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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외면했던 상처를 나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긍정적인 '의식화'이기도 하다. 슬픔을 불러내야 비로소 치유가 가능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분노에 사로잡힌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며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구나!’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얼마 전 한 회사 내부에서 직장상사 A가 부하직원 B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후 상황을 종합해보니, A는 부하직원 B의 재능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상사들에게 칭찬을 받는 B에 대한 A의 콤플렉스와 질투심을 까맣게 모르는 것은 정작 A자신뿐이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A는 B를 질투해서 그를 괴롭히고 있구나’라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데도, A는 온갖 생트집을 잡으며 B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마음 놓침(mindlessness)’ 상태다. 자신이 어떤 감정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을 그르치고 있을 때,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우리는 ‘마음 놓침’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마음 챙김(mindfulness)이란 마음 놓침과 반대로, 자신이 어떤 마음과 행동의 주체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네가 나한테 이런 말 했던 것, 정말 기억 안 나?” 이런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실수를 대면하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마음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을 때, 우리는 실수를 한다. 타인이 내 실수를 알려주어 뼈아픈 후회를 느끼기 전에, 내가 미리 나의 마음을 보살피고, 알아차리고, 어루만져주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마음 챙김의 확실한 효과다. 마음 챙김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대면한 나의 문제점은 ‘탓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부모님이 나를 좀 더 이해해주셨더라면, 그때 그 사람이 나를 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친구가 나를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이런 원망과 분노의 마음을 ‘그때 내가 좀 더 내 마음을 맹렬하게 관찰하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보살필 수 있었더라면’이라는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깨달음의 첫걸음이다.

마음 챙김을 불교심리학에서는 ‘사티(sati)’라고도 표현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기억하다’라고 한다. ‘트라우마 사용설명서’의 저자 마크 엡스타인은 마음 챙김의 기억이란 ‘순간순간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공부하다 보면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아픈 기억을 되찾고 다시금 괴로워질 때가 있는데, 이것은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해리’되었던 기억을 ‘재통합’한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내적 성장이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무의식이 차라리 지워버린 기억을 다시 대면한다는 것은 당분간은 고통스럽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상처’를 ‘나의 진정한 일부’로 재통합함으로써, 의식 바깥을 떠돌던 슬픔을 나의 의식 속으로 다시 초대하는 긍정적인 ‘의식화’이기도 하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슬픔을 다시 의식으로 불러내야 비로소 치유가 가능해진다.

티베트 승려 초감 트룽파는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본질이란 ‘자신의 날카로운 창끝을 인식하고, 그 창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 상처의 날카로운 창끝이 나를 ‘이제 회복 불가능한 사람, 끝내 우울한 사람, 상처에 고착된 사람’으로 만들어 끊임없이 나를 찌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날카로운 창끝을 연민과 존중과 이해의 마음으로 조금씩 누그러뜨리는 것이 마음 챙김 훈련이다. 우리는 수많은 웹사이트에 매일 방문하지만, 정작 내 마음 깊숙한 상처의 골방에 방문하는 일은 회피해 오지 않았는가. 그토록 많은 장소를 방문했지만, 정작 내 마음속으로 방문하는 일은 꺼려온 것이 아닌가.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에게 ‘내 상처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는 일이었다. 나의 치명적인 실수까지, 나의 가장 어두운 상처까지 대면하여, 그 상처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그 상처를 완전히 나의 일부로 끌어안는 것.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것, 그것은 날마다 이 세상과 새로운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더욱 투명하게, 부드럽게, 해맑게 가꾸는 일이다. 상처를 삭제할 수는 없지만, 상처를 바라보는 나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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