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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10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어두운 골목을 한 여성이 지나고 있다. 인적 드문 밤길은 구형 나트륨 램프 가로등의 불그스름한 불빛을 받아 더욱 으스스하다. 이 골목은 귀갓길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여성안심귀갓길(고산18길)’의 일부지만 인근 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 사이에선 ‘무서운 길’로 더 알려져 있다. 박서강기자

오늘날 우리는 교통사고, 화재, 자연재해, 환경오염, 폭력 및 범죄, 질병 등과 같은 수많은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2018년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다양한 위험요소 중 국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범죄’이다. 그러나 범죄의 두려움은 성별 차이가 매우 커 여성 2명 중 1명이 밤에 집주변에 혼자 걷기 두려운 곳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4명 중 1명만이 두려운 곳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범죄의 두려움을 어느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측정했는지에 관계없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 범죄의 두려움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2010년을 전후해 ‘여성안전도시’, ‘여성안심마을’, ‘여성친화도시’ 등과 같은 캐치프레이즈 하에 여성에 초점을 맞춘 안전정책이 실시되었다. 현 여성안전정책의 대부분은 낯선 사람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여성이 직면한 실재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위험감소 전략으로 물리적 환경개선(가로등 설치 및 조도 개선, CCTV 설치 등), 주거시설 무단침입 방지 설비를 통한 대상 강화, 동반자 등을 이용한 여성의 신체적ㆍ심리적 취약성 보완(안심귀가스카우트), 낯선 사람과의 접촉점을 최대한 줄이는 차단 및 분리정책(안심택배, 지하철 여성배려 칸 운영 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성범죄는 증가하였지만, 여성의 범죄 두려움이 완만하게 낮아졌다는 점에서 현 여성안전정책은 미미하나마 일정 정도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여성안전정책은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길거리 괴롭힘(street harassment)과 그것이 여성의 두려움과 행동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데 실패했고, 여성의 피해경험의 실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안전정책은 그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길거리 괴롭힘은 공공장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음란한 시선(시선폭력, 시선강간), 인사ㆍ친근감ㆍ칭찬을 가장한 성희롱적 언행, 치근덕거리기, 캣콜링, 휘파람불기, 위협, 만지기(‘엉만튀’, ‘슴만튀’ 등), 더듬기, 성기노출(바바리맨), 자위행위, 폭행 등의 다양한 행위를 포함하며, 여성과 남성 간의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위협과 폭력행위이다. 이러한 행위유형은 예전부터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해왔던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최근에 여성의 안전감 형성에 있어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길거리 괴롭힘이라는 네이밍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외 연구결과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관련단체에서 수집한 자료들에 따르면 길거리 괴롭힘은 사소해서, 그 당시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평범한 일상으로 느껴져서 등의 이유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공장소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여성이라면 생애주기의 어느 한 시점에서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해자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피해를 당할 위험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러한 행위를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별 일 아닌 것으로 간주해버리거나 재미로 혹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한다. 그렇지만 피해여성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공공장소와 낯선 사람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낯선 사람에 의한 범죄를 두려워하게 된다. 또한, 길거리 괴롭힘이 신체적ㆍ성적 침해의 속성을 갖기 때문에 피해여성에게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할 수도 있다. 피해 이후 여성들은 공공장소에 갈 때, 자신의 행동, 옷차림 등을 스스로 검열하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장소를 피하는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써 행동과 이동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와 같이 발생 빈도와 피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추행이나 몰카 등 처벌법규가 명확한 일부 행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길거리 괴롭힘은 형사사법기관에 의해서 사소한 것으로 처리되거나 적용할 법률이 없어 처벌의 사각지대에 있다.

길거리 괴롭힘의 일상성과 이것이 여성의 안전감, 삶의 질, 성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인식되면서 영국은 여성평등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정확한 실태 및 원인을 파악하여 증거기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대규모의 실증조사를 기획하고 있다. 프랑스와 필리핀도 각각 ‘길거리 및 교통수단에서의 성차별적 괴롭힘에 관한 법’(2018년)과 ‘안전한 공간법’(2019년)을 제정하여 길거리 괴롭힘에 강력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범죄 종류에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을 추가하고, 2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을 제출하였지만 아직 국회 계류 중이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법제 개정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길거리 괴롭힘이 여성인권에 대한 침해행위이자 폭력행위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사회인식 개선, 여성과 남성 간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변화시키는 지속적인 노력 등이 필요하다.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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