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자민당 간사장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은 게 많은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 정치인이나 학자의 말이 아니다. 일본의 유력한 차기 총리 주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의 발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그는 일본 정계에서 ‘여당 내 야당’으로 불린다. 그러나 한일 갈등이 ‘강 대 강’ 대치 속에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 정치인이 자국 정부의 ‘역사 의식 부재’를 탓하며 자성을 촉구하는 건 분명히 이례적이다.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한 이튿날인 지난 23일,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며 “전쟁 책임을 스스로의 손으로 밝힌 독일과 (일본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또 “일본과 한반도의 역사, 특히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의 양국 관계를 배울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도 했다.

11선 중의원인 그는 방위장관을 지낸 안보 전문가다. 자민당 주요 인물로 우파이기는 하나, 극우 색채가 강한 아베 총리와 비교하면 정통 보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위대 강화 등의 주장을 펼치면서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력히 비난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침략 전쟁’이라고 평가하는 등 일본 극우와는 다른 역사 인식을 보여 왔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포스트 아베’, 즉 2021년 9월 임기를 마치는 아베 총리의 뒤를 이어 차기 자민당 총재 겸 총리를 맡게 될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만 대중적 지지에 비해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데다, ‘아베 4선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 때는 전체 498표 중 199표를 얻어 아베 총리(141표)를 꺾었으나, 결선투표에서 19표 차로 패했다. 재도전에 나선 지난해 9월 총재 선거에서도 ‘반(反)아베’를 기치로 내걸고 아베 총리와 일 대 일로 맞붙었으나,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