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대통령을 에워싸는 반(反) ‘조국 민심’

입력
2019.08.3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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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을 비판하는 이들을 싸잡아 무섭다니, 

 도덕적 비난받을 일 전혀 한 것 없다니, 

 민심 못 읽으면 이 정부 미래는 매우 어둡다 

 

지난 28일 밤 서울대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서울대인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동문들이 촛불을 들고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대근기자 /2019-08-28(한국일보)
지난 28일 밤 서울대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서울대인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과 동문들이 촛불을 들고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오대근기자 /2019-08-28(한국일보)

“인간이 무섭다”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비판하는 이들을 모두 싸잡아 ‘무서운 인간들’이라고 했다. 정치를 내려놓은(정확히는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뒤 대중과 지근거리에서 친근한 호흡을 해 온 그다. ‘논두렁 시계’ 트라우마가 아무리 깊다 한들, 불공정한 게임룰에 허탈해하고 격분하는 청년들을, 또 계급의 벽을 허물어줄 거라 기대했던 이로부터 확인된 공고한 벽의 높이와 두께에 좌절하는 개천 서민들을 어떻게 이렇게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조 후보자를 지지하려다 취지가 뒤틀려 전해진 건 아닐까 싶어 문제의 라디오 인터뷰 전문을 찾아 읽어봤다. 저변에 깔린 사고는 조 후보자를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악이라는 철저한 편가르기였다. 지금 표출되는 ‘조국 민심’은 진짜 민심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이나 보수언론 등이 조작해낸 민심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대학생들이 든 촛불에 배후가 있다고, 조국을 깎아내려야 한다는 욕망이 지배하는 기자들이 집단창작을 하고 있다고 일갈할 수 있다. 묻고 싶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에 북한 특수부대가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극우파의 인식과 뭐가 다른가. 용산 참사의 모든 원인이 배후세력이라는 억지와 어떻게 다른가.

외눈박이 확증 편향도 놀랍다. 그는 “문제 제기 중 단 하나라도 조국 후보자가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받거나 법을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는 일을 한 게 있느냐. 한 개도 없다”고 단정한다. 법 위반이야 검찰이 밝힐 부분이니 차치하고,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일조차 전혀 없다고 자신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 전체를 바보로 알고 가르치려는 전형적인 꼰대 진보의 행태”라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의 지적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글도 아쉽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공개적으로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며 그가 겪어야 했던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럴까 이해도 된다. 여느 청문회가 그렇듯 선을 넘은 가족 파헤치기가 뒤섞여 있는 것도 일부 사실이다. “아직 대부분의 정보가 ‘조국 딸’로만 검색되는 지금은 그나마 다행이다. 조OO로 검색되게 만들지는 말자“는 데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도 숨죽이지만 말고 원한다면 목소리를 내라니. 이건 부당한 게 맞다니. 그 말을 정말 ‘조국 딸’에게 하고 싶었다면 직접 하는 것이 나았다. 공개리에 이렇게 말한 건 입시 불평등에 좌절하는 청년층을 향해 “너희들은 집단 폭행을 하고 있는 거야”라며 칼을 겨누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가 SNS에 남긴 글도 민심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그는 “딸 문제에 있어 의도적으로 반칙이나 편법을 사용한 흔적은 없다. 제도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했을 뿐”이라 했다. 지금 국민들의 분노가 위법임이 확인됐기 때문이 아니라 합법 테두리 내에서 있는 자들의 특권은 진보ㆍ보수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걸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사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청문회를 들고 나왔을 때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략적인 공세를 펼치는 한국당보다 들끓는 밑바닥 민심을 더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검찰의 공세적 수사라는 예상 못한 대형 변수가 터지면서 임명을 강행할지 아니면 자진 사퇴 수순을 밟을지 예측은 쉽지 않게 됐다. 청문회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든 지금처럼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한다면 이 정부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인사들의 이런 추동이 이끌어 내는 ‘조국 힘내세요’ 등 지지층의 결속에 취해 일반 다수 민심을 외면하는 한 앞으로 어떤 정책도 지지를 받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쯤에서 자문을 해 본다. 이런 지적을 하고 있는 나도 정말 ‘무서운 인간’인 건지.

이영태 디지털콘텐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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