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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젊은 정치] <8회> 정치 살리는 정치교육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프랑스에서는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정치 신인을 육성하기 위한 (정당 차원의)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정당이 인재를 효율적으로 육성할 능력이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유럽 선진국 장관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ㆍ김종숙)은 프랑스 의회가 젊어졌지만 정치신인에겐 여전히 시스템보다 개인의 노력이 더 많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의회 평균연령을 61세에서 46세로 낮추며 세대교체를 이룬 프랑스 정치권에 이제 시민교육과 정당 차원의 인재 육성이란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2016년 문화부 장관을 끝으로 사업가로 변신한 펠르랭 전 장관을 지난 6월 프랑스 파리 시내 코렐리아캐피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갓 심폐소생한 프랑스 정치권을 살리려면 ‘체계적인 정치교육’이 뒤따라와야 한다고 했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된 그는 정치ㆍ행정 엘리트코스로 손꼽히는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과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면서 정치 세계에 입문했다.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세 차례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 2002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대통령 후보의 연설문 작성에 참여했고, 2007년에는 같은 당 세골렌 루아얄 대통령 후보, 2012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다. 사회당에서 활동했지만, 당 밖에서 더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ENA를 졸업한 뒤 공무원으로 일했고 ‘21세기 클럽’이라는 비영리기구(NGO)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을 돕는 일도 해 왔다.

“특히 사회당 대표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인재 육성에 소홀하다는 비판의 중심에 섰지요. 차기 당대표 역시 인재 육성을 소홀히 해 오늘날 청년을 대표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좋은 지도자는 다음 세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 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사실 자신들을 이을 다음 세대가 상당히 중요한데 말이지요.”

펠르랭 전 장관은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지금의 프랑스야말로 정당 차원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할 책임이 더 큰 때라고 강조했다. “그동안은 입법자가 되고 싶다면 걸어가야 할 길이 있었습니다. 당에 가입하고 여러 실패를 겪으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긴 여정이지요. 하지만 현 정부에는 (이런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이 많습니다. 정당은 이들을 교육하고 정치지도자로 만들어야 할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지요. (정치 신인의 유입이) 최선이라고 할 수 없고, 모든 정치 신인이 역량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16년 문화부 장관직을 내려놓으며 사회당을 떠났다. “젊은 세대를 대변했던 많은 사람들이 정당을 떠났습니다. 저 또한 사회당을 떠나 사업을 하고 있고 제 동료들도 정치권을 떠나서 민간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보수당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떠오릅니다. 젊은 정치인의 이탈은 당 책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또 최근 유럽의회 선거를 보며 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국민에게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라고 할 때 유럽의회가 어떤 권한을 가지는지, 역할이 뭔지, 영향력은 얼마나 큰지를 잘 모릅니다. 투표를 하면서도 왜 투표를 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하는지 모릅니다. 현재 프랑스 교육 시스템은 이러한 부분에 좀 소홀합니다.”

사실 프랑스 정규교육 과정에는 헌법과 공법, 행정법, 노동법 등 법률, 유럽시민과 투표권 확대의 역사, 그리고 정당과 노조, 다양한 단체 활동에 대해 가르치는 민주시민교육 과정이 촘촘하게 마련돼 있다. 가브리엘페리재단과 장조레스재단, 정치혁신재단 등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정치교육을 제공한다. 그러나 펠르랭 전 장관은 그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15세인 제 딸이 고교에 다니고 있는데, (유럽의회와 국내 정부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배울 수 있는 더 많은 교육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엘리트 정치인’을 양성하는 자신의 모교 ENA에 대해서는 큰 애정을 보이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모교로도 유명한 이 학교는 졸업생들의 정ㆍ관계 요직 독점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적 불평등 해소 대책의 하나로 지난 4월 ENA폐지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제5공화국 수립 이후 배출된 대통령 8명 중 4명이 ENA 출신이다. 펠르랭 전 장관은 “현 정부 각료 중에도 ENA출신이 70~80% 정도 된다”고 추산했다.

“내부 경쟁은 매우 어렵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력뿐 아니라) 문화적인 평판이나 사회적 행동양식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처음 마주했던 낯선 문화가 큰 스트레스였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공식적인 만찬에서 지켜야 할 식사 예절이나 악수를 청하는 태도, 자신감 있게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굉장히 낯설고 어렵습니다.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는 일이지요." 누군가에겐 몸에 밴 행동 양식이 다른 누군가에겐 부단히 노력해 익혀야 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플뢰르 펠르랭 전 문화부장관 인터뷰 영상]

특히 ENA 구성과 선발과정을 보다 민주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혁은 필요합니다. ENA 입학생 상당수가 특권층 출신이니까요. 선발과정을 개선하거나 조직을 더 민주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NA가 유지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출신, 신분, 지역에 상관없이 엘리트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단지 유력한 집안 출신이라서 정치, 언론, 기업에 결정권을 가진 직위에 등용되던 과거 족벌주의는 폐해가 많습니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사진 속 플뢰르 펠르랭 전 문화부장관. 박지연 기자.

펠르랭 전 장관은 다시 정치에 복귀할 생각이 있을까. “제 인생에서 15년 넘게 정부와 공익을 위해 일했습니다. 직업에 사이클이 있다면 지금 저는 다른 사이클에서 있고 제 새로운 직업에 헌신하고 온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정치와 프랑스 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정치에 복귀한다면 아마 다른 방면으로 가지 않을까요?”

[저작권 한국일보]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파리=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사진=이준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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