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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否定)의 정치에 매몰된 586세대
탈(脫)이념ㆍ다양성ㆍ배려가 시대정신
낡은 이념 갇힌 여야 기득권 물갈이해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자격 논란이 진영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공정 정의 상식의 문제를 이념 갈등으로 포장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정치를 장악한 586 운동권과 수구 냉전적 사고에 갇힌 586 보수 정치인들이다. 출발선은 달랐어도 자본주의적 욕망을 추구하는 삶은 대동소이했다. 오직 권력을 위해 서로를 악마화하고 적대시하며 부정의 정치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조국 후보자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고영권 기자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가 1995년 펴낸 ‘김대중 죽이기’는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 문제를 본격 제기한 논쟁적인 책이다. 진보 일각에서 그를 공격하며 제일 먼저 꺼낸 이야기가 “80년대에 미국 유학 갔던 새끼가 뭐 할말 있냐”는 것이었단다. 강 교수의 고백. “어려운 시절에 유학 간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하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그분들 정서는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자신감, 자부심,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이철희 ‘7인의 충고’)

여권 주류는 586세대 운동권이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세상 변화에 둔감하고 아직도 30, 40년 전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도덕적 우월감이 차고 넘쳐 ‘우리 진영은 늘 옳고 정의롭다’는 생각도 강하다. 흔히 선악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까닭이다.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스스로 거대 권력집단이 돼 버렸다. 지향하는 이념은 진보적이어도 행실은 보수 못지않은 ‘정치귀족’이 많다. 이들에게 보수 기득권은 친일과 군사독재 세력의 후손일 뿐이다. 그러니 갈아 치워야 할 적(敵)이지 공존해야 할 적은 아니다.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부정(否定)의 정치에 매몰되는 이유다.

자유한국당 주류는 586 ‘진짜’ 기득권이다. 산업화 주역의 후손으로 탐욕 자본주의의 과실을 가장 많이 챙긴 세력이다. 가진 것이 많아 정권욕도 남다르다. 집권을 위해선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등 물불 안 가린다. 보수를 표방하나 기실 박정희 유산에 갇힌 반공 수구 집단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사학법ㆍ언론관계법 등 개혁입법은 보수언론 사학재벌 기독교 등 분단 체제 기득권층의 불안심리를 크게 자극했다. MB 정부를 거치며 극우로 내달린 배경이다. 이들에게 참여정부를 잇는 문재인 정부는 보수 주류를 해체하려는 악마 집단이요, 타도해야 할 좌파독재 정권일 따름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두 세력은 적대적 공생관계다. “사람은 자신의 우월함을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할수록 자기가 지지하는 대의(大義)가 우월하다고 주장한다”는 철학자 에릭 호퍼의 지적처럼, ‘내 편’의 대의를 목청껏 외치는 게 권력 쟁취의 지름길임을 잘 안다. 국민 다수가 정치를 혐오하고 외면하니, 소수 극성 지지자만 만족시키면 된다. 그 효과적 방안이 편을 갈라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이다. 상대편을 거칠게 공격할수록 내 편이 환호하니 굳이 비전과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 편만 결집시키면 의원직은 따 놓은 당상이요, 정권도 잡을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랴.

경제 위기와 불평등이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건 착각이다. 정치적 갈등이 경제를 망가뜨리고 불평등을 키우는 주범이다. 정치는 공적 자원을 민주적으로 분배해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행위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뭔가.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 속에 일자리는 급속히 사라지고 불평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새 성장동력을 찾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탈(脫)이념, 다양성, 배려, 공유 등의 시대적 가치가 절실한 이유다.

586 운동권은 엄혹한 시대에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586 보수는 산업화 정신을 지켜 내느라 나름 노력했다. 어느덧 한국 사회의 자원과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 집단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의 정치는 너무 퇴행적이다. 노무현, 박정희의 유산에 갇혀 부정의 정치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반공’과 ‘민주화’라는 낡은 이념에 매달려 국민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제 ‘586꼰대’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 새로운 시대 담론을 제시할 비전과 능력을 지닌 젊은 세대에 자리를 넘겨주고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됐다. 성장과 효율을 외면하지 않는 보수 좌파, 평화와 노동을 포용하는 진보 우파가 나와야 한다. 586 운동권과 586 수구세력이 서로를 괴물 취급하며 정쟁을 일삼는 한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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