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나빠져도 경기 살려야” 내년 514조 슈퍼예산 ‘모험수’

입력
2019.08.30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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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60조 넘는 역대 최대 국채 발행… 2020 예산안 올해보다 9.3%↑ 

 소재ㆍ부품ㆍ장비 R&D 24조1000억… 국방 예산 사상 첫 50조원 돌파 

홍남기 부총리가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확장적·적극적 재정운영 기조를 강화한 513조 5,000억원 규모의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가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확장적·적극적 재정운영 기조를 강화한 513조 5,000억원 규모의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0조원 넘는 역대 최대 적자 국채를 발행하며 올해보다 9.3% 증가한 513조5,000억원의 내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예산 규모가 500조원을 넘는 것도, 증가율이 올해(9.7%)에 이어 2년 연속 9%를 넘는 것도 처음이다.

“비장한 각오로 예산안을 편성했다”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설명처럼 정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장 재정 악화를 감수하고라도, 꺼져가는 경기를 살려 미래에 더 큰 경제 추락을 선제적으로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2.5배에 달하는 예산지출 증가 속도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한번 올리면 내리기 어려운 복지 등 ‘경직성 예산’이 해마다 급증하는 상황에서, 성과는 장담하기 힘든 연구개발(R&D), 수출ㆍ창업ㆍ소상공인 보증ㆍ융자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붓고 있어서다. ‘건전 재정 유지’의 기로에서 정부가 역대급 ‘슈퍼예산 모험수’를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0년 분야별 예산 규모_신동준 기자
2020년 분야별 예산 규모_신동준 기자

 ◇내년 예산 올해보다 44조원 증가 

정부는 2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2020년 예산안’을 심의ㆍ의결했다. 513조5,000억원의 내년 예산은 올해 본예산(469조6,000억원)보다 43조9,000억원(9.3%)이 증가한 ‘슈퍼 예산’으로 평가된다. 지출증가율 9.3%는 내년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 전망치(3.8%)를 2.5배 가량 크게 웃도는 것이다.

급증한 내년 예산은 혁신성장 가속화와 경기활성화, 사회안전망 강화, 국민 안전 증진 등에 골고루 투입된다. 12개 분야별 예산 모두 올해보다 증가했다.

정부는 우선 혁신성장 가속화에 올해(8조1,000억원)보다 59.3% 증가한 12조9,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데이터, 5G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인공지능 등 이른바 ‘D.N.A(데이터, 네트워크, AI)’ 육성에 1조7,000억원과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빅3 산업’에 3조원 등 총 4조7,000억원을 집중 지원한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선 핵심 기술개발과 제품 상용화, 설비투자 확충을 위한 자금공급에도 올해보다 1조3,000억원 늘어난 2조1,000억원을 쏟기로 했다. 추가 소요를 대비해 관련 목적예비비도 5,000억원 증액했다. 소재ㆍ부품ㆍ장비 기술개발 등 R&D 예산도 24조1,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7.3% 확대했다. 개발된 기술이 신속히 제품화될 수 있도록 기업의 성능평가를 적극 지원하고, 공동으로 활용 가능한 양산ㆍ실증 인프라 확충에도 5,000억원을 투입한다. 제품 성공 기업에는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국고 4,000억원을 신규 투입하는 등 설비투자 자금으로 1조6,000억원을 배정했다.

수출ㆍ투자 등 민간부문의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투자도 대폭 확대했다. 고위험 수출 시장 개척에 수출입은행, 무역보증보험 등 6,000억원으로 투입해 4조원 넘는 무역금융을 공급한다. 기업 설비투자, 경영안정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재정에서 1조3,000억원을 출자ㆍ출연해 정책자금을 20조원 이상으로 보강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3만개 보급, 스마트산단 10개소 조성 등 제조업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예산도 대폭 늘렸다. 민간부문 지원을 뒷받침하기 위한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분야 예산은 23조9,000억원으로, 12개 주요 예산 분야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인 27.5%(5조2,000억원)가 늘어난다.

2020년 주요 사업_신동준 기자
2020년 주요 사업_신동준 기자

 ◇보건ㆍ복지ㆍ고용 예산이 35.4% 차지 

정부는 내년 일자리 예산을 올해(21조2,000억원)보다 21.3%(4조6,000억원) 늘린 사상 최대 규모(25조8,000억원)로 편성했다. 일자리를 포함한 보건ㆍ복지ㆍ고용 예산은 181조6,000억원으로 12.8%(20조6,000억원) 증가한다. 전체 정부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4%로 상승,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보다 1조7,000억원이 증가한 13조2,000억원이 편성된 기초연금과 2조3,000억원이 증가한 실업급여의 영향이 컸다.

국민 안전ㆍ편의와 관련된 투자도 대폭 확충됐다. 기존 인프라 시설에 AI, 5G 등이 접목한 스마트 인프라 구축에 1조2,000억원이 투자되고, 붉은수돗물 문제를 해결하는 스마트 상수도 관리시스템에도 4,000억원이 투입된다. 미세먼지 저감 투자는 2022년으로 계획된 저감 목표를 1년 앞당기도록 내년 예산을 올해(2조3,000억원)의 2배 수준인 4조원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환경예산은 올해보다 19.3%가 증가한 8조8,000억원이 책정됐다. 차세대 국산 잠수함 등 핵심무기체계 보강과 병사 월급 33% 인상하면서 국방예산은 역대 최초로 50조원을 돌파(50조2,000억원)했다.

이밖에 문재인 정부 들어 정체됐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2.9% 증가한 22조3,000억원이, 고교 무상교육 7,000억원 투입 등으로 교육예산은 2.6% 증가한 72조5,000억원이,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확대(1조1,036억→1조2,176억원)로 외교ㆍ통일 예산은 9.2% 증가한 5조5,000억원이 각각 증가했다.

 ◇홍남기 “내년 예산, 경제강국 구현 발판” 

정부는 이 같은 확장 예산이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날 “경제강국 구현의 발판이 되고 국민의 생활, 삶, 복지,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슈퍼 예산 편성으로 급증할 국가채무와 재정건전성 악화는 물론, 재정 투입의 효과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예산 인상률이 높긴 하지만 실제 증가 내용에서도 복지 쏠림 현상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R&D는 그간 투입은 많았지만 성과가 없었고, 일자리 예산도 낭비성이 대부분이었다”며 “효과는 따지지 않고 돈만 투입하면 된다는 식의 예산이 걸러지지 않으면 재정만 축내게 된다”고 우려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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