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페이스북 소송의 교훈

입력
2019.08.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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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페이스북의 소송은 향후 인터넷 이용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재판 결과에 따라 페이스북뿐 아니라 유튜브, 넷플릭스 등 인터넷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사용하는 기업들과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업체(ISP)들 사이에 향후 망 사용료 협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콘텐츠업체들이 ISP들에게 내야 하는 금액이 달라지면서 이용자들의 콘텐츠 이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재판은 페이스북이 지난해 3월 방통위에서 부과한 3억9,600만원의 과징금에 불복하며 비롯됐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들의 접속 경로를 국내 중계서버가 아닌 홍콩 서버로 연결되도록 변경해 페이스북 이용 속도를 떨어뜨려 이용자 이익을 침해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가까운 국내 중계서버 대신 멀리 떨어진 홍콩 서버에 접속하면 시간이 더 걸리고 속도도 느려질 수 밖에 없다.

당시 업계에서는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진행하던 망 사용료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접속 속도를 떨어뜨렸다고 의심했다. 이용자들은 접속 속도가 느려지면 인터넷 업체에 우선 항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ISP들에 따르면 이용자들의 민원이 많이 늘었다. 방통위는 이를 이용자에게 불편을 끼쳐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이용자에게 불편을 끼쳤지만 이익 침해 행위로 볼만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쉽게 말해 세부 규칙을 정해놓지도 않고 축구 경기를 하면서 반칙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추가 입법을 통해 명확한 제재 수단을 마련하지도 않고 법 적용을 확대하지 말라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었다. 그만큼 페이스북은 정교하지 못한 정부의 법리 해석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방통위는 이용자 불편과 이익 침해를 포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 동안 정부는 통신업체가 이용자나 콘텐츠업체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규제했으나 콘텐츠업체들이 이용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렇다 보니 규칙도 없이 경기를 치른 셈이다.

이번 소송을 통해 확인한 핵심은 콘텐츠업체도 인터넷 접속 경로를 자유롭게 변경하며 이용자 차별행위를 할 수 있다는 점과 그렇더라도 정부에서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를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이 이익 추구를 위해 접속 경로를 바꿔 특정 인터넷업체 이용자들만 속도를 떨어뜨렸다면 명백한 이용자 차별행위다. 방통위는 ISP와 페이스북이 주고 받은 이메일을 통해 이 같은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방통위도 페이스북을 이용자 차별행위로 문제 삼으려 했으나 콘텐츠업체의 이용자 차별을 규제하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진행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정부에서는 콘텐츠업체들의 이용자 차별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항소를 결정한 방통위에서는 이번 재판 일정과 무관하게 이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망 이용료를 꼬박꼬박 내는 국내 콘텐츠업체와 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를 피해가는 외국 콘텐츠업체들의 역차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국내 콘텐츠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인터넷 망을 이용하는데 외국 콘텐츠업체들이 더 적은 돈을 내고 많은 이익을 챙긴다면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다.

인터넷 이용 또한 공정경쟁의 틀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익 추구를 위해 이용자를 차별하는 불공정 행위를 하면 ISP든 콘텐츠업체든 가리지 않고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지난해 공정경쟁 관점에서 다루기 위해 통신업체들을 연방통신위원회(FCC) 뿐 아니라 연방통상위원회(FTC)에서도 규제할 수 있도록 변경한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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