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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가능한가
흔들리면서도 중심잡고 버티는 힘 필요
그러려면 생각하고, 성찰하고, 대화해야
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학원총연합회가 일본제품 불매운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조용하지만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불매운동이 쉬 타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리지 않으려면 섣부른 낙인 찍로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뉴스1

요즘 부쩍 말이 줄었다. 두셋만 모여도 한일관계가 화제에 오르지만, ‘전쟁’에 비견되는 역사와 외교, 경제 갈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사안에 대해 말을 보탤 만큼 정리가 안 된 탓이다.

이런 고충을 알 리 없는 초등6학년 둘째는 부쩍 질문이 많아졌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오면 미국은 누구 편을 들어?” “아니, 동지를 밀고한 사람이 어떻게 (광복 후) 경찰 간부가 될 수 있어?” 앵커 목소리가 반 옥타브쯤 올라간 듯한 뉴스, 광복절 특집 영화 등을 함께 보다 불쑥불쑥 던지는 질문은 꽤 난도가 높다. 근현대사 배경 지식부터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다 보면, 이 난감함은 아이의 눈높이가 아니라 나의 무지 혹은 어설픈 앎 탓이 아닐까 싶어 고개를 떨구게 된다.

세상은 “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로 들끓지만, 미욱한 나는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그렇다고 불가지론에 빠진 건 아니다. 캄보디아까지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한 ‘훈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을 취재한 경험이나 한일청구권협정의 한계, 개인피해배상 청구권 법리 등을 따지면, “총칼 들고 끌고 갔다는 ‘증거’가 없다”며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아 국제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본의 조처는 졸렬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해법이다. 전문가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내는 주장을 꼼꼼히 들여다봐도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더러는 논의의 토대인 사실관계나 일본 조처에 대한 판단조차 엇갈린다. 사실 해법이 명쾌하다면 난제가 아닐 터. 청와대와 정부가 단호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뚝심 있게 끌고 가야겠지만, 이 혼돈의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려면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부터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백가쟁명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설피 알았거나 잘못 알았거나 아예 몰랐던 사실들을 끈질기게 찾아내고 기꺼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섣불리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쉽게 불 붙는 반일 감정을 지속가능한 극일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깐깐한 회의론자의 태도나 ‘악마의 변호인’ 역할인지 모른다.

긴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됐는데, 벌써부터 우려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부품과 소재 국산화를 위한 대책으로 노동환경 규제의 예외적 적용부터 꺼내 들었다. 일제하 반인권적 강제노동의 피해배상에서 촉발된 문제를 푼다면서 현재의 노동인권, 환경인권을 희생하겠다는 건 지독한 아이러니다. 대통령 최측근이자 장관 후보자가 일제의 수탈과 강제동원을 전면 부정하는 저서를 일컬어 “구역질 난다”는 혐오의 언어를 발산한 것도 문제다. 일부 통계를 앞세운 편협한 실증주의는 학술적 논박이 가능하거니와, 손쉬운 악마화는 되레 그 대상에 대한 주목 효과만 낳는다.

다행스러운 건 조용하지만 뜨겁게 전개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에서 드러난 다수 국민의 현명함이다. 특히 2030의 호응이 높다. 대학생 큰딸은 기대에 부풀었던 일본여행을 취소하고 불매제품 대체재를 찾아 나섰지만, 강요나 압박은 싫다며 친구들과도 불매 얘기는 삼간다. 전철에서 애꿎은 일본 여성들을 힐난하던 중년 남성을 승객들이 나서 말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본 시민들과의 연대 움직임도 활발하다. 혹여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헤아리는 마음이 모일 때, “화락~ 타올랐다가 피식~ 식어버리고 말 것”이란 극우파의 바람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ㆍ15 기념사에서 광복의 감격을 담은 시를 인용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수사로는 뭉클할지 몰라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일갈등이 아니더라도 거친 국제정세 속에서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이견 없는 대동단결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흔들흔들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휘청거리면서 끝내 버티는 힘. 나는 그 힘을 믿고 싶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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