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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저희는 결혼한 지 3년된 부부에요. 동료의 소개로 만난 남편은 연애할 때는 무척 자상하고 세심한 사람이었어요. 사귄 지 3개월쯤 남편은 저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많이 사랑해준다는 느낌이 들어 저도 서둘러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남편과 사사건건 다퉜어요. 남편은 주는 것도 잘하지만 주는 만큼 받는 것도 굉장히 원했어요. 알던 것보다 더 내성적이고 예민하고, 경제적으로 굉장히 철두철미했어요. 결혼 전 예비부부 교육을 허락 없이 신청했다고 화를 내고,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돈을 보태지 않았다고 구박했어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배가 아픈 자신을 잘 챙겨주지 않았다며 공항에 도착해서도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리며 약도 먹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아이가 생기면서 갈등은 더 커졌어요. 입덧이 심해 병가를 쓰겠다고 하니 남편은 월급이 안 나오니 병가를 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육아휴직을 하면서 수입이 줄자 남편은 생활비 100만원만 주면서 알아서 애도 키우고, 살림도 하라고 했어요. 저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저랑 다투거나 갈등이 있으면 남편은 퇴근 후에 아예 집엘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와도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어요. 심지어 연락이 안돼 시부모님이 실종신고를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어 아이와 함께 친정에 갔을 때도 남편은 한 달 넘도록 먼저 연락하지 않았어요.

게티이미지뱅크

남편에 대해 신뢰가 완전히 깨진 건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였어요. 주말에 남편이 바빠 혼자 아이를 돌보다 감기 증세가 심해져 병원에 갔어요. 남편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리자 남편은 입원하면 항생제 맞아야 하고, 통원치료 하면 되는데 왜 애를 고생시키냐며 저를 타박했어요. 결국 남편 동의 없이 아이를 입원시켰는데 남편은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며 화를 내며 전화를 끊고 사흘간 연락이 두절됐어요. 제가 전화를 다시 걸어 “아이가 아빠를 많이 찾고 있으니 기분 풀고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병원에 왔어요.

갈등이 반복되면서 올 초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항의하듯 방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만 있었어요. 누워만 있는 남편을 보기 힘들어 아이와 친정으로 왔고, 별거가 시작됐어요.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부부상담을 받아야겠다고 하더니, 정작 같이 상담사를 만날 때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아이에게 굉장히 집착이 심해져서 주말마다 찾아옵니다. 하지만 아이하고만 얘기를 하고 저와는 눈도 마주치질 않습니다. 어떻게 할지 답을 달라고 해도 반응도 없고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서현(가명ㆍ30세ㆍ회사원)

서현씨, 우리의 삶이 언제나 행복할 순 없지만 때때로, 혹은 아주 가끔이라도 행복할 때가 있지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첫 번째는 스스로 마음이 편해야 해요. 두 번째는 주변에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게 중요해요. 인간은 내가 아니면 모두 타인이에요. 가족도 타인이지요. 타인과 잘 지내려면 그들이 주는 수많은 자극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그래도 불편할 때에는 스스로 불편한 감정을 잘 소화해야 해요.

서현씨의 남편은 행복하기 위한 이 두 가지가 전혀 안돼요. 남편은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에요. 본인도 힘들겠지만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인 서현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것은 고통에 가깝지요

남편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매우 예민합니다. 자극은 다양해요. 외부 소음, 계절 변화, 장소 변화 등 환경적인 자극들이 있고,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정보, 거슬리는 정보 등의 정보 자극이 있지요. 또 타인의 말투와 목소리 톤, 미묘한 얼굴표정, 몸에서 나는 냄새,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부딪침, 만원 지하철에서 서로 몸이 닿는 것 등의 인간 자극이 있지요. 남편은 외부 자극 중에서도 특히 인간 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못해 과민해지는 사람이에요. 예민함의 정도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높아 치료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외부자극을 접하고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생존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상황과 사정에 따라 예민할 수도 있으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예민한 사람은 일상생활의 기능 유지와 역할 수행이 어렵고 사회적인 기능발휘에도 문제가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남편은 어느 정도 정서적, 신체적으로 안전한 거리가 유지되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예민해집니다. 가장 가까운 대상인 가족은 공간을 같이 쓰고 몸이 닿고 대화하면서 말을 주고받고 표정을 주고받아야 하니까요. 일상에서 가족과 의견이 다르거나 갈등이 생기면 예민해지고, 쉽게 불쾌해지고, 화를 내는 등 과하게 반응합니다. 아니면 말을 하지 않거나 상황을 회피해요.

남편이 밖에 나가서는 멀쩡하게 잘 지낼 순 있어요. 하지만 가족이 아닌 남과 잘 지내는 것은 그들과는 어는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들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싶기에 과도하게 참기도 하지요. 직장에서 잘 지낸다고 사회적 역할과 기능 수행을 잘 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것은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해요. 자식이 아파 의사를 만나는 것도 사회적 역할로 볼 수 있어요. 가족에게는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지나치게 통제하고 자신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화를 내지요.

이렇게 과도하게 예민한 것은 근본적으로 불안 때문이에요. 불안의 표현이 예민함으로 표출돼요. 남편은 불안이 건드려지면 예민해지고, 부적절하게 반응해요. 아이가 폐렴에 걸려 입원하면 대개는 걱정부터 합니다. 걱정도 불안의 일종인데, 남편은 아이 상태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항생제 투여 여부와 통원치료 등을 운운하며 보편적이지 않게 반응합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들은 남의 충고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예민해서 지나치게 주도적이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생각한 방법과 방향으로만 가야 불안하지 않고, 안심이 돼요. 본인이 생각한 데서 벗어나면 내면에 불안이 생기고,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안전한 경계가 무너지고 자신의 삶이 위험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남의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가까운 사람들은 너무 괴로워요. 남이 아니라 자기 내면이 불안하기 때문에 예민해지는 건데 언제나 상대를 탓합니다. 예민해지면 기분이 불쾌해지고, 짜증을 내고 별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화를 내요. 어떨 때는 완전히 회피하고 차단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상대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상대가 사과하거나 달래주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아요. 내면이 불안한 원인을 다른 이에게 귀결시킵니다.

스스로 자기 마음을 소화하는 능력도 아주 떨어져요. 보통은 그냥 기분이 나빴다가도 스스로 감정을 소화하고, 역지사지로 남을 이해하지만,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질 못합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아닌 소소한 일에도 혼자 기분 나빠하고 토라지고, 상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남편의 유년기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부모가 아들의 기분이 풀리는 데만 몰두해서 키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가 들어줄 수 없는 일로 울면서 떼를 쓰는 경우가 왕왕 있지요. 이때 부모가 “우리 아들 화났어? 엄마 때문에? 어떻게 하지,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미안해, 화 풀어, 엄마가 잘못했어”라면서 아이 감정을 빨리 풀어주는 것에만 몰두하면 아이는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완화시키는 내적 능력이 생기질 않습니다. “기분이 안 좋구나, 엄마가 안 들어줘서 그런 거구나, 속상한 마음은 알겠어, 네가 좀 괜찮아질 때까지 엄마가 기다려줄게”라고 아이의 기분을 알아주면서 분명하게 지침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진정되면 “엄마가 안 들어줘서 네가 기분이 나쁠 순 있는데, 네가 기분이 나쁘다고 엄마가 다 들어줄 수 있는 건 아니야”라고 설명해주면 됩니다. 물론 기질적 특성이나 성향 등이 있지만 남편은 이런 경험이 부족해 예민함이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과도해졌을 수 있어요.

서현씨, 당신이 어떻게 해도 남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순 없어요. 그의 내면에 있는 불안함 때문에 예민해지는 것이지,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남편을 달래줬더라도 아마 남편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요. 배우자와 자녀가 대표적인 희생양이죠. 평범한 일상에서 사사건건 예민함이 건드려지면 멀쩡히 있는 상대를 탓해요.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했고, 이해해주려고 해도 같은 공간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고, 매 순간 스치는 가족관계에서 이토록 자극에 예민한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게티이미지뱅크

부부는 서로 도움이 되고, 마음을 의지하면서, 균형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남편은 안타깝게도 균형적인 정서 발달이 안됐어요.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거나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적절하고 표현하며 타인의 마음도 이해하고, 적당하게 응답하는 것을 정서적 발달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남편은 자기 마음 상태도 모르고, 예민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돌볼 여유나 능력도 없어요.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내면에 자기 마음만 가득한 상태지요. 남편이 자신의 이런 상태를 알아차린다면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순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인정하질 않아요.

이혼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예민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건드리지 않고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아이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아버지와 가끔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지는 서현씨가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오히려 두 분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 관계가 나아질 수도 있어요. 혼인 상태를 종결하면 서로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이 줄어들고, 기본적인 거리가 생깁니다. 그렇게 됐을 때 남편도 덜 예민하게 당신을 대할 수 있을 거에요. 최소한의 엄마, 아빠로서의 역할만 수행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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