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토야마 전 총리 “화이트리스트와 지소미아 순차적 복원해야”

입력
2019.09.01 17:16
수정
2019.09.01 23:2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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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트럼프에 순종적… 한일관계 개선에 미국 역할이 중요해

자민당 내 아베 비판 힘든 구조… 한일 민간차원 결속해 행동해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한국일보ㆍ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원석 코리아타임스 기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한국일보ㆍ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원석 코리아타임스 기자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이 미국의 중재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 배제 및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순차적으로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하토야마 유키오(72ㆍ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지난달 29일 한국일보, 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서 “미국이 지소미아를 원래대로 되돌리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다시 넣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으로, 미국이 한일 양국을 중재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협력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상호 신뢰를 위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할 필요가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 악화를 촉발시킨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의 철회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공동 주최로 열린 DMZ 평화경제 국제포럼에 참석해서도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철회와 지소미아의 복원, 한일 당국자 간 조속한 협의 등을 제안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아베 정권이 지금 당장 태도를 크게 바꾸는 것은 좀처럼 바라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 그는 “다만 아베 정권이 미국에 대해서는 극히 순종적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는 메시지가 나오면 본심이 바뀔진 몰라도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을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한일 관계가 충돌하는 근본적 원인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 있다는 게 하토야마 전 총리의 기본 입장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역사 문제가 계기가 되어 또다시 한일 관계가 매우 험악해진 것을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제의 강제징용 또한 식민 지배의 연장선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도 “강제징용 문제를 계기로 한일 대립이 최악의 전개로 흘러갔다. 그 원점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어 고통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이어진 일본 민주당 정권의 첫 총리로서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이다. 2015년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의 묵념을 하는 등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지론으로 피력해왔다.

_강제 징용 문제에서 시작된 한일 관계 악화의 영향이 경제와 안보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나?

“오랜 역사 속 서로 배움을 주고 받았고, 신뢰관계도 형성돼 있었을 것이 분명한 한일 양국이지만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적도 있었고, 그로 인해 한국의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다. 이 역사 문제가 계기가 되어 또다시 한일 관계가 매우 험악해진 것을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_아베 정부는 현 상황에 대해 ‘신뢰 관계를 해쳤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장에 나오면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했지만 한국 역시 결국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렸다. 양국의 입장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앞서 말한 역사 문제가 근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청구권협정에 의해 문제가 전부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 역시 한 때 현실적으로 개개인의 청구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청구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1991년 야나이 슌지 외무성 조약국장이 일본 의회에 출석해 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했고, 이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된 일’이라며 그 문제를 또 꺼내는 것은 신뢰를 해치는 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신용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일본 측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_지난달 28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시행했다. 왜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가 강제징용이 아닌 안전보장상의 이유라고 주장한다.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을 안전보장상 문제가 있는 나라에 공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 한국에 답변을 요구했지만 좀처럼 답장이 없었고, 따라서 우대조치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 역시 “어느 나라에 대해서냐”고 (일본 정부 측에) 물어봤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말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만약 수출관리 운용상의 문제가 맞았다면 더 끈질기게 한일 담당자 간의 논의를 했어야 하지 않았겠나. 이런 시기에 단숨에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는 건, 무언가 관저에서 지시한 것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결국 강제징용 문제(대법원 판결)가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강제징용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으니 일본 정부가 그것을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거한 것은 결코 적절한 조치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_미국이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라고 압박하는 한편, 한일관계에 의미 있는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일간 강대강 대치가 계속된다면 한미일 안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지소미아는 특히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을 때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북한이 계속 평화의 방향으로 간다면 지소미아의 필요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최근 들어선 지소미아가 오히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필요성 역시 아직은 남아 있을 수 있다. 한일 양국은 미국의 중개 하에 향후 지소미아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여러 차례 한 뒤,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역시 상호신뢰 회복의 한걸음으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미국을 사이에 낀 채 한일 담당자가 의논하여 결론을 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2015년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선열 추모비에 헌화한 후 무릎을 꿇고 조의를 표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애국지사들이 처형 당했던 사형장.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 2015년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선열 추모비에 헌화한 후 무릎을 꿇고 조의를 표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애국지사들이 처형 당했던 사형장. 신상순 선임기자

_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수출 제재를 철회하면 역시 지소미아 중단 결정을 재고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수출 제재 철회 가능성이 있나?

“지금의 아베 정권은 상당히 강경해져 있어서 좀처럼 올바른 의견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철회) 가능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특히 미국이 지소미아를 원래대로 되돌리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일본이 소위 안전보장상의 이유를 들어 제외시켰던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다시 넣어야 한다고 했을 때, 미국이 한일 양국 사이에서 협력관계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그 방향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없지 않다.”

_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강한 압박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내부정치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 이후엔 헌법 개정에 대한 의욕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진짜로 원하는 것일까?

“아베 총리 본인이 아니니 어디까지 그의 본심을 알려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특히 일본 젊은이들은 슬픈 역사를 모른다.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한편 일본은 20~30년 가까이 경제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소위 ‘성장하는 일본’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강한 발언을 하는 중국이나 한국에 대하여 ‘나는 강한 일본을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선호되는 풍조가 있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때에 이른바 국가주의를 고양시키는 일에 뛰어난 것이다. 다만 그로써 평화헌법 개정이 수월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고는 있지만, 정말로 전쟁을 하겠다는 의사결정까지 아베가 이끌어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 개정은, 국민 과반수가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 본인은 하고 싶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지지율을 높이고 있을 뿐이다. 정말 헌법개정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_일본 민주당 정권은 한일관계에 많은 힘을 쏟았다. 하토야마 총리를 비롯해 간나오토(菅直人) 총리 등. 하지만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지금의 한일관계가 됐다. 일본 정부는 지금부터 한국과 어떤 식의 관계를 쌓아 올리려고 하는 것일까?

“민주당 정권 시절엔 리버럴한 생각으로 일본을 통치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히 주변국인 중국이나 한국 분들과 가능한 한 신뢰관계를 맺어가고 싶었다. 또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 외교로 바꿔 나가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발상이 자민당 안에도 없진 않았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의 ‘고노 담화’도 있었다. 하지만 옛날 자민당 ‘다나카파’ 계보가 힘을 잃어 버리고 현재는 자민당 안에서 리버럴 세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 같은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여기에 아베 총리는 미디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미디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국가주의적인 일본의 상황에 대해 미디어의 비판도 크게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아베정부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계속 가져가면서 국가주의를 부추기려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한일관계를 더욱 양호하게 만들어갈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일 국교정상화도 바랄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선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한국일보ㆍ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원석 코리아타임스 기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한국일보ㆍ코리아타임스 공동 인터뷰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원석 코리아타임스 기자

_얼마 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가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하는 등,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고 시민 사회에서는 ‘한국은 적인가?’ 서명 같은 운동도 있었다. 이런 움직임이 앞으로 아베 정권 교체로 이어질까? 시민사회가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시바 시게루 의원이 화이트리스트의 문제 등을 포함해 정권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선거구 안에서 당, 혹은 관저의 생각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것은 공천 문제도 있고 해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미디어까지 관저에 장악돼 있으니 좀처럼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하고 있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자민당 역시 선거 때마다 표가 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의석이 늘었다 해도 그건 야당이 분열 등 때문이지 반드시 자민당 자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 차원에서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한일 시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여러 가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한일 지식인들이 연대를 하고 아베 정권에 대해 말을 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jwpark@koreatimes.co.kr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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