후 국회로 보내질 예정인데, 연금특위 참여단체 중 한국노총,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한은퇴자협회 등 5개 단체가 가안을 지지한 만큼 국회에서도 비중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공적연금 개혁의 목표는 여러 가지인데 전문가들은 대체로 노후소득 보장의 강화, 연금 재정의 안정, 노후소득의 재분배 등을 그 목표라고 설명한다. 여러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최대 관심사였던 집단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는 점은 두고두고 근심거리가 될 걸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연금개혁이 이뤄진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의 격차가 노후소득의 차이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노후소득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기초연금이다. 물론 연금특위에서 기초연금 인상도 논의는 된 것 같다. 하지만 회의록을 들여다보면 ‘국민연금 대체율 논의가 우선’이라는 쪽의 기세에 밀렸던 것으로 보인다. 연금특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도 “기초연금은 제대로 논의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후불평등은 완화될 수도 반대로 심화할 수도 있다. 조금 복잡하지만 지난 5월 이승윤 이화여대 사회학복지학과 교수가 학술지 ‘비판사회정책 63호’에 발표한 시뮬레이션을 보자. 그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고정하고, 기초연금을 30만원(현행)으로 두는 경우와 50만원으로 인상하는 케이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고 기초연금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경우와 50만원으로 인상하는 케이스로 나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예상연금액을 추정했다. 결과는 이렇다. 4가지 조합 중 소득대체율을 고정하고 기초연금을 올렸을 때 비정규직의 예상연금액 비중은 정규직 대비 35.24%로 가장 높았다. 반면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기초연금을 고정했을 때 비정규직의 예상연금액은 정규직 대비 27.94%에 불과, 가장 낮았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고 가입률이 낮은 비정규직, 취약계층에게 기초연금 인상 없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상대적으로 가장 불리한 개편이라는 얘기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와 같은 복지시민단체도 이런 이유로 보험료율 인상, 소득대체율 고정, 기초연금 인상을 지향해야 할 공적연금 개혁방안으로 제시한다.

이번 연금특위의 논의결과는 중심부 일자리, 유노조, 정규직, 세대적으로는 은퇴를 앞둔 386세대에 유리한 사회보험 중심 복지제도가 가져올 ‘중산층 중심 복지’의 한계를 정조준한다. 이런 중산층 중심 복지는 플랫폼 노동자 증가 등 표준적 일자리가 사라지는 노동시장의 구조변화와도 긴장 관계에 놓일 게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사회보험제도 바깥에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제도인 한국형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제도)를 도입하고, 취약노인 계층을 타깃으로 한 기초연금 인상 등에 주목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이른바 친복지진영을 대표해온 노동조합, 시민단체들도 격차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한다면,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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