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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화운동서 영감 얻는 홍콩 시민
수출규제로 공고해진 한일 反아베 연대
민주ㆍ인권 지키는 국제연대 활발해지길
지난 19일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아베 정권 규탄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한일민중 연대하자'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지난 주말 홍콩의 반중 시위가 다행히 무력 충돌 없이 지나갔다.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가 공항 점거 등으로 격화되자 중국 정부가 인근 선전에 무장경찰과 수백 대의 장갑차, 물대포 등을 대기시킨 상태였다. 30년 전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떠올리며 시위대는 말할 것 없고 세계가 긴장했고 안도한 며칠 간이었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겨냥한 공산당 정부의 송환법 제정에 반대했던 홍콩 시민의 자유와 인권 수호 의지와 열기까지 무력 진압 위협에 고개를 숙인 건 아니었다. 주말 시위에는 홍콩 시민 4명 중 1명에 해당하는 170만명이 모였다. 시위의 규모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자칫 시위대와 홍콩 공권력의 충돌이 무력 진압의 빌미를 줄 것을 우려해 대규모 시위가 지극히 평화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경찰이 불허한 집회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물 흐르듯 움직이면서 벌이는 유수(流水) 집회가 등장했고,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던 과격 시위가 청소 퍼포먼스로 바뀌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민간인권진선도 ‘화이비(和理非)’를 내세워 ‘평화ㆍ이성ㆍ비폭력’ 집회를 강조하고 있다.

6개월간 연인원 1,700만명 안팎이 참여해 마치 축제처럼 벌였던 정권 퇴진 운동인 우리 촛불시위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홍콩 시위 현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고, 시위 지도부가 ‘1987’ 같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를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의 시위대가 촛불시위의 경험을 전수받았거나 한국 시민세력과 연대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에서 배워 영감을 얻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미명으로 일당독재를 미화하고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중국 본토와 홍콩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중국의 홍콩화가 아니라 홍콩의 중국화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콩과는 이처럼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 연대가 이번 한일 갈등을 전환점으로 공고해질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를 규탄하는 서울 집회에 일본인들이 참가하고, 도쿄에서 열린 아베 반대 집회에서 “한일 우호”가 메아리친다. 일본 시민단체, 노동자단체 대표들이 서울을 찾아 ‘반아베’ 시민연대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징용ㆍ위안부 문제를 배경으로 한 한일 갈등을 외교 대화가 아니라 수출규제라는 압박으로 풀려고 시도함으로써 아베 정권은 단지 과거사 이슈에서 퇴행적이라는 차원을 넘어섰다. 이번 사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을 두고 ‘힘에 의한 지배’라고 비난해온 일본 스스로 ‘힘에 의한 지배’를 선언한 것과 다름 없다. 툭 하면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려 들고, 개헌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아베에 반대하는 한일 시민연대가 양국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확산하는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할만하다.

역사학자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자신의 글을 모아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라는 책을 냈을 때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일본의 평화헌법개정 조짐에 대해 “동아시아 신냉전체제는 안 된다”며 “일본을 향해 그들이 말하는 ‘보통국가’의 미래가 집단적 자위권 같은 군사강화만이 아니라 다른 길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문제를 두고는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중국에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이 중국에 무슨 모범을 보일지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것일 수 있고, 더 민주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다운 삶의 질이 높아지는 사회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이 배울 만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동아시아 균형자 역할을 할 방안이다."

홍콩 시위와 한일 반아베 연대를 보며 그의 구상이 그저 이상론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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