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유전자검사와 보험가입

입력
2019.08.24 04:40
27면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신의 아이,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의 운명은 심장 질환에,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니고, 31살에 사망하는 것이었다. 영화 ‘가타카’ 스틸 이미지. 컬럼비아 픽처스 제공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신의 아이, 주인공 빈센트(에단 호크)의 운명은 심장 질환에,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니고, 31살에 사망하는 것이었다. 영화 ‘가타카’ 스틸 이미지. 컬럼비아 픽처스 제공

“미안합니다. 보험이 안 됩니다. 만약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렇게 안 들었는데….” 1997년 개봉된 공상과학 영화 ‘가타카’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대화 내용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피 한 방울로 평생 온갖 질병에 걸릴 확률을 알려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외모로나 건강상태로나 멀쩡한 아기였다. 그러나 장차 심장 장애가 생길 확률이 99%이고, 예상 수명이 30년이라는 의료진의 설명에 부모는 크게 낙담한다.

당시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료가 임박한 시기였고 20세기 초반 실제로 그 결과가 대대적으로 공개됐다. 유전자를 분석해 발병의 조짐을 초기에 알려주고 개인별로 맞춤형 치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반면 영화는 일반인이 사회에서 맞닥뜨릴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한동안은 설마 그럴까 했다. 유전자 분석 능력이 점점 뛰어나지겠지만, 내 일상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싶었다. 발병률을 알려주는 검사 결과만으로 아이의 보험 가입이 거부당한다는 설정이 상당히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 국내 보험업계의 동향을 접하고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자녀들이 성인이 됐을 즈음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로 인해 보험 가입이 훨씬 까다로워지고, 때때로 거부되는 일도 생길 것 같다.

이미 전문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업체가 직접 소비자의 다양한 발병 가능성을 알려주는 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검사가 시행되고 있다. 고객의 건강 상태를 바탕으로 적정가격대의 상품을 권장하는 보험업계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정밀 건강검진에서 별다른 질병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유전자 검사 결과가 높은 발병 가능성을 알려준다면 적정가격대는 자연스럽게 올라가지 않을까.

언론 매체를 보면 아직은 유전자 검사가 보험 가입 요건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주로 보험설계사가 개인적으로 검사 도구를 구입해 서비스 차원에서 소비자에게 결과를 알려준다고 한다. 검사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영화에서처럼 피 한 방울이 아니라 타액 샘플을 보내면 몇 주 안에 결과가 나온다. 소비자의 호기심이 발동하게 마련이다. 검사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일단은 수만원대에서 시작했다가 점차 수십만 원대의 정밀한 검사도 원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유전자 검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가 같이 소개되고 있다. 전문 의료인이라도 특정 유전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만으로 질병의 발생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 당연히 비전문가가 간단한 검사 도구에 의존해 얻은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막상 발병률 수치를 받아본 소비자로서는 계속 신경이 쓰일 것이다. 우연한 호기심이 뜻하지 않은 근심을 낳은 셈이다.

현재 유전자에 대한 연구 결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유전자 검사 도구는 점차 간단해지고, 그 비용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보험에 가입할 때 유전자 검사가 주요한 요구사항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영화에서처럼 아기가 99%의 확률로 특정 질병에 걸린다는 결과가 나와 보험 가입이 거부된다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꺼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부당하다며 따지다가도,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지기 쉽다. 설마 현재의 국민건강검진에 유전자 검사가 의무적으로 포함되지는 않겠지 생각하다가도,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취업에서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 면접관 앞까지 갔지만 유전자가 ‘불량’인 탓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돌아선다. “물론 차별하는 것은 위법이다. ‘지노이즘’이라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 법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공상과학 영화 얘기로만 끝나기 바라는 대목이었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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